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휴진 병원 늘고 교수 사직 우려에 불안
자녀 치료시기 놓칠까 안절부절 못하는 부모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꼴" "한 발씩 양보를"
26일 오후 뉴시스가 취재진이 찾은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최근 유방암과 뇌경색을 연달아 진단받았다는 배모(58)씨는 전공의에 이어 교수들까지 병원을 떠난다는 소식에 "지금 당장 검사해야 하는데 다음 검사가 너무 늦게 잡힌다"며 이같이 말했다. "얼마 전 또 다른 합병증을 진단 받았다"고 힘겹게 운을 뗀 그는 보호자로 동행한 아들을 바라보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전날 기준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지 한 달이 돼 그 효력이 발생하는 가운데, 다행히 '빅5' 병원을 비롯해 주요 대학병원에서 교수들의 뚜렷한 사직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일부 대학병원 교수들이 내달 초부터 사직하겠다고 밝히고 있고 시간이 흐르면서 연쇄 사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의료 공백 우려는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뉴시스가 이날 '빅5' 병원에 속하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과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환자와 가족들은 교수의 사직이 전공의들이 떠났을 때보다도 더 걱정된다며 답답한 마음을 쏟아냈다.
방광암 환자인 남편의 진료를 위해 이날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는 홍모(67)씨는 "교수 사직 얘기를 듣고 (심장이) 철렁했다. (교수가) 전공의보다 더 중요하지 않으냐"며 "저희 담당 교수가 오늘 있어서 '다행이다' '감사하다'고 생각했는데, 언제 교수들이 떠날지 몰라서 걱정이 크다"고 토로했다.
아픈 자녀를 둔 부모들은 어린 자녀가 제때 치료를 못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자녀의 원인 모를 발달 지연으로 이날 서울대병원을 찾았다는 한모(41)씨는 "진료가 늦어져서 중요한 치료 시기를 놓치고 아이가 잘 못 된다고 생각하면 아이 얼굴을 평생 어떻게 볼 수 있겠느냐. 부모로서 해줄 수 없는 게 없는 게 가장 마음이 아프다. 속만 끓고 있다"며 눈물을 훔쳤다.
소변 역류로 인한 염증을 앓는 4세 여아의 부모 최현주(35)씨는 "의료계와 정부 둘 다 어떤 논리인지는 내게 중요치 않다. 우리 애가 지금 진료를 못 받는다는 점에 가장 화가 난다. 왜 일을 이 지경까지 키우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 아이가 아픈 게 부모에게는 건강한 신체를 물려주지 못해서 죄를 짓는 느낌이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척추관협착증을 앓는 노모를 모시고 아산병원을 찾은 김순애(66)씨는 "어르신들은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응급실에 와야 하는데, 응급실도 이제 중증 환자 아니면 안 받아주고 있다. 그런 게 너무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실제 이날 낮 12시께 아산병원 응급실에는 환자 10여명이 줄지어 진료를 대기하고 있었다. 얼굴 곳곳에 혈흔이 묻은 노인도 줄 끄트머리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환자들은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고 있다'며 강 대 강 대치 국면이 해소되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유방암 환자인 배씨는 "일하는 의료진도 '전공의 선생님들이 안 계셔서 진료가 좀 많이 빡빡해요'라면서 우리에게 미안해 한다. 그분들도 힘들다는 걸 이해한다. 그런데 저는 급해서 너무 답답하다"며 "환자를 가운데 두고 서로 힘겨루기 하는 거 같다. 환자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마주 보면서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4세 자녀의 류마티스 검사로 이날 전남 광양에서 올라왔다는 조민지(35)씨는 "아무리 제가 이해를 하려고 해도 (교수들이) 환자를 두고 병원을 떠난다는 데 너무하다는 생각만 든다"며 "정부가 대화를 하겠다고 하면 의사들도 협조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한편 이날 의료계에 따르면 '빅5'로 불리는 서울시내 주요 대형병원(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 다섯 곳 소속 교수들은 모두 일주일에 하루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다섯 곳 모두 일주일에 하루 휴진하더라도 응급·중증 환자와 입원 환자에 대한 진료는 유지한다. 교수 비대위 차원에서 휴진 날짜를 정하더라도 동참 여부는 교수들 개별 선택에 맡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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