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 없는 독립유공자…마을 주민들이 직접 모신다

기사등록 2024/08/14 07:00:00 최종수정 2024/08/14 08:14:52

보은 내북면동지회, 66년간 이승칠·석창문 지사 추도

1959년 결정 "모셔서 영광…흩어지는 애국심 아쉬워"

[보은=뉴시스] 13일 내북면애향동지회 회원들이 이승칠 지사 공적비 앞에서 추모 묵념을 하고 있다. 2024.08.13. juyeong@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보은=뉴시스] 서주영 기자 = "자기 부모도 모시기 힘든 세상에 뭘 그렇게까지 신경 쓰냐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대한민국을 지켜낸 분들에 대한 추모와 존경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 아닐까요?"

13일 충북 보은군 내북면 이승칠 지사 공적비 앞에서 내북면애향동지회(동지회) 양재덕(79) 회장과 회원들은 고개 숙여 그의 애국정신을 기렸다.

66년간 이어온 추도인 만큼 공적비 앞에 선 이들의 얼굴엔 엄숙함과 결연함이 배어 있었다.

내북면 주민들은 지역의 후손 없는 독립지사를 모시기 위해 1959년 3월1일 스스로 동지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현재 이승칠 지사와 석창문 지사를 모시고 있다.

당시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이 지사가 순절한 곳에 비석을 세운 것이 모임의 시초였다.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을 따라 회원 수도 33명으로 정했다.

[보은=뉴시스] 13일 내북면애향동지회 양재덕 회장이 모시고 있는 독립지사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2024.08.13. juyeong@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지사의 묘가 멸실된 상태였기 때문에 '이대로 방치하면 안 된다. 우리가 모셔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어요. 매년 음력 9월 초정일(初丁日)에 비석에서 이 열사 추도제를 드리기 시작했죠."

1963년에는 석창문 지사 가족으로부터 묘를 넘겨받아 매년 음력 3월 초정일에 석 의사의 제사도 거행하고 있다.

이 지사 가족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석 지사의 친척은 충남 부여에 거주하고 있으나 제사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처음 모임을 결성하신 분들이 우리 2세대 윗분들이었어요. 반백년이 넘는 기간 3세대에 거쳐서 자비를 모아 제사 지내고 손수 묘와 비석을 관리한거죠. 긴 시간 순국선열들을 직접 모실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영광입니다."

내북면 이원리 출신인 석창문 지사는 1907년 일본이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자 의병에 들어가 한봉수 의병장의 참모장이 됐다.

그는 한 의병장과 함께 속리산, 청주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워 혁혁한 공을 세웠다. 청주 중앙공원에 위치한 한 의병장의 공적비에 그 내용이 기록돼 있다.

[보은=뉴시스] 13일 내북면애향동지회 양재덕 회장이 석창문 지사 공적비를 가리키고 있다. 2024.08.13. juyeong@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듬해 석 지사는 순찰 작전을 수행하던 중 오대산에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일본군이 석 지사에게 고문을 가하며 의병 본채 위치를 심문했어요. 석 지사는 동지를 지키고자 혀를 깨물고 자결했다고 합니다"

향년 24세. 결혼한 지 수개월밖에 안 된 새신부와 부모를 뒤로하고 그는 눈을 감았다. 부인은 담담히 시신을 수습해 이원리의 현 위치에 장례를 치렀다.

사흘 후 부인은 집 감나무에 목을 매어 자결한다. 정부는 1991년 석 지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했다.

내북면 봉황리 출생인 이승칠 지사는 사헌부에서 재직 중 1910년 경술국치 소식을 듣자 다량의 아편으로 자결 순국을 시도했다. 가족들에게 발견돼 뜻을 이루지 못한 그는 고향으로 내려와 지내던 중 1912년 122대 일본 왕의 사망 소식을 접한다.

일본 경찰이 주민들에게 상복을 입도록 강요하자 그는 주민 앞에서 서서 "우리 왕은 따로 계시는데 일본 왕이 죽었다고 상복을 강요하느냐"며 항의한다.
[보은=뉴시스] 13일 내북면애향동지회 회원이 이승칠 지사가 투신한 봉황대를 가리키고 있다. 2024.08.13. juyeong@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며칠 뒤 집을 나선 이 지사는 봉황대에 올라 절벽 아래 달천으로 투신한다. 당시 나이는 64세.

그의 유서에는 "하늘에 두 개의 해가 없고 백성에게도 두 분의 왕은 없다. 내가 원수의 상복을 입으면 만대까지 부끄러울진대 비록 죽을지언정 오랑캐의 상복은 입지 못하겠다"라는 내용이 쓰여있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주민 아무도 이 지사의 시신을 수습할 생각을 못 했습니다. 건드리는 순간 일본 경찰의 요시찰 인물로 낙인찍힐 게 뻔하기 때문이죠."

시신이 부패 돼 물에서 냄새가 진동하자 그제야 일본 경찰은 시신을 수습하게 했다. 주민들은 장례를 치렀으나 일본 경찰이 두려워 묘 관리를 하려는 이가 없었다.

"당시 동네 어르신 한 분이 일본 몰래 묘 관리를 했었다고 해요. 그러다 그분이 돌아가시자 묘가 자연에 파묻혀 사람들에게 잊혔습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에서 이 지사의 묘는 '멸실'됐다고 나와 있다. 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양 회장과 회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옅어지는 독립지사에 대한 마음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세대가 지날수록 애국심이나 나라에 대한 충심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순국선열에 대한 추모 정신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은=뉴시스] 13일 내북면애향동지회 회원들이 모시고 있는 독립지사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다. 2024.08.13. juyeong@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시골 지역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한 회원 결원도 걱정이다. 현재 33인 인원 모두 70~80대의 고령자다. 결원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마땅히 보충할 인력을 찾기 힘들다.

양 회장은 "지역에 젊은 사람이 없고, 있어도 모두 귀농·귀촌자들로 고향이 아닌 외부인"이라며 "아직 지역 출신으로만 가입을 받고 있지만 곧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했다.

이어 "외부인을 받자니 애향심을 가지고 마음을 다해 모실 수 있을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다행히 지난 2012년부터 보은군이 동지회와 발맞춰 추모에 동참하고 있다. 현충 시설 추모제 예산 지원과 함께 묘·비석 환경 정화 업무도 수행 중이다.

광복절을 앞둔 동지회는 군에 석 지사 묘소 안내판 설치를 피력했다. 이 지사 공적비에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어 방문하는 시민들이 그의 공적을 알아보는 반면 석 지사의 묘소에는 비석과 태극기만 있을 뿐이다.

군 관계자는 "지역 보훈에 힘쓰는 것도 지자체의 임무 중 하나"라며 "석 지사 묘소 안내판 설치는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어 "동지회 어르신들의 헌신은 군의 자랑"이라며 "내북면 사례가 널리 알려져 지역 주민들이 주도하는 보훈 문화가 활성화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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