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 추가 자구안 이끌어내고 채권단도 설득
만기연장 의존하던 PF, '옥석가리기'로 노선 전환
신속한 자율배상 유도하며 ELS 사태 조기 수습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 설립 이래 첫 검사 출신이자 1972년생으로 역대 최연소 금감원장인 이 원장은 취임 2년차에 강한 추진력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각종 금융현안 해결을 진두지휘하며 시장을 빠르게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갖춘 이 원장은 기업·금융범죄가 전문인 특수통 검사 출신으로 금감원장 부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른바 '윤석열 사단 막내'로 불리며 '실세 금감원장'으로 통하기도 했다.
이 원장은 취임 1년차에 시중은행을 모두 방문하는 등 금융시장과의 활발한 소통을 바탕으로 취약차주 지원과 대출금리 인하 등 현 정부 국정과제인 상생금융을 안착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셀프 연임' 문제가 반복돼 왔던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개선 논의에서도 이 원장은 이슈를 주도하면서 금융지주 회장들의 장기집권 체제 종료를 이끌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난 2022년 11월 채권시장을 요동케 했던 흥국생명의 5억 달러 규모 해외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조기상환권(콜옵션) 미행사 결정을 물밑 조율로 철회시키는 등 레고랜드 사태로 불거진 금융시장 불안을 조기 진화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취임 2년차에도 이 원장의 강한 존재감은 빛났다. 금융시장 리스크가 될 만한 이슈나 투자자 등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이 큰 사안은 전면에 나서 문제해결을 주도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발 위기론의 중대 트리거로 여겨졌던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를 이끌어낸 장면이 대표적이다.
올해 초 채권단과 태영그룹 간에 태영건설 자구안의 수준을 놓고 줄다리기가 벌어지자 이 원장은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말했는데 남의 뼈를 깎는 자구안"이라며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추가 자구안을 압박했다. 그러면서도 윤세영 태영그룹 회장의 요청에 따라 그를 직접 만나 오너 일가의 책임감 있는 추가 자구안을 이끌어냈다.
태영의 추가 자구안을 들고는 금융지주 회장들을 만나 "채권단도 채무자 측의 회사를 살리려는 의지가 확인될 경우 채무자의 직접 채무 뿐만 아니라 직간접 채무 또는 이해관계자에 대한 지원 등도 폭넓게 고려하는 게 워크아웃의 본래 취지"라며 채권단의 양보를 설득해 워크아웃 성사를 이끌어냈다.
아직 현재진행형이긴 하지만 부동산 PF '옥석가리기'를 본격화한 것도 성과로 꼽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이 원장은 지난해 말 PF 사업장의 '옥석가리기'를 예고하며 부실 사업장 정리로 노선을 전환시켰다.
당시 그는 "사업성이 다소 조금 미비하거나 자산 감축 등 특단의 조치 없이는 재무적 영속성의 문제가 있는 건설사·금융사는 기본적으로 시장 원칙에 따라서 적절한 형태의 조정·정리, 자구노력, 손실 보상 등을 전제로 한 자기책임 원칙에 따른 진행이 불가피하다"며 본격적인 PF 부실 정리의 신호탄을 쐈다.
또 올해 2월에는 금감원의 한해 업무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과거에 많이 봐줬다면 지금은 시장 원칙에 가까운 방식으로 부동산 PF에 대한 구조조정을 할 것"이라며 "정당한 손실 인식을 미루는 등의 그릇된 결정을 내리거나 금융기관으로서의 당연한 책임을 회피하면 시장 퇴출도 불사하겠다는 원칙 하에 단호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했다.
그전까지는 부동산 경기 회복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만기연장에 기대왔던 금융회사들에게 과감히 산소호흡기를 뗄 수도 있다는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이후 PF 사업장에 대한 만기연장 및 이자유예 문턱을 높이고 부실 사업장의 경·공매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금융당국의 노선은 선회했고 지난달 발표된 PF 연착륙 대책에 따라 이달부터 엄격해진 기준으로 사업성 평가가 진행될 예정이다.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 사태를 비교적 빠르게 수습한 것도 이 원장의 성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올해 상반기에만 수조원대의 손실이 예상되며 ELS발 공포가 확산하자 이 원장은 판매사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일부 개별 은행에서 일어난 일탈이 아닌 은행 대부분에서 불완전판매가 발생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를 바탕으로 ELS 분쟁조정기준안을 마련하고 "판매사의 고객피해 배상 등 사후 수습 노력은 관련 법규 및 절차에 따라 과징금 등 제재 수준 결정시 참작할 방침"이라며 은행권을 압박해 선제적인 자율배상을 이끌어냈다.
판매사와 투자자 간 분쟁에서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대표사례 분쟁조정 절차도 속도감 있게 진행해 지난 5월 5개 은행의 투자자 손실 배상비율을 30~65%로 결정한 대표사례도 도출해냈다.
국내 주식 투자자들로부터 오랜 기간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비판을 받아온 공매도와 관련해서는 글로벌 투자은행(IB)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여 불법 공매도 사례를 다수 적발해내며 자본시장 불공정 행위 근절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 원장의 강한 존재감이 되레 그와 금감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눈앞에 둔 현안 앞에서 좌고우면하지 않는 추진력 때문에 정치적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8월 라임펀드 사태에 대한 재조사 결과를 내놓으며 야당 중진 의원에 대한 라임펀드의 특혜성 환매 의혹을 제기했고 이로 인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의 전선이 형성됐다.
이 원장은 또 총선을 앞둔 올해 4월 당시 민주당 경기 안산갑 후보였던 양문석 의원 딸의 새마을금고 편법대출 논란과 관련해 금감원이 신속히 검사에 착수한지 이틀 만에 중간 검사결과를 내놓자 또다시 정치개입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민주당으로부터 "노골적이고 뻔뻔한 관권선거"라는 비판을 들었지만 그는 "보름달이 둥근 것이 (보름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탓은 아니지 않느냐"며 물러서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이 원장은 최근에는 정부가 추진 중인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의 선봉에 선 모습이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세제당국인 기획재정부나 금융정책을 입안하는 금융위원회도 아닌 감독당국 수장이 금투세 폐지의 전면에 나선 게 적절하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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