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보러 1.3㎞ 줄…"요즘 대학축제, 낭만이 없네요"[출동!인턴]

기사등록 2024/05/30 08:00:00 최종수정 2024/05/30 10:13:38

팬데믹 이후 대학 축제 둘러보니

가수 공연 보기 위해 전날 밤부터 대기

"과거엔 동아리 축제, 지금은 특색 없어"

흙 케이크, 집사 콘셉트 등 독특한 부스 눈길

[서울=뉴시스] 지난 24일 경희대 봄 대동제에서는 신기한 풍경이 포착됐다. 이날 공연이 예정된 싸이, 라이즈,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를 보기 위해 노천극장에서 본관을 지나 미술대학까지 약 1.3km가량 대기 줄이 길게 이어졌다. (사진=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주영 인턴 기자 = "요즘 대학 축제는 낭만이 없어요. 원래는 동아리 잔치였는데, 요즘엔 다들 연예인 보러 가기 바쁘죠"

14학번 졸업생에게 10년 전 대학 축제는 어땠는지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나왔다. 그의 말대로 대학가 축제 분위기는 몇 년 새 달라졌다.

학내 주류 판매가 금지된 2018년과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019년을 기점으로 국내 대동제 규모가 축소되면서 동아리 주점 문화가 약화됐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5월1일 교육당국은 학내 주점에서 이뤄지는 무면허 주류 판매 행위를 지적하며 대학 측에 협조 공문을 보냈다.

대동제를 코앞에 두고 주점 운영 준비에 박차를 가하던 대학생들은 갑작스러운 술 판매 금지 소식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량으로 주문한 음식 재료 등을 처분하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버리거나, 눈치를 보다가 결국 주점 운영을 취소했다.

다음해인 2019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파되면서 사실상 대부분의 대학 축제가 취소됐다. 이로 인해 명맥이 끊긴 동아리도 생겼다.

동아리 연간 일정 중 주점은 통상 한 해 운영비를 벌 수 있는 행사인데, 술 판매 금지령에 이어 주점 자체가 무산되면서 동아리 운영이 어려워진 것이다.

◆팬데믹 끝나자 가수 공연이 주요 행사로 자리 잡아
【화성=뉴시스】강종민 기자 = 14일 오후 경기 화성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열린 축제장에서 학생들이 물풍선을 맞으며 서둘러 온 더위를 식히고 있다. 2015.05.14 *재판매 및 DB 금지

엔데믹이 선포된 지난해 5월 다시 시작된 축제 현장에서는 예전과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싱그러운 봄꽃과 선선한 바람은 여전했지만 '물풍선 던지기'와 같은 역동적인 체험장은 자취를 싹 감췄다. 대신 계약을 맺고 들어온 각종 푸드트럭 업체나 기업 홍보 부스가 곳곳에 위치해 있었다.

낮 동안 각종 동아리에서 운영하는 이벤트 부스가 있었지만 참여하는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주점(이라 불리지만 안주만 판매하는)과 연예인 공연이 시작되는 저녁 시간 전까지 캠퍼스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를 보였다.

지난 24일 경희대 봄 대동제에서는 신기한 풍경이 포착됐다. 이날 공연이 예정된 싸이, 라이즈,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를 보기 위해 노천극장에서 본관을 지나 미술대학까지 약 1.3km가량 대기 줄이 길게 이어진 것이다.
[서울=뉴시스] 지난 24일 경희대 봄 대동제에서는 신기한 풍경이 포착됐다. 이날 공연이 예정된 싸이, 라이즈,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를 보기 위해 노천극장에서 본관을 지나 미술대학까지 약 1.3km가량 대기 줄이 길게 이어졌다. (사진=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경희대 22학번 김모(22)씨는 전날인 23일 밤 10시30분께부터 줄을 섰다.

김씨는 "좋아하는 가수의 무대를 앞에서 보고 싶은 마음에 일찍 줄을 섰다"며 "친구와 새벽에 돗자리를 깔고 과자 먹으면서 바닥에서 자는 것도 추억이라고 느껴져 재밌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연예인 공연이 주류 행사로 자리 잡은 대학 축제에 대해 김씨는 "공연 외 콘텐츠가 잘 조성돼 있지 않아서 연예인으로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며 "주점 안주는 부실한 데 비해 가격이 비싸고, 동아리 부스는 친구가 운영하지 않는 이상 잘 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10년 전 대학 축제는 어땠나

24학번 새내기와 딱 10년 차이가 나는 경희대 14학번 졸업생 전종서(29)씨는 "원래 대학 축제는 학생과 동아리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젊음의 상징이었는데, 지금은 예산을 펑펑 써서 더 비싼 연예인을 불러야 성공적인 축제로 인식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희대, 홍대 축제가 유명했던 이유도 동아리 부스가 특색 있고 재밌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지난 2016년 5월 경희대학교 공과대학 주점에 방문한 14학번 전종서(29)씨. (사진=인스타그램) *재판매 및 DB 금지

세종대 14학번 졸업생 이창환(28)씨는 "우리 학교는 무용과에서 코스프레를 하고 주점을 운영해서 대기 줄이 엄청 길었다"면서 "호텔경영학과는 카지노를 열고 위스키를 팔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동국대 16학번 졸업생 A씨는 "동아리 회장이 '그린라이트!'를 외치면 다 같이 소주병 아래로 휴대전화 라이트를 비추는 모습이 장관이었다"면서 "당시에는 교수님이 테이블당 소주 3병씩 주문해 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C씨에 따르면 소주병에 휴대전화 라이트를 비춰 놓은 테이블은 암묵적으로 '즉석 만남'을 원한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간주해 다른 테이블끼리 연결해 주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지난 22~24일 진행된 경희대 봄 대동제에서는 대학생활협동조합이 주류 판매 부스를 운영했다. (사진=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동아리 부스에서 주류 판매가 금지된 현재, 일부 대학은 교내 생활협동조합에서 주류를 판매하고 있었다.

경희대 김민화 생협 사무국장은 "2019년 당시 총학생회 측에서 주류 판매 사업자 허가를 받은 우리 쪽에 협조를 요청했다"며 "이후 축제 기간에만 한시적으로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사무국장은 "수익을 얻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학생들이 즐기는 가장 큰 행사인 대동제에 기여한다는 마음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주류 판매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며 "학생들이 외부에서 술을 사오는 등의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목적이 가장 크다"고 밝혔다.

◆'이화의 집사들' '다회용기 대여 부스' 등 독특한 아이디어로 시선 사로잡아
[서울=뉴시스] 지난 8일 방문한 이화여대 축제에는 '흙 케이크' 콘셉트로 음식을 판매하는 '스푼걸즈'의 부스가 있었다. 초코케이크 위에 돌멩이 모양의 초콜릿과 지렁이 모양 젤리를 올리고 삽 모양 스푼으로 떠먹는 형태의 디저트였다. (사진=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교내 구성원의 발걸음을 붙잡은 동아리 부스도 있었다.

지난 8일 방문한 이화여대 축제에는 낮부터 인파로 가득했다. 주짓수 동아리의 '피자파스타오스세트', 산악부의 '나초', 스푼걸즈의 '흙 케이크' 등 독특한 콘셉트의 메뉴를 직접 개발해 판매하는 곳들이 눈에 띄었다.
[서울=뉴시스] 지난 10일 이화여대 졸업생이자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활동 중인 '재재'가 '이화의 집사들' 부스를 방문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사진=유튜브 '문명특급')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가장 큰 화제를 불러 모은 곳은 집사, 머슴 등의 복장으로 구경꾼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화의 집사들'이었다. 이곳에서는 손님의 요청에 따라 즉흥 공연을 펼치거나 오늘의 운세를 봐주는 등 다양한 즐길 거리를 제공했다.

지난 10일 이화여대 졸업생이자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활동 중인 '재재'가 이곳 부스를 방문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누리꾼들은 "귓가 세레나데 서비스 정말 웃기다" "인기 있을 만하다" "이대 축제는 저런 아이디어가 좋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서울=뉴시스] 중앙대는 지난 28일부터 ESG 관련 부스 3곳을 운영했다. 다회용기 대여 및 반납 부스에서는 다회용기를 지참할 시 푸드트럭 메뉴를 30%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중앙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중앙대는 지난 28일부터 ESG 관련 부스 3곳을 운영하며 차별점을 모색했다. 중앙대 관계자에 따르면 다회용기 대여 및 반납 부스를 설치하고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다회용기를 지참할 시 푸드트럭 메뉴를 30%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도박 중독 예방 부스와 환경 관련 퀴즈를 풀고 기념품을 챙길 수 있는 '무티켓 버스' 등을 운영했다. 중앙대 관계자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도박 중독 관련 경각심을 일깨우는 활동을 진행 중에 있다"고 전했다.

점점 비슷하게 바뀌는 대학 축제 모습은 과연 일시적인 현상일까. 가수 공연보다 더 재밌는 동아리 부스가 다시 나오기를 기대해 보고 싶다.


◎공감언론 뉴시스 jooyoung4452@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