티빙-웨이브 주주인 방송사에 유리한 조건 제시
합병 틈새 노려 인기 지상파 콘텐츠 선점
[서울=뉴시스]최은수 기자 = 국내에서 콘텐츠 흥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넷플릭스가 지상파 등 국내 방송사들에 콘텐츠 확보를 위한 구애에 나섰다. 현재 합병을 추진 중인 티빙과 웨이브의 주요 주주인 방송사들에 더 나은 콘텐츠 공급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 합병에 따른 구조 변동을 노려 인기 지상파 콘텐츠를 선점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최근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와 콘텐츠 제작사 SLL중앙 등과 물밑 접촉해 기존보다 유리한 콘텐츠 공급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사의 독점 콘텐츠를 넷플릭스에도 풀어주면 더 높은 단가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지상파3사는 토종 OTT 웨이브의 지분을 각 19.8%씩 나눠 가진 주주다. 콘텐트리중앙 자회사인 SLL 중앙은 티빙의 지분 12.7%를 보유하고 있다.
웨이브는 주주인 지상파의 실시간 방송 시청, 다시 보기 등을 독점하고 있다. 웨이브와 지상파3사 간의 콘텐츠 독점 계약이 빠르면 이달 종료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티빙과 웨이브는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이 틈새를 넷플릭스가 파고든 것으로 해석된다.
기존에도 넷플릭스는 지상파의 일부 오리지널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공급하고 있다. 다만 대부분의 인기 콘텐츠는 웨이브에 공급됐다. 앞으로는 넷플릭스에 제공되는 인기 콘텐츠 비중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제작비나 인력 유출, 흥행 콘텐츠 부실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상파 방송국 입장에서도 넷플릭스 제안은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이미 지상파, 종편이 OTT에 콘텐츠 제작 파트너로 나서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서바이벌 예능 '피지컬: 100'은 MBC 교양국 소속 장호기 PD가 프로그램 기획자였다. 2021년 '무한도전' '놀면 뭐하니?'를 연출한 김태호 PD는 '먹보와 털보'를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작했다.
무인도에 갇힌 남녀 10명이 교류하는 과정을 그린 넷플릭스의 데이팅 리얼리티쇼 '솔로지옥'은 JTBC가 시작 컴퍼니와 공동 제작했다.
2015년 지상파 방송사들은 웨이브에 콘텐츠 독점 공급을 선언한 바 있다. 독자적 플랫폼을 구축해 넷플릭스에 대항한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넷플릭스, 티빙, 쿠팡플레이 등 타 OTT들이 더 성장하면서 이들에도 콘텐츠 공급을 늘리는 추세다.
넷플릭스 역시 국내 가입자 증가세가 주춤하자 지상파에 손을 내밀어 인기 콘텐츠를 선점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넷플릭스는 드라마 ‘더 글로리’ 이후 국내에서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어 이용자 수가 지속 하락세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MAU(월간활성화이용자수)는 2023년 7월 1311만명을 기록했으나 지난 8월에는 1121만명까지 떨어졌다.
KBO(한국프로야구) 중계권 확보와 드라마 ‘눈물의 여왕’, ‘선재 업고 튀어’ 등 흥행에 힘 입어 지속 성장 중인 티빙이 웨이브와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넷플릭스에도 견제구가 필요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 8월 기준 티빙과 웨이브의 합산 MAU는 1224만명명으로 넷플릭스 MAU를 넘어섰다.
실제 넷플릭스의 제안은 양사 합병 판을 흔들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티빙과 웨이브 양사의 주요 주주들은 합병 비율 등 주요 쟁점에 대한 합의를 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병 비율은 1.6대1 정도, 기업 가치는 2조원 수준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주주인 일부 방송사들이 합병 OTT 외에 넷플릭스 등 다른 OTT에 공급해야 한다는 입장과 합병 OTT에만 독점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OTT업계 한 관계자는 “티빙과 웨이브 합병 시 콘텐츠에 관한 권리 관계가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서 넷플릭스를 비롯해 미디어 사업자들이 지상파 콘텐츠를 선점하고 싶어한다고 알고 있다”라며 "지상파 콘텐츠가 과거에 비해 영향력은 없지만 구작들의 경우 해외에서 수요가 많아 여전히 매력적인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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