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병원 치료 어려워 대학병원 3곳 거쳐"
"사태 이전 대학병원 전공의 경증도 수술"
"경증 대학병원行…의료전달체계 붕괴 탓"
"저수가·의료소송 부담 개선해 바로잡아야"
4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2살 아이가 커터 칼에 손가락을 베이자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동네 외과를 찾았다. 하지만 대학병원 진료를 권유 받았고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그러나 진료는 취소됐고 이대목동병원, 고대구로병원에서도 진료를 받기 어렵자 서울에서 40km 가량 떨어진, 차로 1시간 이상 걸리는 영종도의 한 병원(의원급)으로 가 수술을 받았다.
의대 증원 사태가 발생한 2월 전에는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전공의 수련 차원에서 경증 환자를 수용하기도 했지만, 전공의들이 사직한 데다 이들의 빈 자리를 메워오던 교수(전문의)들조차 사직 또는 휴직 중인 상황에선 불가능 하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 2월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반대해 전공의들이 병원을 대거 떠난 후 대학병원들은 중증 환자 위주로 진료를 보고 있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A 응급의학과 교수는 "전공의들이 떠난 후 교수들이 오롯이 당직을 서야 하는 상황에서 KTAS 1~3등급 환자는 줄지 않고, 중증 환자일수록 대학병원으로 전원이 계속 이뤄지다 보니 KTAS 1~3등급 환자를 보는 것도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말했다. KTAS는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로, 3등급 이상은 응급이자 중증 환자군이다. 1등급에 가까울수록 중증도가 높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2월 이전에는 대학병원에서 응급질환이 아니여도 정형외과·성형외과 전공의들이 몸을 갈아 넣으면서 수술을 해줬던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1차 의료기관에서 치료 받아야 할 경증 질환자가 3차 의료기관(대학병원)을 찾게 되는 것은 적정한 시간에, 적정한 병원에서, 적정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의료전달체계' 붕괴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이 회장은 "경증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대학병원을 찾는 것은 의료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의료전달체계 붕괴를 초래한 요인으로는 턱없이 낮은 수가와 막대한 의료 소송 부담이 지목된다.
이 회장은 "(손가락이 베인) 부위나 출혈량에 따라 다르고 만일 인대가 끊어졌다면 인대 접합 수술이 필요했을 수 있지만 십중팔구 경증질환으로 보인다"면서 "개인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수술 시간은 30분 이상 걸리는 반면 병원은 1만 원을 조금 웃도는 금액을 받게 돼 현재 병원이 환자를 치료할 유인이 없다"고 말했다.
A 교수도 "동물병원보다 수가가 낮다"면서 "(동네 병원의 진료 기피는) 원장이 아이를 붙잡고 진땀을 빼며 수술하는 동안 환자를 여러 명 보지 못해 오히려 더 손해를 보게 되는 구조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특히 소아는 성인에 비해 진료가 까다로워 의료 소송 위험이 크다. 어릴수록 보채고 몸집도 작아서 경험이 없으면 진찰은 물론 채혈도 제대로 하기 힘들다. 아이가 울기라도 하면 이를 진정시키는 데 의사를 비롯해 간호사, 간호조무사 같은 간호인력 등 최소 3명 이상의 인력이 필요하다. 자칫 의료 사고라도 발생하면 소아는 기대여명(앞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는 기간)이 길어 배상액도 수 억대에 달한다.
이 회장은 "수술 후 흉터가 남는다던가 혹시라도 인대 손상이 있는 것을 모르고 수술해 문제라도 생기면 수 천만원대 소송에 휩싸이게 돼서 개인 병원에서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했다. A 교수는 "의사가 최선을 다해 진료한다 하더라도 환자 보호자가 수술 결과에 불만을 품고 맘카페나 페이스북 등 SNS에 해당 병원을 언급이라도 하게 되면 병원은 문을 닫게 되는 등 직격탄을 맞게 된다"고 했다.
이 회장은 "현재 1차 의료기관이 경증 환자를 소화하지 못해 응급실이 1차 의료기관 역할을 하게 됐다"면서 "1차 의료기관이 경증 환자를 진료하도록 하려면 수가를 올려 적절히 보상해주고 의료 소송 부담도 낮춰줘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positive100@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