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으론 법적 보호·사후관리 미흡
19대 국회부터 10여년간 발의만 빗발
21대 국회서 발의된 법들도 폐기 수순
가폭법 전면 개정으로 '교제관계' 포함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명문대 의대생이 이별 통보 여자친구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각지대에 놓인 '교제폭력' 피해자 보호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연인 간 발생하는 교제폭력을 예방할 제도적 장치의 부재가 화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제도 보완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2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19대 국회 때부터 21대 국회까지 교제폭력을 범죄로 규정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내용의 법률 제·개정안이 매번 발의되고 있으나 수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선 경찰은 가정폭력(가정폭력처벌법), 스토킹 범죄(스토킹처벌법)와는 달리 연인 간 발생하는 교제폭력에는 별도의 법제 없이 대처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별도 법률이 없는 만큼 교제폭력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폭행과 협박은 형법상 처벌 대상은 되지만 법적 보호나 사후관리 대상은 못 되고 있다.
더욱이 폭행·협박은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 의사에 따라 처벌이 불가할 수 있다. 연인 간 발생하는 폭력인 탓에 피해자가 처벌 불원 의사를 밝히는 경우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적 영역으로 치부돼 왔던 교제 관계에 공권력이 법적인 명확한 기준 없이 선뜻 개입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같은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교제폭력 관련 법안 10여건이 지난 19대 국회부터 21대까지 크게 두 분류로 나뉘어 발의돼 왔다.
기존의 가정폭력처벌법의 적용 범위를 교제폭력까지 확대해 적용하거나, '교제폭력 처벌법'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별도 입법안을 새로 만들자는 식이다.
법안마다 차이는 있지만 법안들은 대체로 교제폭력 가해자를 피해자 주거지로부터 퇴거시키거나, 접근 금지 및 연락 금지, 경찰관서 유치장 또는 구치소 유치 등의 임시조치를 할 수 있는 조항을 뼈대로 하고 있다.
문제는 해당 법안들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대부분 임기 만료로 폐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21대 국회 들어 발의된 법안들도 법사위와 여성가족위원회에 계류 중으로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정폭력'의 개념에 교제폭력을 포함하는 현행법 개정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별도 법을 만들면 스토킹범죄인지, 가정 내 폭력인지 등 다른 법률과의 관계 문제가 발생해 현장에서 큰 혼란이 있을 수 있다"며 "친밀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통합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송 대표는 가정폭력처벌법의 전면 개정이 그 전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정폭력처벌법의 법의 목적으로 명시된 '가정의 안정과 평화 회복'과 9조의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가해자가 가정폭력상담소에서 상담받는 것을 전제로 하는 처분) 등을 고쳐 가정폭력처벌법이 가정 회복을 위한 화해·조정 기능이 아닌 가해자의 실질적인 형사 처벌을 가능하게 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는 "가정폭력처벌법이 가정폭력을 처벌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법에서 교제 관계만 포함하는 것은 안 된다"며 "가정폭력처벌법은 화해 조정 기능이 훨씬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법안 제·개정이 늦어진 요인 중 하나인 '교제 관계 정의의 모호성'에 대해서는 "모호하지 않다"며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관계의 지속 기간, 서로의 삶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 연락 횟수 등을 지표로 만들어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런 선례를 참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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