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창훈 기자 = "프랑스 사람? 누구인가요?"
24일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에 한 외국인이 방문하자, 공장 직원들 사이에선 이런 물음이 잇따랐다. 일부 직원들은 이 외국인 방문객을 중심으로 일부 경영진이 수행하자 "아마 높은 사람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직원들이 이 방문객이 누구인지 파악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외국인은 다름 아닌 르노그룹을 이끄는 장 도미니크 세나르 르노 회장 겸 이사회 의장이었다. 르노의 최고 수장이 부산공장을 찾았는데도, 정작 공장 직원들은 서로 누구냐고 묻는 진풍경이 연출된 것이다.
그렇다고 세나르 회장이 정체를 숨긴 채 암행으로 부산공장을 둘러보는데 성공한 것도 아니다. 아니 딱히 암행 방문을 할 이유도 없었다. 부산공장 직원들에 따르면 세나르 회장은 수 십명의 경영진을 대동하고 부산공장을 여보란듯이 둘러봤다. 자신의 정체를 일부러 숨긴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문을 알리려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다.
하지만 더 아쉬운 것은 르노코리아의 홍보 태도다. 르노코리아는 세나르 회장의 부산공장 방문에 대해 출입기자들에게 조차 아무 정보도 주지 않았다.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고려해 르노 최고위 수장이 부산공장을 찾았는데도 홍보팀은 기자들에게 이 사실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홍보팀은 세나르 회장이 구체적으로 몇 시간이나 공장에 머물렀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향후 일정은 무엇인지는 커녕 다녀갔다는 가장 기본적인 팩트조차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곤 세나르 회장의 부산공장 방문은 철저하게 비공개 원칙이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물론 르노코리아가 세나르 회장의 이번 방문을 한국 기자들에게 굳이 공개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르노코리아 주장처럼 르노 최고위 수장이 한국 시장을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그 연장선에서 부산공장을 찾았다면 적어도 한국 언론에 방문 사실 자체는 확인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르노 최고 수장의 공장 방문을 비밀리에 해서 르노코리아는 '의전을 참 잘했다'는 소리는 들을지 몰라도, 한국 고객들의 알 권리를 무시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세나르 회장이 왜 한국에서만 이렇게 '깜깜이 방문'을 했는지 그것도 의문이다.
그는 해외 생산 현장을 방문할 때 현지 직원들과 적극 소통했다. 지난 3월 튀르키예와 인도 현지 공장을 찾았을 때 현지 근로자들과 일일이 기념 촬영을 하기도 했다.
다른 해외 공장 방문 시에는 전혀 적용하지 않던 비공개 원칙을 왜 부산공장 방문 시에는 유독 고집한 걸까?
세나르 회장 자신이 부산공장 방문에 유독 민감했기 때문이라면 그 이유도 궁금하다. 르노코리아의 노조를 의식한 영향인지, 부산공장 확충이 워낙 미미해 지역사회에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이도 저도 아니면 르노코리아 측이 회장님 심기를 헤아려 무조건 비밀에 부친 것인지 궁금하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됐건 세나르 회장이 이번 방한을 알리지 않은 것은 르노코리아가 한국 고객들을 대하는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울러 부산공장에서 땀 흘려 르노차를 만드는 직원들을 대하는 수장의 자세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르노코리아가 여전히 르노의 '위탁 생산기지'에 그치고 있다는 오명이 들리는 것도 바로 세나르 회장의 방문 사실조차 감추려는 이런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오로라 프로젝트 같은 르노코리아의 신차 프로젝트가 아무리 좋은들 무슨 소용인가? 그룹 최고 수장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이 정도로라면 르노 경영진의 진정성을 한국 고객들은 다시 한번 냉철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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