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 위기]③
중동 진출 건설사들 "수주 차질·자잿값 인상 우려"
업계 "수익성 수반 안 되면 수주 안 하느니만 못해"
[서울=뉴시스] 고가혜 기자 = 이스라엘과 이란의 정면 충돌로 인해 중동 지역에 지정학적 리스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주택시장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던 주요 대형 건설사들에게는 이번 사태가 또 하나의 잠재적인 악재가 되고 있다.
2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건설사들은 지난 18일(현지시각) 이스라엘 미사일이 이란의 한 시설을 타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중동 지역에 포진한 지사와 현장 직원들을 통해 피해 현황 파악에 나섰다. 현재까지 우리 기업이 받은 직접적인 피해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으나, 이란에 지사가 설립된 한 대형 건설사의 경우 안전을 위해 직원 일시 귀국을 결정하기도 했다.
해당 건설사 관계자는 "지사의 위치는 타격 현장과는 거리가 있지만 현재는 안전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 한국으로 귀국을 시키고 상황이 안정되면 다시 판단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란에는 이곳 외 지사가 설립된 건설사는 없고, 이스라엘에는 발전기자재 전문기업 1곳이 진출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란은 이달 1일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이란 영사관을 공격해 IRGC 간부 등이 숨지자 지난 13일(현지시각) 무인기, 미사일 등을 동원해 이스라엘 본토에 대한 사상 첫 보복 공격에 나섰다. 미국과 주요 동맹국들은 확전을 우려하며 이스라엘의 추가적인 보복에 반대했지만, 결국 이스라엘은 닷새 뒤 이란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에 해외건설 수주에 사활을 걸고 있던 건설사들은 중동 지역의 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 A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네옴 등 중동은 중요한 해외 수주 지역"이라며 "중동 정세가 불안하면 수주에 영향이 크고, 유가 급등에 따른 자잿값 인상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B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현재 중동에 수주한 사업장은 있는데 착공한 사업장은 아직 없다"며 "당장의 리스크는 없겠지만 사태 장기화 시 원유 및 원자잿값 변동 등 이슈가 있을 수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전쟁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쟁의 여파로 고유가 기조가 유지되면 산유국인 중동 국가의 재정 여건이 더 나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C 대형 건설사의 경우 "아직 직접적으로 입은 피해는 없지만 중동 상황이 번질 수도 있으니 상황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또 중동 지역의 임직원 신변 안전 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면서도 "최근 두바이 자연재해와 이란-이스라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있기는 하지만 전쟁으로 고유가 기조가 유지되면 오히려 산유국은 재정여건이 더 좋아지면서 추가 발주가 생길 수도 있어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국내 건설사들이 중동 지역의 전쟁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국내 해외건설 수주 비중의 절반 가까이가 중동 국가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해외건설협회의 '해외건설 수주실적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총 183개의 건설사들은 올해 1분기 전 세계 63개국에서 171건의 수주를 따내 55억2000만 달러(한화 약 7조6286억원)의 누적 해외수주액을 기록했는데, 이중 대부분은 중동 지역에서 나왔다. 통계에 따르면 올 1분기 중동 지역 수주액은 24억달러로 전체의 44%를 차지했다.
이처럼 오일머니를 토대로 한 중동 지역의 초대형 프로젝트는 최근 침체에 빠져 있는 국내 건설업계에 단비가 돼 왔으나, 이번 이란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리스크가 커지면서 관련 업계에서는 우려 섞인 시선으로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해외건설업계 관계자는 "올해 중동 건설시장은 GCC 등 주요국이 글로벌 유가 전망 하락에 따르는 보수적인 정부 재정지출 전망, 이스라엘발 전쟁 위험, 미국 대선 등의 정치 리스크가 상존하는 상황"이라며 "대규모 사업에 대한 발주 여력은 관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윤석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성숙 정체기에 위치한 내수 시장을 벗어나 해외로 시장을 다변화하는 전략은 분명 성장에 긍정적이지만 수익성이 수반되지 않은 외형 성장은 수주를 안 하느니만 못하다"며 "가장 최근에 지속됐던 제2의 중동붐이 수조원대의 손실을 기록한 만큼, 건설사들의 해외 전략에 대한 투자자 신뢰가 제고되기 위해서는 과거와는 다른 양상의 건설붐이 전개될 수 있고, 해외 시장이 정말 확대될 수 있다는 근거가 뒷받침 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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