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간호사가 '전공의 공백' 메운다?…의료계 "현실성 없어"

기사등록 2024/09/08 06:01:00 최종수정 2024/09/08 08:42:52

정부, PA간호사 합법화 내년 하반기 투입 복안

"PA간호사로 대체불가…전공의 복귀책 마련을"

"수술실CCTV설치 전공의없는 병원 소송 우려"

"PA간호사 합법화 좋지만 고난도 행위는 위험"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 생활관이 텅 비어 있다. 2024.08.16. ks@newsis.com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현재 고3이 치르는 2025학년도 대입 수시 모집이 오는 9일 시작되지만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료 공백 사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의사의 업무를 대신하는 진료보조(PA)간호사의 의료 행위를 합법화한 '간호법' 입법 카드를 준비했지만, 전공의들의 복귀가 없다면 의료 공백은 내년에도 불가피 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8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3월 의대 증원 사태로 인한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간호법 입법을 구상했다. 간호법 시행이 예상되는 시기는 내년 6월이다. 지난 2월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반대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 1만 명 이상이 내년 상반기에도 복귀하지 않을 경우 정부가 하반기 PA간호사를 활용해 전공의들의 빈 자리를 메우겠다는 '복안'으로 의료계는 보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정부는 내년 상반기에도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6월 중 간호법을 시행해 PA간호사를 현장에 투입함으로써 의료 공백을 해소하려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면서 "결국 국민에게 피해가 갈 수 있어 전공의 복귀 대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국에서 1만 명 이상 활동하는 PA간호사로 전공의들을 대체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의료 현장에선 실효성이 부족하고 국민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전공의 공백 상황에선 대학병원(상급종합병원)들이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서울의 주요 대학병원 A 응급의학과 교수는 "대학병원에서 시행되는 심장, 뇌, 척수, 간·담도·췌장 등 수술은 준종합병원이나 병원급에 비해 난이도가 높다"면서 "PA간호사만으로는 수술과 시술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수술 후 환자 관리도 의대 교육을 받고 진료과에서 전공의 과정을 거치면서 배우고 행하는 것으로, 수술 후 환자의 생리학적 변화 등에 대해 잘 알아야 해 간호 인력에게 전적으로 맡기긴 힘들다"고 했다.

PA간호사는 주로 전공의들이 부족한 기피과에서 의사 대신 봉합, 절개, 처방 등을 해왔다. 전공의는 주로 상급종합병원에서 주 80시간 이상 일하면서 입원환자 관리, 차트 작성, 수술 보조를 해왔다. 연차가 쌓이면 외래진료는 물론 작은 수술은 직접 집도하기도 한다.

지난해 9월 의료기관 수술실 내 폐쇄회로(CC) 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시행되면서 CCTV 영상이 의료 사고 진실 규명의 중요한 증거가 된 것도 PA간호사로 전공의를 대체하기 어려운 주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최근 보건복지부는 의료법에 따라 수술실 내부에 CCTV 설치 의무가 있는 의료기관 총 2413곳에 CCTV를 모두 설치했다.

간호계 관계자는 "가령 만일 병원에서 암 환자를 전공의 없이 PA간호사만 있는 상태에서 수술한 후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 환자나 보호자가 CCTV 영상을 요구해 의료 소송을 제기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 시행으로 전신마취나 수면마취 수술 등으로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의 개설자는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해야 하고, 환자나 보호자가 요청하면 수술 장면을 촬영해야 한다.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한 간호사가 지난 3월27일 서울시내 한 종합병원 병동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2024.03.27. kgb@newsis.com
간호사들도 PA간호사의 의료 행위가 법 테두리 안에 들어간 것은 긍정적이지만, 전공의들과 손발을 맞추는 것을 넘어 이들의 업무를 모두 떠안게 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난이도 높은 술기나 치료 행위들이 포함되지 않도록 업무 범위를 명시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가령 기관 삽관 같은 고난이도 의료 행위는 레지던트 1~2년차도 굉장히 하기 어려운 시술로 간호사와 환자 모두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직 전공의들은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없다면 복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전공의들은 지난 6일 '여·야·의·정 협의체'를 구성해 2026학년도 의대 정원 확대 등 의료개혁을 논의하자는 정부·여당의 제안에 대해 '2025학년도 의대 정원'부터 논의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사직 전공의들은 해외 취업을 준비하거나 기존 수련병원이 아닌 동네 병·의원(개원가)이나 종합병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개원 상담부터 기획, 설계, 시공, 홍보, 인허가까지 병·의원 개원 전반을 컨설팅 해주는 업체를 통해 개원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대학병원에서의 수련을 포기하고 전문의로 활동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전날부터 양일간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 지하 1층 대강당에서 개최한 '사직 전공의 근골격계 초음파 실습 강좌'는 참가 접수를 받은 지 1시간 만에 정원 180명을 모두 채웠다. 전공의진로지원TF 간사인 임진수 의협 기획이사는 "정부의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선 대부분 돌아갈 이유가 없다는 게 중론"이라고 말했다.

의료계에선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복귀 없인 의료체계의 존속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 교수는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이 학교와 수련병원을 떠나 있어 내년에는 신규 의사(인턴)와 전문의가 배출되지 않아 최소 2~3년은 이대로 버텨야 된다"면서 "평균 40대 중반이고 번아웃된 상태에서 남은 인력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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