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 1만30원…월 환산액 209만6720원
작년보다 심의기한 절반 줄었지만…갈등·파행 여전
최임위원장 "고용부 중심으로 제도 개편 논의 필요"
정부, 2019년 개편안 마련했으나 국회서 '지지부진'
"차라리 결정 산식 만들자"는 의견도…개편 논의 촉각
[서울=뉴시스] 고홍주 기자 =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9860원)보다 170원 오른 시간당 1만30원으로 결정됐다.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37년 만에 처음으로 시간당 최저임금이 1만원을 넘긴 것이다.
하지만 노사가 이견을 보이다 법정 심의기한을 넘기고, 막판에 표결로 결정하는 구도가 올해 역시 반복됐다. 심의가 끝난 뒤 노사는 물론 이인재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위원장이 직접 개편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해, 개편 논의가 본격화될지 주목된다.
14일 최임위에 따르면, 최임위는 지난 11일과 12일 양일에 걸쳐 밤샘 회의를 연 끝에 2025년 적용 최저임금을 올해 대비 1.7% 오른 1만30원으로 의결했다. 이로써 내년 1월1일부터는 주40시간을 일하는 근로자는 월 환산액 최소 209만6270원을 받게 된다.
◆심의기한, 전년 대비 절반이지만 갈등·파행 재연…'졸속결정' 비판도
최저임금 심의는 매년 3월 말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하면 공익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근로자위원 9명으로 구성된 최임위에서 90일 간 논의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는 명문화된 규정일 뿐, 최저임금제도 도입 이후 심의가 법정 기한을 지킨 사례는 단 9번 뿐이다. 올해 역시 지난달 27일이었던 법정 기한을 훌쩍 넘겨 53일 만에 심의를 마무리했다.
역대 최장인 '110일 심의'라는 기록을 세웠던 지난해 최임위와 비교해 심의 기한은 줄었지만, 올해 역시 심의 과정에서 갈등과 파행이 재연됐고 사실상 인상 수준 논의는 3일에 걸쳐서만 진행되는 등 '졸속 결정'이란 비판도 함께 나왔다.
그동안 최임위는 경영계와 노동계가 각자 요구안을 주장하다 공익위원들이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하고 공익위원안이 표결에 부쳐지면 한쪽이 반발해 퇴장하는 관행이 반복돼왔다.
올해 심의에서는 노사가 각각 1만2600원과 9860원 동결로 시작해 4차 수정안까지 제출 받아 차이를 900원(노동계 1만840원, 경영계 9940원)까지 좁혔지만, 더 이상 좁힐 수 없다는 판단 하에 공익위원 측에 심의촉진구간 제시를 요청했다. 이에 공익위원들은 '1만(1.4% 인상안)~1만290원(4.4% 인상)'을 제시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소속 근로자위원 4명은 심의촉진구간에 반발하며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퇴장했다.
이후 노사가 각각 최종안으로 1만120원과 1만30원을 제시했고, 표결 결과 사용자 안 14표, 노동자 안 9표로 1만30원으로 결정됐다. 공익위원안만 나오지 않았을 뿐, 공익위원들이 사실상 키를 쥔 '캐스팅보트'가 되는 관행이 또다시 되풀이 된 것이다.
의결 직후 불만은 노사 모두에게 터져나왔다. 노동계는 시간당 1만원을 가까스로 넘긴 데다, 인상률이 역대 두 번째로 낮은 1.7%라는 데 불만을 제기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심의촉진구간 자체가 이미 사용자 측에 유리하게 나왔다"며 "그래도 저임금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려야 한다는 심정에서 물가상승률 예상치만큼인 2.6% 인상안을 제시한, 반면 사용자측은 겨우 1.7% 인상안을 제시했음에도 공익위원 다수는 사용자 편에 섰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역시 "최근 2년 간의 물가폭등기에 최저임금이 물가인상폭보다 적게 오르면서, 또 실질임금이 하락해 최저임금은 본래 취지를 이미 잃어버리고 있다"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한계 상황에 직면한 우리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절박함을 고려하면 동결됐어야 한다"며 "최저임금 수용성이 현저히 낮다고 밝혀진 일부 업종만이라도 구분적용하자는 호소에도 단일 최저임금을 적용하기로 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노사는 물론 위원장도 "현행 제도 한계"…개편 논의 진전될까 '촉각'
이러자 노사는 입을 모아 제도개선 필요성을 언급했다.
특히 민주노총은 "노사가 공방을 벌이다 마침내는 공익위원이 '정부의 의지'를 실현하는 현 최임위 논의 구조에서는 현실적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공익위원들은 제 입맛에 맞는 제시안이 나올 때까지 양측에 수정안 제시를 요구하다 종국엔 자신들이 만든 근거 없는 산출식으로 심의촉진구간을 설정했다. 근본적 변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이인재 최임위원장도 의결 직후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을 명확히했다.
이 위원장은 2018년 발표한 논문에서 '정부가 노사와 전문가 의견을 경청해 (최저임금을) 직접 결정하는 방식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위원장은 간담회에서 "지금의 결정 시스템으로 봐서는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논의가 진전되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느냐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라며 "여러 안이 있는데, 앞으로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개편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와 후속 조치가 있었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와 별도로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장관은 지난 5월 출입기자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노사정 또는 노사공 3자의 사회적 대화인데, 지금 입법 논의는 여야 간 워낙 스펙트럼이 넓어서 국회 또는 정부에서 정하자는 얘기가 있다. 한 번 쯤은 우리 사회에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최저임금제도가 1988년도에 처음 시행됐는데 이제는 한번 고민을 해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제도개선 필요성 언급은 한두 해 반복된 것이 아닌 만큼, 실제로 제도 개편 논의가 진전될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주무부처인 고용부는 2017년 '최저임금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산입범위, 결정구조, 차등적용 등 제도 개선 사항에 대한 집중 논의를 벌였다. 고용부는 이들이 마련한 권고안을 토대로 2019년 최임위를 이중구조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개편안까지 마련했으나, 노동계 반발로 국회에서의 논의가 흐지부지 되면서 법제화에 실패했다.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는 지난해 11월 당시 최임위 공익위원들과 학계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성과와 한계 : 제도개혁을 위한 모색'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서는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게 산식을 정식 제도화하자는 데 공감대가 모였다.
최임위 공익위원들은 2021년부터 공익위원안을 제시할 때 '경제성장률 전망치+소비자 물가상승률 전망치-취업자 증가율 전망치'라는 산식을 사용하고 있다.
당시 최임위 공익위원이었던 이승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예년에 비해 올해(2023년) 양측의 수렴도가 높았는데, 제가 볼 때는 노사 모두 아무리 다른 안을 내봤자 결국엔 그쪽(공익위원 산식)으로 갈 것이라는 부담감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 사이 협상의 요소는 분명히 있어야 하지만 산식을 중심으로 심의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제13대 최임위 공익위원으로 위촉된 이정민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도 당시 토론회 패널로 참석해 "최적의 최저임금 수준을 연구를 통해 찾아낸다고 해도 모호할 수 있는데, 그래도 산식을 사용하는 게 차선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논의의 출발선으로서 좋은 기능을 할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며 "최임위의 전문위원회 기능을 강화하고 연구원들이 산식을 통해 최초 제시안을 제시한 뒤 다른 여건들을 넣어서 협상하는 게 현재로서는 차선책일 것 같다"고 밝혔다.
현재 세계 여러 나라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하고 있다. 독일, 스페인, 아일랜드, 영국, 포르투갈,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은 우리처럼 노사정이 최저임금을 의결한다. 반면 그리스, 네덜란드, 프랑스, 뉴질랜드는 정부가 결정하고 있다.
이 밖에도 미국은 의회가 결정하며 브라질이나 캐나다 온타리오주처럼 정부가 초안을 마련하면 의회가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호주는 전문가위원회가 각종 지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국가와 업종별 최저임금 등을 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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