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군,업체에 매년 왕우렁이 공급 보조금 4~7억 지원
제초 우렁이, 일부 미신청 농가 모 갉아먹어 '애물단지'
주민 "감독 소홀로 혈세 낭비" 함평군 "일괄신청 관례"
[함평=뉴시스] "세금 먹는 애물단지죠. 신청도 안 했는데 논에서 어린 모만 갉아먹고 있으니…"
1일 오전 전남 함평군 나산면 한 정자 인근에는 논 잡초 제거를 위해 배달된 왕우렁이가 방치돼 있었다.
2012년부터 전남도와 각 시군은 재배농가의 제초 지원을 위해 왕우렁이 공급을 추진해오고 있다. 농민이 날인을 찍은 신청서를 면사무소에 제출하면 업체가 보조금을 받고 우렁이를 농가에 배달하는 형식이다.
해당 마을은 매년 모내기를 마친 6월 말이면 20여개 농가에 왕우렁이가 배달됐다.
실제 농가 19곳 주민은 왕우렁이 지원 사업을 신청하지 않았지만, 전임 이장이 신청서를 일괄 작성해 제출하면서 우렁이가 배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주민은 "신청도 한 적 없는데 우렁이 2㎏가 배달돼 논에 뿌렸다"며 "때 되면 모든 농가에 제공되는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왕우렁이는 미신청한 농가의 논까지 유입돼 애물단지로 전락하기도 했다.
왕우렁이가 잡초 대신 어린 모까지 먹어 치우다 보니 일부 모는 뿌리 부분만 남아 있었다. 곳곳엔 왕우렁이의 붉은 알이 붙어 있었다.
이 때문에 한 농가는 수로를 타고 들어오는 왕우렁이를 막기 위해 그물망을 설치해 놨지만 역부족이었다. 마을 이장은 "왕우렁이가 모를 갉아먹어 다시 심었다"고 설명했다.
일부 주민은 지자체 관리·감독 허술로 보조금이 적절히 쓰이지 못한 채 업체 이익만 도모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신청도 하지 않은 우렁이가 지원되면서 보조금만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민 A씨는 "왕우렁이가 멀쩡한 모를 먹는다"며 "올해 신청 안 하고 돈도 안 냈는데, 우렁이가 배달됐다고 해 안 가져왔다"고 했다.
이장 B씨는 "주민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은 채 임의 날인이 된 서류가 문제는 없는지, 행정 소홀로 보조금이 낭비되지는 않았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함평군은 전남도비와 군비를 합쳐 지난 2019년부터 매년 해당 사업에 4~7억원의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다. 사업비 비율은 보조금 80%, 농가 부담 20%다.
군은 올해부터는 우렁이 공급업체의 요청을 받아들여 업체 보조금 비율을 10% 늘렸다.
왕우렁이 공급업체는 농가 납부 지연 없이 원활한 사업 진행을 위해 농가가 부담해야 할 비용까지 대신 납부하고 있다.
함평군은 논란이 불거지자 오는 2일까지 함평군 전역 농가를 대상으로 왕우렁이 신청·공급 여부를 조사한다.
함평 지역 왕우렁이 공급업체 관계자는 "업체·농가 모두의 편의를 위해 농가가 내야 할 금액을 공급업체가 납부하고 있다"며 "신청 농가가 많으면 좋긴 하지만 왕우렁이 사육 비료값·인건비가 수년째 오르고 있어 사업을 지속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밝혔다.
함평군 관계자는 "고령이 많이 사는 지역 특성상 신청 기한을 놓칠 수 있어 마을 장이 일괄 신청하는 것이 관례로 굳어졌다"며 "전수조사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