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2천명 증원은 생명 보호 위한 최소치"
"과학적 근거 합리적 통일안 논의할 것"
환자들 반응 싸늘…"의·정 대화로 풀어야"
[서울=뉴시스]임철휘 이소헌 수습 문채현 수습 기자 = "국민 여러분,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개혁은 국민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1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윤석열 대통령이 의료개혁 대국민 담화문을 읽어나가자 TV로 이를 지켜보던 한 환자가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라고 헛웃음을 지었다. 업무를 잠깐 멈추고 윤 대통령의 발언을 지켜보던 병원 직원들은 "이제 와서 대국민 담화가 무슨 소용이 있어" "저렇게 말만 한다고 해결이 되나"라고 말한 뒤 잰걸음을 놀렸다.
이날 뉴시스 취재진이 '빅5병원'인 세브란스병원과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환자와 가족, 병원 직원들은 이날 윤 대통령의 담화로 정부와 의료계의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에 걱정하는 반응을 보였다.
윤 대통령은 51분 길이의 이날 담화에서 국민 생명 보호를 위한 의사 정원 확대의 필요성과 '2025학년도 2000명 증원' 결론에 도달한 배경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의대) 2000명 증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헌법적 책무를 이행하고 급격한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이라며 의대 정원 증원안 이행을 재확인했다. 다만 의료계가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합리적 방안을 도출해낼 경우 의대 정원 규모 조정을 논의할 수 있다는 전향된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세브란스병원에서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담화를 지켜보던 간병인 이모(69)씨는 "갑자기 (의대 정원을) 그렇게 늘릴 수가 있나. 의사가 당장 생기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국민만 죽어 나가고 있다"며 "내시경 진료도 계속 밀리고 있다. 환자를 봐 줄 의사도 거의 안 남았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정부는) 모르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아내의 보호자로 이날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는 80대 남성 A씨 역시 "정부는 지금 국민들이 진료가 밀릴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건 안 보이는 것 같다"며 "나처럼 늙어서 병원에 자주 다니면 얼마나 불안한지 모른다. 오늘 담화한다고 해서 좀 (의료사태가) 풀리나 기대했는데 또 저렇게 말한다. 뭘 국민을 위한다는 건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대병원에서도 로비에 설치된 TV에서 담화 초반 "의료개혁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자막이 나오자, 환자대기석 곳곳에선 한숨이 흘러나왔다.
항암 치료를 받으러 이곳을 찾았다는 김경민씨는 "정부도 2000명만 고집하지 말고 1000명정도 선으로 (의대 증원 규모를) 낮춰서 여유를 두고 대화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그런데 오늘 (담화를) 보니까 정부가 그런 걸 하나도 안 했다"고 꼬집었다.
70대 남성 문모씨도 "(정부와 의료계가) 소통해야 한다. 대통령도 의사도 모두 국민을 위한 거다. 일반 환자 입장에선 의사가 많으면 좋다. 하지만, 타협점을 만들어서 타협해야지, 왜 자기 입장만 고집하는지 모르겠다"며 "정부에서도 장관이고 총리고 나서서 합의해야 하는데, 노력을 전혀 안 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담화문이 발표되기 전 이날 병원에서 만난 시민들은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 공백에 불안을 호소하며 사태가 서둘러 수습되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2020년 의료계 파업 때 폐암 수술이 한 달 이상 늦춰진 적 있다는 B(56)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며 "그때 나같은 기분을 느낀 분들이 지금도 있을 텐데, 많이 안타깝다"고 했다.
이어 "의료계를 이해시키면서 (의대 정원 증원을) 해야 하는데 합의로 한 것도 아니다"며 "의사랑 정부랑 모여서 한 탁상에서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이날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임모(52)씨는 며칠 전 뇌출혈 증상을 보이는 어머니를 응급실에 데리고 왔지만 응급실 병상이 없어 어머니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다며 정부와 의료계의 조속한 사태 해결을 바란다고 호소했다.
임씨는 "지금은 입원실이 다 차서 옛날처럼 어느 정도 치료되면 빨리 나가라고도 안 한다. 치료를 안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 많은 치료 안 받는 사람들이 다 어디 갔겠나"고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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