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 토론하며 '더 내고 더 받기'로 역전…배경은?

기사등록 2024/04/22 18:25:10 최종수정 2024/04/22 19:24:28

시민대표단 중 절반 이상 '소득 보장' 13-50안 지지

지지율 1차 369%→2차 50.8%→3차 56.0%로 상승

노인빈곤 해소 판단 깔려…기초·퇴직연금 한계 지적

"노후 불평등·불안 문제에 대한 자각이 영향 미쳐"

기초연금 수급 축소 45.7% …현행 유지 52.3% 팽팽

"국민연금 성숙 과정 이후 기초연금 개혁 늦지 않아"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종합상담실. 2023.01.30. jhope@newsis.com

[세종=뉴시스] 박영주 이태성 수습 기자 =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숙의 토론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토론이 진행될수록 '재정 안정'보다 '소득 보장'에 힘을 실었다. 국민연금이 노후 빈곤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현재 소득 하위 70% 노인을 대상으로 지급하고 있는 기초연금은 조세로 운영되고 있는 만큼 수급액 인상에 한계가 있고, 퇴직연금 역시 수급자가 적어 실제로 노후 소득을 지탱할 연금 역할을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22일 국회 연금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연금특위 공론화위)에 따르면 시민대표단 500인은 중 56.0%는 최종적으로 현행 9%인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늘리는 '소득 보장 강화'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3월22일부터 29일까지 550명(숙의 토론회 불참 고려해 10% 추가 모집)의 시민대표단을 대상으로 진행된 1차 설문조사에서는 보험료율을 12%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는 '더 내고 그대로 받기'(2안)를 선택한 시민이 44.8%로 '더 내고 더 받기'(1안) 36.9%보다 7.8%포인트(p) 높았다.

하지만 토론이 진행될수록 무게 추는 '소득 보장 강화'로 기울였다. 시민대표단 숙의 토론회 직전인 4월13일 501명(1차 조사보다 49명 미참여) 대상으로 진행된 2차 설문조사에서는 '더 내고 더 받기'인 13-50안이 50.8%로 '더 내고 그대로 받기'인 12-40안보다 12.0%p 높았다. 이미 2차 조사 때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이 격차는 시민대표단 네 차례의 숙의 토론회 종료 직후 진행된 21일 3차 설문조사에서 더 벌어졌다. 시민대표단 492명(2차 참여 인원 중 9명 미참여) 중 56.0%는 국민연금이 소득 보장을 강화해야 한다고 봤다. 재정 안정을 지지한 시민은 42.6%로 두 개의 안 격차는 13.4%p로 집계됐다.

1안을 선택한 시민들은 국민연금이 충분히 지급돼 노인 빈곤을 해소해야 한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 기준 40.4%로 OECD 평균 노인빈곤율인 13.1% 대비 3.1배 높다. 이 비율은 2085년에도 25.5%로 OECD 평균(15~16%)과 10%p 이상 차이가 날 것으로 관측된다.

결국 노인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국민연금 보험료 부담을 올리되 더 받아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부는 소득 하위 70% 이하인 65세 이상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이는 세금으로 재원을 조달하기 때문에 형평성 등을 고려해 국민연금 수준보다 낮게 측정돼 한계가 있다. 퇴직연금 역시 중도 인출 등으로 실제 수급자가 적어 연금 역할을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소득 보장 강화가 자녀 세대에 대한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소득 보장 강화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을 24~25년 납부한 20대와 30대 청년들이 노후에 받는 국민연금이 66만원 수준으로 추산했다. 이는 노인 월 최저생활비(124만3000원)의 절반 수준이다. 현재 청년들의 자녀 세대에 부담을 줄이려면 국민연금 수급액을 늘려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인 셈이다.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김상균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공론화위원회 숙의토론회 주요 결과 및 시민대표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4.04.22. 20hwan@newsis.com

다만 기금 고갈 이후 재정 적자 등은 해소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에 따르면 국민연금 고갈 시기는 2055년이다. 13-50안은 연금 고갈 시점이 2062년으로 7년 미뤄지고, 12-40안은 2063년으로 8년 늦춰진다. 기금이 소진된 이후 부과방식비용률(한 해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그해 가입자가 내야 하는 보험료율)로 전환하면 13-50안의 보험료율은 43.2%로 올라간다. 국내총생산(GDP)의 11.8%가 지출로 소요되는 셈이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민대표단이) 공부를 해보니 국민연금이라고 하는 게 일차적으로 노후 빈곤을 해소해 줘야 하는데 지금 부족하다는 걸 느꼈을 것"이라며 "국민연금 가입 기반 확대, 사각지대 해소 등을 통해 연금 가입자들이 많아야 보험료도 많이 걷히기 때문에 국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그동안 연금 재정 불안정은 상대적으로 많이 부각된 반면 소득 보장을 강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거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면서 "양측의 정보가 객관적으로 주어진 상태에서 모르던 사실들을 공론화 과정서 알게 되면서 소득보장론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노후 불안 등이 통계 등으로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노후 불평등, 노후 불안 문제에 대한 일종의 자각, 자의식 형성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기초연금 급여구조에 대해서는 시민 대표단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국회 논의 과정에서 더 다뤄질 전망이다. 시민의 52.3%는 기초연금 구조를 현행 70% 이하 지급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봤으며 45.7%는 기초연금 수급 범위를 점진적으로 축소해 하위소득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 역시 기초연금 급여구조와 수급 범위 조정은 중장기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민연금 개혁안이 자리 잡은 이후 기초연금을 논의해도 늦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정 교수는 "기초연금을 강화하면 사람들이 '돈을 안 내도 기초연금을 받는 데 국민연금을 들어야 하나'라는 우려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장기적으로는 국민연금을 강화하되 단기적으로는 현재 빈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다"고 짚었다.

그는 "지금 이러한 결과는 기초연금은 그대로 놔두고 빈곤한 노인들을 위한 의료비 주거비 등 국민연금을 침해하지 않고 당장의 빈곤을 회수해 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기초연금 개혁은 10년 뒤 국민연금이 성숙해 가는 과정을 보고 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국민연금 개혁안을 두고 시민대표단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현행보다 '더 내고 더 받자'는 이른바 '소득보장론'을 선택한 응답자가 절반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개혁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그래픽=안지혜 기자)  hokm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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