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브콘탁테 출시…러시아 최대 SNS로 성장
러시아 정부 압박에 못 이기고 브콘탁테 매각, 독일 망명
보안성 강화한 메신저 '텔레그램' 출시, 이용자 9.5억명
사생활 보호 최우선 강조…"정부에 텔레그램 개방 못해"
[서울=뉴시스]윤정민 기자 = 텔레그램은 서비스 출시 11년 만에 사상 최대 위기를 겪고 있다. 텔레그램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가 프랑스 수사당국에 조사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텔레그램이 딥페이크 성범죄물 확산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그의 신상에 귀추가 쏠리고 있다.
1984년생으로 마크 저커버그 메타 창업자와 동갑인 두로프가 소셜미디어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러시아의 저커버그'로도 불렸다. 그러나 한때 러시아 정부와 대립한 터라 '러시아판 로빈 후드'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최근에는 '정자왕'으로도 불리고 있다. 그가 러시아 모스크바 병원에 정자를 15년 동안 기부해 12개국에서 100여명의 생물학적 자녀를 뒀다고 밝히면서다.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겠다"…사생활 보호 위해 회사도 팔았다
구소련 태생인 두로프는 2006년 9월 형 니콜라이 두로프와 함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브콘탁테(VK)'를 만들었다.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으로 성공을 거둔 걸 보자 커뮤니티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VK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구소련권, 슬라브계 이민자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창립 1년 반 만인 2008년 4월 VK 월 사용자 수는 1000만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그의 별명은 '러시아의 마크 저커버그'가 됐다.
하지만 그는 VK 창립 약 6년 만에 자신이 만든 플랫폼에 손을 떼야 했다. 러시아 정부 압박 때문이었다. 2011년 러시아 정부가 반체제 인사들의 VK 계정을 삭제하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자신의 계정에 후드티를 입고 혀를 내민 개 사진을 올려 화제가 됐다.
이후에도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이 알렉세이 나발니 등 반체제 인사의 VK 페이지 삭제를 요구했다. 이에 그는 2014년 4월 FSB 공문을 자신의 VK 계정에 폭로하며 항의했다.
결국 두로프는 VK CEO에서 해임됐다. 앞서 회사 지분을 러시아 이동통신기업 메가폰 CEO인 이반 타브린에게 매각한 터라 이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없었다. 두로프는 "이 나라에서 인터넷 사업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독일로 망명했다.
두로프는 지난 4월 CNN 앵커 출신 보수 성향 언론인인 터커 칼슨의 유튜브에 출연해 "내 첫 회사가 내 자식과 같았기 때문에 고통스러웠다"면서 VK를 떠난 당시 소회를 전했다. 이어 "하지만 동시에 나는 자유로워지는 게 낫다는 걸 깨달았다. 누구의 명령도 받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생활 보호 최우선인 텔레그램, 전 세계 이용자 10억명 눈앞
사생활 보호가 최우선이며 어떤 정부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두로프의 의지는 텔레그램 운영 방식에도 드러났다. 종단 간 암호화 기술(송신자 기기에서 메시지가 즉시 암호화되고 서버를 거쳐 수신자 기기에 도착하면 이때 복호화되는 기술)과 함께 일정 시간 지나면 메시지를 자동 삭제할 수 있는 기능도 넣었다.
텔레그램은 이미 두로프가 VK를 떠나기 직전이었던 2013년 8월에 출시했다. 그의 새 메신저 텔레그램은 미 국가안보국(NSA) 기밀자료 폭로 사건으로 주목을 받았다. NSA에 근무한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의 무차별적인 개인정보 수집 정황을 폭로했는데 당시 국가권력에 의해 개인정보가 무단 수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텔레그램 이용자가 빠르게 증가한 것이다.
두로프는 테러 위협을 막는 것보다 사생활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보안성을 강조해 왔다. 2015년 11월에 있던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 당시 테러범이 암호화된 메시지로 테러를 계획하고 이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텔레그램도 테러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두로프는 2016년 CNN과의 인터뷰에서 "테러범들은 다른 메시지 서비스도 사용했을 것"이라며 "텔레그램이든 다른 기술 기업이든 테러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범죄자에게 안전하다고 해서 정부에 (텔레그램을) 개방할 수 없다"며 개인정보 보호가 텔레그램 최우선 가치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익명성 보장 덕분에 텔레그램은 매년 이용자 수 증가세를 보였다. 두로프는 지난 7월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텔레그램 전 세계 월 사용자 수가 9억5000만명을 돌파했다고 전했다. 올해 안에 10억명 달성도 가능할 전망이다.
◆'범죄 소굴' 방조자로 낙인찍힌 두로프 "제3자가 저지른 범죄로 CEO 기소? 잘못된 방식"
문제는 그의 가치관이 그를 최대 20년 동안 감옥생활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두로프는 프랑스 현지시각으로 지난달 24일 오후 아제르바이잔에서 프랑스로 입국하자마자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프랑스 검찰은 그를 미성년자 성범죄물 배포, 마약 거래, 자금 세탁 등 공모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각종 범죄를 위한 소통 공간으로 악용됐는데도 최종 책임자인 그가 알고도 방치했다는 이유였다.
두로프는 5일(현지시각)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 기소 후 첫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인터넷 서비스에 불만이 있는 국가는 서비스 자체에 대해 법적 조치를 하는 것이 기존 관행"이라며 "스마트폰 이전 시대의 법률로 플랫폼에서 제3자가 저지른 범죄로 CEO를 기소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텔레그램 측과 연락이 어려웠다는 프랑스 검찰 측 주장에 대해서는 "텔레그램은 EU(유럽연합) 요청을 접수하고 답변하는 공식 대표를 EU에 두고 있다. 누구나 구글에 '법 집행을 위한 텔레그램 EU 주소'를 검색하면 이메일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개인정보 보호와 준법 사이의 적절한 균형에 대해 해당 국가의 규제 당국과 합의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해당 국가를 떠날 준비가 돼 있다"며 프랑스 또는 EU에서의 텔레그램 서비스 차단도 감수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앞서 2018년 텔레그램이 러시아 정부의 메시지 암호화 해독 키 제출 요구에 불응하면서 러시아 지역에 텔레그램 접속이 차단됐었다. 같은 해 이란 정부가 반정부 시위를 막기 위해 텔레그램 접속을 차단했다. 이란 정부는 텔레그램에 이란 시위대 채널 차단을 요구했으나 텔레그램은 정부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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