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큘레이션스' 아트선재센터서 20년 만의 개인전
'완벽한 집은 무엇이고, 또 어디에 있는가' 질문
드로잉, 축소된 모형, 시뮬레이션 영상으로 시각화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서도호'가 서울에 출현했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 ‘스페큘레이션스(speculations)’로 등장한 서도호(62)는 청정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민 머리와 바싹 마른 몸의 자태로 수행한 스님 같기도 했다.
그의 화두는 '만약에(What If)’. '꼬꼬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예술적 상상력이 힘으로 어쩐일인지 세계 각국 미술관들이 러브콜한다.
"다른 세계들을 상상하게 해주는 급진적인 잠재력이 사변적 사유에 있다고 믿는다."
영국에서 거주하고 활동하는 세계적인 K아트 설치미술가인 서도호는 올 한 해 유난히 진격하고 있다. 상반기 스코틀랜드 국립현대미술관·워싱턴DC 스미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데 이어 하반기에는 한국에서 아트선재센터, '프리즈 서울'에서 전시를 선보인다. 내년 5월엔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거장은 혼자 작업하지 않는다. 서울 전시는 LG OLED와 코오롱스포츠의 협업으로 무장했다. LG OLED와 작업은 오는 9월4일 개막하는 '프리즈 서울 2024 아트페어'에서 한국 수묵 추상의 창시자'인 아버지 故서세옥(1929~2020)을 오마주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아트선재센터 전시는 코오롱스프츠가 동참, 그의 상상을 이뤄냈다.
16일 아트선재센터에서 20년 만에 열린 서도호 개인전 기자회견은 성황을 이뤘다.(2010년 리움미술관 개인전 이후 14년 만의 국내 대규모 전시다)
2003년 아트선재센터에서 한국 첫 개인전을 열고 이름을 알린 그는 한옥으로 분신했다. 성북동 한옥집서 살던 기억과 공간이 현실로 뛰쳐 나왔다.뉴욕 고층 아파트에 한옥을 올리는가 하면, 허공에서 떨어진 별똥별처럼 한옥이 공동주택에 박히기도 하고, 영국 런던 고층 빌딩 사이 육교에도 한옥을 세워 이주민의 향수병을 자극한다. 천’으로 지은, 이동 가능한 ‘집’까지 만들어냈다.
'완벽한 집은 무엇이고, 또 어디에 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는 그는 서울에서 미국 뉴욕으로 다시 영국 런던으로 이주해 유목민적 삶을 살아내고 있다.
이날 단독으로 무대에 오른 그는 진지하게 말을 풀어냈다. 서도호에 질문하고 답한 대화를 그대로 전한다.
◆전시 제목이 국문으로 사변적이라는 뜻을 가진 '스페큘레이션스'다. 사변적 사유의 작업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사변적 사유'라는 제목이 한글로는 어려운 제목일 수 있다. 쉽게 풀어서 말씀 드린다면 '만약에'라는 설정을 하고, 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해 나가는 작업 과정이라는 뜻으로 '스페큘레이션스'라는 영어 제목을 붙였다. 제 작업 대부분이 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작품이 된다.
잘 아는 '천으로 만든 건축물'들, 그것도 이같은 과정을 거쳐서 작업이 전개가 됐다. 예를 들면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다면’이라는 전제로 작업이 발전이 된 거다.
'만약에', 영어로 다시 이야기를 하면 왓 이프(what if)라는 전제로 상상을 시작 하다 보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작품들을 구상 할 수 있게 되더라.
상상의 날개를 펴다 보면 중력의 지배를 받는 3차원 세계 안에서 만들 수 없는 그런 작품들까지 구상을 하게 되는데 그런 거를 스케치북 안에 그림을 그려서 계속 가지고 있었다.
스케치북에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게 1991년이다. 제가 미국으로 처음에 유학을 가서 사용하기 시작한 스케치북 그 포맷을 지금도 쓰고 있다. 그 안에 계속 생각나는 것을 일기를 쓰듯이 그림을 그리고 기록을 해 왔다.
대학 졸업을 하고 작가로 데뷔를 해서 작품을 세상에 공개를 하고 전시를 하다 보니까 어떤 경험을 하게 됐냐면, 관객 분들 입장에서는 작품 한 점 보고 그다음 작품을 보려면 1년, 2년을 기다렸다가 보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큰 규모의 작품들이 주다 보니까 작품 하나 만드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니까 전시를 다른 작가들만큼 자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평론가든 큐레이터들이 저희 스튜디오에 와서 많이 놀란다. 전시회에서 보여주는 거 외에 굉장히 다른 것들이 스튜디오에서 진행이 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프로젝트들을 저만 가지고 있으면 관객 분들은 영원히 모르시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 다음 거를 어떤 형식으로 시각화 해서 같이 나눈다면 띄엄띄엄 제가 보여드리는 작품 사이에 빈 갭을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제 작품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라도 더 쉽게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2003~2004년경부터 스케치북에 담아뒀던 아이디어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당시에 '스페큘레이션스 프로젝트'라는 가제를 가지고 시작을 한 15개 정도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프로젝트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조금씩 조금씩 만들고 있다가 지금 많이 모여서 이번에 아트선재센터에서 전시를 하게 된 거다.
그런데 전시장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전시장에 나온 작품들은 예를 들면 건축가의 전시를 가본 경험이랑 비슷한 경험을 하셨을 거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처음에 시작했을 때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프로젝트라고 생각 했는데 시각화 하고 만들어 놓으니까 그 프로젝트들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기회들이 오더라. 이번 전시장에서도 아마 한 3분의 1 정도는 그때 만든 작품들이 실제로 들어가 있다. 물론 제가 최초에 구상했던 거랑은 조금은 다르지만 스페큘레이션스 안에 있었던 아이디어들이 나중에 현실화가 된 것들이 이번 전시에 포함이 됐다.
◆건축적 작업들의 개념, 이주민으로서 불완전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작업의 목적성 지향성은 무엇인가?
=사실 목적성이 없다. '브릿지 프로젝트' 예를 들면 제가 항상 이동이 가능한 작품을 전시를 전제로 생각을 할 때는 종착역 목적지를 생각하지 않고 한다. 제 기본적인 태도다.
'브릿지(다리)프로젝트'를 보셨겠지만 서울에서 북극점까지의 어떤 다리를 만드는 작업이다. 저한테 제일 중요했던 집, 세계도시 제일 가운데에 '퍼펙트홈', 완벽한 집을 짓겠다는 그런 설정을 하고 사유를 하기 시작한 작업이다. 사실 서울에서 북극점까지의 거리가 굉장히 긴 거리다. 비행기를 타도 몇 시간을 타고 가야 이동할 수 있는 그런 거리인데, 빠른 이동을 생각한 게 아니라 발로 걸어서 도보로 이동을 하는 거를 전제로 했다. 그래서 가다가 죽을 수도 있는 거다. 너무 길이 멀어서.
사실 '퍼펙트 홈'이라는 건 핑계고 여정, '서유기'를 읽는 경험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다. '천축'이라는 목적지를 설정해 놓고 가는 과정에 일을 풀어놓은 것이 '브릿지 프로젝트'다. 도보로 걷는다면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는 긴 여정 중에 환경 문제도 부딪혀서 그걸 공부하게 되고 북극해가 얼음으로 덮여 있고 춥다는 것은 다 알지만, 그게 유기물로 이뤄져서 그 안에 해류가 있어서 한 방향으로 한 참 돌다가 2년 후에 반대 방향으로 도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인간이 생존하기 힘든 장소이고 집을 지을 수가 없는 곳이다. 계속 돌고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다 집을 짓겠다는 신념을 세우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또 배운 것이 그 사람이 살기가 힘든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은 원주민들이 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원주민들은 저희랑 피가 섞여 있는 분들이다. BBC 다큐를 딸들이랑 보는데 '아빠랑 똑같은 사람이 나오네' 그러더라. 그 순간에 5000km가 단축이 되면서 집 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게 됐다.
그러니까 묘하게 서울의 집 생각을 더 하게 됐다. 북극에 집을 짓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서울의 집을 더 생각하게 되고 ‘과연 우리한테 집이라는 게 뭔가, 과연 이게 우리가 물리적으로 서울에서 사는 집을 떠난다고 하면 서울에서 사는 집은 우리한테 존재하지 않는 건가? 하는 묘한 경험을 했다.
북극은 지정학적으로 굉장히 분쟁의 여지가 많은 지역이다. 수많은 자원이 북극에 깔려 있기 때문에 강대국들이 호시탐탐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한다. 사실은 '공해'다. 유엔의 법규를 찾아봤더니 '공해'에는 나라를 설립할 수 있더라. 유엔에 전화했다. 하하. '지금 집을 지을려고 하는데 나라로 선포할 수 있느냐' 했더니 '잠깐 기다려봐라' 하더라. 다시 전화를 해 알아보니 현실적으로 나라를 선포할 수 있는데 법적 제약이 많은데 일일이 설명하긴 그렇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좌충우돌하면서 신문 언론이나 매체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 조금 심화된 정보와 지식을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공부하는 게 사실은 목적이다. 제가 장황하게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드렸는데 이 목적 자체가 없는 프로젝트인데 또 모순적으로 서울과 북극을 잇는 다리를 지을 수 있다. '돈 만 있다'면 그 안에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신념, 자기 최면을 걸면서 하는 프로젝트다. 결론적으로 종착역은 없다. 완전히 오픈된 프로젝트다.
10년 전에 런던에 이사를 가기 전 뉴욕에서 살 때 서울하고 뉴욕 사이를 잇는 다리를 짓고 그때는 태평양에 완벽한 집이 올라가게 됐었다. 당시 그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렇게 까지 심화된 프로젝트를 할 줄 몰랐다. 지금 이 프로젝트는 진행 중이기 때문에 계속 발전이 될 거다.
이번 전시 버전에는 들어가 있지 않은데 캠브리지대학 철학과 교수님, 미국 라이스 대학교 구조공학과 대학생들과 교수님과 같이 협업을 했고 지금은 북극해 근처에 사는 원주민 전문가 휴고 브로디라는 전설적인 인류학자와 작업한다. 원주민의 목소리를 그분을 통해서 듣는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고 있다.
또 물방울로 다리를 만드는 아이디어가 있는데 ,박테리아가 어떤 방울을 만들어서 부력을 가지는 어떤 구조체, 생물학적인 다리를 지으면 어떨까 상상을 했었다. 그런데 건축가와 동시에 생물학자가 보고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해서 이것도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여튼 그런 식으로 일이 많이 번지고 있어서 제 스튜디오에 오면 여~러가지가 많이 진행이 되고 있다. 그래서 화랑이랑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것은 내 작업의 빙산의 일각이다. 건축물, 생활용품 등 '천 작업'이 저를 대표하는 작품처럼 됐지만 천 작업은 빙산의 일각이다. 사실은 '아트선재 스페큘레이션' 같은 작업이 내 머리에 꽉 차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한국 사람들이 어떤 점을 느끼고 경험 했으면 하나?
=사실 제가 통계적인 숫자는 모르겠지만 서울 인구에서 서울 토박이는 많지 않은 거로 알고 있다. 그리고 사실 이주는 너무나 빈번히 일어나는 것이다. 제 작품들의 대부분은 저의 자전적인 그런 성격이 크다. 제 경험이 많은 분들의 경험을 대변할 수는 없다. 100% 제 작품이 관객들이랑 소통할 거라는 그런 전제도 하지는 않고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묘한 게 자라난 환경이나 배경이 전혀 다른 사람들도 제 작품에 대해 공감을 하시는 거를 경험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특별하게 한국 사람이라서 어떻고 또 외국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르고 그런 건 것 같지는 않다.
제가 작가로서 전문적으로 활동을 한 지가 한 30년 됐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인종과 국가, 성별을 초월한 아주 기본적인 정서를 건드리는 그런 코드가 제 작품에 있지 않나'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의 한옥 집을 천으로 만들어 영국에서 전시 하면 한옥은 영국 사람한테는 너무나 낯선 건축 구조물이다. 한 번도 보지도 않았고 들어 가보지도 않았던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작품 앞에서 우는 분들도 계신다.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공감하는 요소들이 있는 것 같다.
◆이번 전시 작품들속에 결이 다른 '사천왕사를 위한 제안'이라는 작품을 흥미롭게 봤다. 종교 유적지고 지금 터만 남아 있는 불교 유적지다. 사천왕사 터를 관심 있게 생각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또 실제 유적지 건설하는 것을 염원한다고 했는데 사천왕사 터에 이 작품을 실제로 설치할 계획이 진행 중인가?
=사천왕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전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학예연구사와 프로젝트를 몇 번 하면서다. 2012~13년에 덕수궁을 주제로 한 전시가 있었다. 당시 김 학예연구사가 저를 초대했는데 그때 저는 함녕전, 고종의 침실을 골라 거기에 설치 작업을 하게 됐다. 함녕전에 대해 리서치를 하다가 고종이 거기서 뭘 마시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 궁녀인 신분이 나중에는 후궁처럼 되셨다. 70년대에 살아계신 조선조 말기 궁녀나 내시 분들을 인터뷰해서 만든 책이 있었는데 거기에 있는 한 줄의 글이 나온다. '고종황제가 밤에 주무실 때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보료 세 채를 놓고 주무셨다'. 그 한줄을 가지고 함녕전 프로젝트도 풀어 나갔다.
그것도 사실은 스페큘레이션스 프로젝트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고종 황제가 시카고 박람회 때 여러 가지 물건을 기증을 했는데 그때 보료가 있었다. 시카고 박물관에 연락을 해서 보료를 보여 달라고 했는데 연결이 안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제가 어떠한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 알고 있는 김 학예연구사가 삼국유사에 나온 이야기를 추적해 알려줬다. 문무왕 때 당나라가 신라로 쳐들어오는 거를 알고 있었다. 이미 서해에 당나라 해군이 몇백 척이 몰려와 있었다. 준비할 틈이 없어 회의를 열고 고민을 했는데 그때 명랑법사라는 고승을 불렀다. 명랑법사가 시간이 없으니까 화려한 색의 비단을 가지고 절을 지어서 기도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래서 12명의 유명한 스님을 모셔서 기도를 한 모양이다. 실제로 이것은 역사에 남은 건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풍랑이 불어서 다 가라 앉아 당의 침공이 무산이 된 거다. 그 이후에 거기다 실제로 절을 지은 게 사천왕사다.
사천왕사 작업은 김 학예연구사가 그 한 줄을 보고 저한테 이메일을 보내서 그렇게 해서 시작된 작업이다. 현장에 가서 남은 사적지를 봤는데 아이러니컬한 게 사천왕사 사적지가 다 흙으로 덮여 있었는데 일제시대 일본 사람들이 발굴한 거더라. 철도를 내기 위해서 서브웨이를 하다가 발견이 됐던 거로 기억을 하는데, 철도가 사실 가로질러 가고 있다. 그런데 나중에 지은 터에는 대웅전 법당 자리도 있고 그 앞에 또 자리도 있다. 지금 학계에서도 어떤 용도의 자리였는지 모르는 터가 쌍으로 남아 있는 거다.
기록에 많이 남지 않았지만 스님들이 모여서 하신 그런 의식이 '문두루', 그러니까 고대 불교의 한 유파인데 그런 비법을 이용을 했다고 그러는데 나도 그것에 대해 리서치를 했다. 이 역시 스페큘레이션스, 그러니까 항상 스페큘레이션스 프로젝트의 저변에는 리서치가 기반이 된다.
그러나 리서치를 하고 항상 한계에 부딪친다. 고종 황제 때도 자료가 하나도 안 남아 있다. 삼국유사는 말할 것도 없고 몇천 년 전 이야기니까 자료가 안 남았다는 게 한계이기도 하지만 아티스트한테는 상상력을 마음대로 발휘를 할 수 있는 기회다. 사실 제가 어떤 아이디어를 내도 그게 아니라고 반박할 수 없다. 왜냐면 자료가 안 남아 있기 때문에. 그래서 굉장히 자유스럽게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그런 스타일 때문에 제가 스페큘레이션스를 좋아하는 것 같다.
사천왕사에 대한 논문이라는 논문은 다 읽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지금 남은 자리는 천을 만든 구조물이 서 있을 때가 아닌 거다. 왜냐면 대웅전은 이미 그 이벤트가 끝난 다음에 지은 거기 때문에. 그런데 제일 문두루 비법을 행했을 장소가 그 2개인 것 같아서 거기를 제 버전의 천, 비단으로 만든 사찰의 형태를 만든 거다.
사실 실제로 작품을 설치하려고 문화재청에 연락해 당시 문화재청장도 보고 작업을 만들려고 했는데 코로나가 터졌다. 그래서 그때 그냥 흐지부지됐다. 그렇지만 제 바람은 스페큘레이션스에 있는 모든 프로젝트는 언젠가 기회가 된다 그러면 이루고 싶은 것들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작품도 인연이 닿아야 한다. 장소, 시간, 사람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 제 태도는 일단 가지고 있으면 인연이 닿으면 이루어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아트선재서 20년 만의 전시, 2003년 전시와 무엇이 다른가?
작가가 생전에 한 미술관에서 두 번 전시를 하는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좋은 후배 작가들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생전에 두 번 한다는 건 쉽지 않은데, 김선정 전시감독이 전시 하자고 했을 때 흔쾌히 한 이유가 몇 가지가 있다.
하나가 우리가 2003년에 하고 20년 시간이 지났는데 둘이 어쨌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 미술계에 아직 남아서 한 분은 큐레이터를 계속 하시고 저는 지금 계속 작품을 하고 그래서 그게 참 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흔쾌히 하기로 했다.
두 번째는, 2003년 전시 때는 전시 공간의 물리적인 조건을 굉장히 많이 고려해서 작품을 했다. 그때 아트선재라는 공간을 완전히 제가 소진을 했다. 진이 빠지도록 공간을 들여다보고 연구를 했었기 때문에 이번 전시는 그런 것을 떠나서 자유롭게 전시한 게 차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번 전시는 선정 씨랑 우정(friendship)ㅡ같은 길을 걸어 온 동료로서 '전시를 함께 한다'는 의미가 큰 전시다.
1시간 가량 서도호는 대본 없는 '사변'을 순수하게 토해냈다. 지독한 탐구자이자'사변가라는 것을 증명한 자리였다. 불가능할 거 같은 예술가의 상상력이 구현되는 게 놀랍다고 하자 그도 "만들어 지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이미지가 넘치는 메트릭스 같은 세상에서 마르지 않는 수공예적 아이디어 때문에 스튜디오 직원들이 고생이 많다. 그가 "아이디어 새로 나왔어. 이것 좀 이야기하자"고 하면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또?~"라는 말이 튀어나온다고 한다.
건축가, 생물학자, 공학가, 인류학자 산업디자이너 등과 작업하며 그림을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모형과 도면, 영상 등을 제작하는 그는 '21세기 다빈치'같다.
복잡하고 미묘하고 끈질긴 작업으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20년 만에 아트선재센터에서 여는 개인전은 스페큘레이션화 된 그의 머릿속을 풀어놓은 듯하다.
그의 유명한 작업인 '천으로 만든 집'은 없지만 엉뚱한 상상력이 빛나는 볼거리가 풍성하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그의 대표작인 '공인들'(1998)을 키네틱 버전으로 마침내. 구현해 최초 공개한다. '우리는 누구를 기억하고, 무엇을 기념해야 하느냐'를 묻는 '공인들'은 지난 4월 말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 미술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 정원에 설치됐다. 초록 잔디를 밟고 두 손을 번쩍 들어 동상을 떠 받치는 군상, '공인들'의 놀라운 힘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 나온 '공인들'은 분주하다. 원작 6분의 1 크기의 움직이는 버전의 이 작품은 고정적이고 장소 특정적인 동상의 성질에 도전한다. 300명의 작은 인물들이 '정렬의 힘'으로 동상대를 이동시키고 있다. 집이 고정된 개념이 아니듯, '서도호'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고 있다. 열정 많은 이주민으로, 보이지 않는 사유의 전략가로 이 세계를 조금 더 세밀하게 보여주는 욕심이다. 동상 밑에서 상생하며 촘촘하게 움직이는 '공인들'은 '서도호 세계관'의 기둥으로 보인다. 전시는 11월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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