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22대 총선 직후 돌아온 세월호 10주기

기사등록 2024/04/16 07:30:00 최종수정 2024/04/16 07:3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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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몇십 년 동안 시간만 나면 매물도에 (스쿠버)다이빙하러 갔지. 난 정말로 바다를 좋아했어. 바다를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고. 애들한테 나 죽으면 매물도에 뿌려달라고 했더니 우리 딸내미가 그러더라고. '너무 멀다'고. (웃음)"

'바다'와 '스쿠버다이빙' '매물도' 얘기가 나오자 황병주(65)씨의 목소리가 두 옥타브는 올라갔다. 2014년 4월의 맹골수도와 금호바지선, 희생자 수습 작업을 얘기할 때는 볼 수 없었던 달뜬 모습이었다.

황씨는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희생자 수색에 초기부터 참여했던 잠수사 중 한 명이다. 동료 잠수사들과 80여일간 293명의 희생자를 수습한 대가로 잠수병과 불면증, 극심한 트라우마를 얻었다.

특히 신장이 급격히 망가져 30여년간 이어왔던 산업 잠수사를 더는 못 하게 됐다. 이틀에 한 번 하루 4시간씩 혈액 투석을 받아야 하기에 해외여행은 물론이거니와 2박이 넘어가는 국내 여행도 떠나지 못한다. 병상 위 TV 리모컨을 쥔 그의 손이 여행 프로그램을 가장 먼저 찾았다.

고통받는 이들은 평범한 일상을 갈구한다. 서울에서 집회·시위가 가장 많은 종로·중구의 사건 사고를 기록하는 일을 하면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적지 않았다.

"의현아 오늘도 새벽 5시55분에 알림이 울린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방문 앞에서 엄마는 문을 열지 못하네. '아들'하고 부르면 씨익 웃던 너의 모습이, 너의 방문 앞, 엘리베이터 앞, 아파트 정자에서 순간 나타날 것 같아 한참을 머뭇거린다."(2023년 12월28일, 고 김의현씨의 어머니 김호경)

"크리스마스이브 때면 케이크를 사다 놓고 서로 축하하곤 했는데, 용건아 너무 보고 싶고 그립다."(2023년 12월28일, 고 김용건씨의 어머니 간덕임)

"1년 동안 저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이 추운 거리를 걷고 또 걸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걸음이길 간절히 바랍니다."(2024년 1월8일, 고 이지현씨의 어머니 정미라)

유가족들은 추운 겨울을 거리가 아닌 집에서 보내는 평범한 일상을 바란다며 삭발과 삼보일배, 오체투지 등 필사적인 호소전을 벌여왔다. 서울 한복판에서 생때같은 목숨이 희생된 이해할 수 없는 초유의 사태를 이해시켜 달라며 진상규명을 위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수용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이미 진상규명은 완료됐다' '특별법을 통해 만들어질 특별조사위원회는 편파적이다' '특조위 권한이 무소불위다'는 입장을 줄곧 견지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30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유가족들은 절규했다. '총선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생각에 지난 4일 부산을 시작으로 광주·전주·대전·수원 등을 순회하면서 각 지역 유권자들에게 정부·여당 심판을 위한 투표를 독려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도 이태원 참사 유가족 옆에 섰다. 세월호 전과 후라는 10여년의 시차로 이어진 두 참사 피해자들은 22대 총선을 이틀 앞둔 지난 8일까지도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함께 촉구했다.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시민들은 이번 총선에서 정부·여당을 심판했다.

16일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수없이 다짐했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0년 되는 날이다. 그사이 빠르게 같은 방식의 참사가 반복됐다. 구조적 해결도, 잊지 말자는 다짐도, 국가가 개인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도 모두 희미해졌다.

총선에 참패한 여당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태원참사특별법을 수용하고, 재난 조사의 제도화를 위한 생명안전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 전면적인 국정 기조 전환의 시작은 국가가 문제 해결자가 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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