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동면 한 농가 양계장에서만 닭 1만마리 폐사
"축사 1동당 3000만원 에어컨은 엄두도 못내"
낮은 사육비 단가로 보상 책정…20%는 제외돼
[음성=뉴시스] 서주영 기자 = "전염병이 잠잠해져서 한숨 돌리나 했더니 이젠 폭염이네요. 버티기가 힘듭니다."
3일 오후 2시 음성군 맹동면의 한 양계농가. 35도를 오르내리는 강렬한 햇빛이 축사를 내리쬔다.
축사관리시스템에 표기된 내부 온도는 32.8도, 습도는 70%에 달한다. 목표 온도 21.5도에 비해 10도 이상 차이난다.
이날도 출입구 근처에 닭이 축 늘어져 숨져 있었다. 사체를 치우던 농장주 A(60대)씨는 "여긴 구석이니 이 정도지만, 축사 중앙으로 가면 닭 사체가 더 많이 나온다"며 "요즘은 폐사 걱정에 축사 들어가기가 겁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축사 내 닭들은 주둥이를 벌린 채 가쁜 숨을 몰아냈다. 몸속 더위를 내뿜느라 목 부위가 펌프처럼 쉬지 않고 움직였다.
몇몇 닭은 날개와 몸 사이 공간을 벌려 바람을 통하게 했다. 폭염 속에 살아남기 위한 닭들의 몸부림이었다.
A씨는 "저 자세가 날개 속에 스며든 더위를 밖으로 내보내는 행위"라며 "공간에 열이 가득 들어차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8월3일 폐사 176마리'.
A씨가 축사 입구 화이트보드에 축사 한 동에서 폐사한 마릿수를 적었다. 축사 8개 동에서 12만 마리의 닭은 키우는 A씨는 이번 폭염에 1만 마리를 잃었다.
대형 환풍기 8대가 축사 내부 공기를 돌리고, 안개분무시설이 쉴 새 없이 물을 뿌려대지만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달 24일 300마리를 시작으로 하루에 1000마리씩 죽어나가요. 닭을 키운 지 10년째 되는데 이 정도로 닭이 폐사한 건 올해가 처음입니다. 정말 지독한 더위네요."
양계장 집단 폐사를 막기 위한 시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물이 증발될 때 흡수되는 열(기화열)을 이용한 '쿨링패드' 시스템을 설치하면 축사 내부 온도를 6도가량 낮출 수 있다. 일명 '축사용 에어컨'이라고도 불린다.
문제는 비용이다. 웬만해선 설치 비용과 전기요금을 감당하기 어렵다.
A씨는 "축사 1동에 3000만원 정도 하니 8동을 설치하려면 2억4000만원이 든다"며 "전기요금도 2배 정도 늘어난다고 해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폭염 직전 가축전염병 피해도 입었다. 지난 2월부터 5개월간 음성지역에 저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유행하면서 닭 6만 마리를 폐사 처리했다.
"저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는 고병원성과 달리 예방적 살처분을 하지 않아 보상이 나오지 않아요. 3종 가축전염병인 저병원성은 폐사는 폐사대로 하고 보상금도 받을 수가 없는 거죠. 질병은 가축보험에 해당하지 않아 그대로 농가 빚으로 쌓입니다. 여기에 폭염까지 덮치니 죽을 맛이지요."
지속된 물가 상승에도 유일하게 오르지 않는 사육비도 양계농가를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양계농가는 닭고기 업체에서 병아리를 받아 닭으로 키운 뒤 사육비를 받고 업체에 납품하는데, 사료비·인건비·전기요금 등 실질적인 사육비 상승과 달리 업체에서 지급받는 사육비는 그대로라고 한다.
폭염에 따른 가축재해보험도 사육비를 기준으로 해 피해액의 80%만 산정된다.
A씨는 "100%를 보전 받아도 겨우 농가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20%를 제외하면 양계농가로선 큰 타격"이라며 "날로 폭염 피해가 심각해지는 마당에 사육비라도 현실화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올해 충북에서는 A씨 축사를 비롯해 닭 4만6930마리가 폭염에 죽어나갔다. 냉방기 오작동으로도 1만6145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특히 음성에 피해가 몰렸다. 폭염에 폐사한 닭 81%가 이 지역 양계장에서 쏟아졌다.
음성군이 살수차를 동원해 매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축사 지붕에 물을 뿌리고, 모든 가금 농가에 스트레스 완화제를 지급했으나 살인적인 더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A씨는 "폭염에 전염병, 낮은 사육비까지 삼중고에 숨을 못 쉬겠다"며 "더 이상의 피해 없이 폭염이 하루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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