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부승 日 관서외국어대 교수 인터뷰
"의사연봉 1위..38개 아닌 9개국 대상"
"의사파업 한국뿐? 영국·프랑스 등도"
정부는 대표적인 지역·필수의료 문제로 거론되는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지역 의료격차'를 없애려면 의대정원을 대폭 확대해 의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의료계는 진료 대기 일수, 치료 가능 사망률(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사망한 환자의 수를 평가하는 지표), 외래 진료 횟수 등 다양한 지표를 기준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학 정치학 교수는 지난달 27일 뉴시스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7명)에 비해 우리나라(2.6명)가 훨씬 낮아(멕시코, 콜롬비아, 튀르키예에 이어 뒤에서 네번째)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문제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별로 다른 의사의 신분과 의료 시스템 등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정부와 학계에 두루 몸 담아온 사회과학 전문가다. 최근 사회과학 측면에서 흥미로운 주제인 의대 증원과 관련된 갈등을 목격한 후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평소 의료 문제에 대해 학문적 관심이 많았던 데다 2000년 외무고시에 수석 합격한 후 외교관으로 15년간 근무하면서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등 해외 의료시스템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의료선진국인 미국, 일본, 핀란드, 뉴질랜드, 벨기에 등도 OECD 평균보다 낮고, OECD 평균보다 많은 그리스, 포르투갈은 오히려 진료 예약도 잘 안 잡히고 밀린 환자도 많아 수술을 받기도 어렵다"면서 "사실에 근거해 토론하고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뒤에서 네 번째로 적지만 의료의 질은 우수하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대부분 수주에서 수 개월 진료를 대기하는 OECD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대부분 당일(명의 진료대기 제외) 진료가 가능하다. 치료 가능 사망률도 스위스에 이어 2번째로 낮고, 국민 1인당 연간 의사 진료 횟수도 14.7회로 OECD 1위다.
다음은 장 교수와의 일문일답.
-우리나라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고 보시는 이유를 설명해 주신다면요.
-의사들이 파업에 나서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인가요?
"사실이 아닙니다. 영국 등은 의사가 공무원 신분이여서 의대정원 확대를 원하기 때문에 의대 정원 늘렸다고 파업 자체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른 국가 의사들은 주로 급여·근로조건 문제로 파업에 빈번히 돌입합니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일반의들이 근로조건이 열악하고 급여는 적다고 파업했습니다. 영국은 올해 전공의들이 역사상 최장기(6일) 파업을 했죠. 지난 10년간 전공의 월급이 오르지 않는데 물가는 오르니 실질 임금이 26% 떨어졌기 때문이죠."
-우리나라 의사 연봉이 OECE 국가 중 1위인가요? 국가 간 교육·수련 방식과 과정에 상당한 차이가 있어 국가 간 비교가 쉽지 않습니다.
"사실이 왜곡됐습니다. 일반의, 봉직의를 제외한 개업의 중에서도 전문의를 대상으로 OECD 38개국 중 통계가 있는 9개 나라만 대상으로 비교한 결과입니다. 29개국은 비교 대상에서 아예 빠져있는 것이죠. 연봉 세계 1위인 미국도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나라별 의료환경도 고려해야 합니다. 영국,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사실상 무상의료를 시행 중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보험 영역을 인정해 줍니다. 실력있는 의사라면 개업해서 승부를 걸어볼 수 있는 것입니다. 대신 병원이 망하면 본인 책임이 됩니다. 이들 개업 전문의들은 유럽에서도 큰 돈을 법니다. 벨기에나 독일에서도 개업한 전문의들은 수입이 매우 높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개원의는 자영업자로 연금이 없고 망하면 자기 책임이죠. 즉 개업한 전문의의 수입에는 파산리스크, 연금 미보장 등이 다 가격에 반영되니 연봉이 올라가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의료 접근성이 좋지만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는 높다고 들었습니다.
"전체 의료비 중 정부와 건강보험 커버 비율을 보면 우리나라는 전체 서비스 기준으로 62%로, 뒤에서 세 번째입니다. 우리보다 뒤쳐진 나라는 그리스와 브라질 뿐입니다. 의료서비스 전반에 걸쳐 정부와 건강보험, 즉 공공부문이 커버해 주는 비율이 낮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나라는 총 의료비 지출 규모에서는 OECD 평균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총 의료비 중 공공부문이 커버해 주는 비율이 GDP의 6% 정도에 불과한 반면 일본은 GDP의 약 10%, 미국도 GDP의 약 14%로 매우 높습니다. 우리나라는 개인의 의료비 부담 비율이 높다는 것입니다. 실손보험 가입자가 4천만 명에 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수가 체계에서 정부가 할 일을 안 하다 보니 의료비용은 결국 다 국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이죠. 3분진료, 의료 박리다매, 과잉진료가 저수가 체계로 대변되는 정부와 건강보험의 역할 실종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수가 체계에서 의사들은 병상 수를 늘리거나 의료 박리다매, 새로운 의료기술이나 기계를 도입해 과잉진료를 하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 의사를 더 늘리면 과잉진료는 더 심해지고 의료비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의료시스템에 대한 책임이 있는 정부가 의사들에게 발언권도 주지 않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키지 않으면서 저수가 체계를 수십년간 유지해온 결과입니다. 또한 70대 이상은 치료보다 돌봄이 더 중요한데, 건강보험에서 제대로 커버가 안 되고 있죠. 이런 부분에 대한 의료서비스 공급을 어떻게 늘리고 국민들의 비용 부담을 낮출지 고민해야 합니다."
-일각에선 의사 수가 늘어나면 의료서비스 비용이 낮아질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한국 의료 체계에서 의료서비스 가격은 사실상 국가가 결정합니다. 의사 숫자와 무관합니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숫자가 OECD 평균보다 적은 나라로는 프랑스, 일본, 영국, 한국 등이 있는데요. 이들 국가 대비 한국에서 의사 숫자는 압도적으로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최근 10년 사이 의사 숫자는 무려 30% 늘어났습니다. 동시에 한국인들의 의료비 지출 역시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2006년에 GDP의 5%도 안되던 총 의료비는 2022년에 GDP의 10%에 육박하는 지점까지 늘어났습니다. 같은 기간 동안 OECD평균 의료비 지출은 물론이고,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통계를 봐도 의료비가 이렇게 급격히 늘어난 나라가 없습니다. 물론 의사 숫자 증가가 국민 총 의료비 지출 증가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겠지만, 통계를 보면 의사 숫자가 늘어나도 의료비는 늘지 않는다는 주장은 통계적 근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와 건강보험에서 의료비를 제대로 커버해주지 않으니 개인 부담은 엄청나게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의대 정원 증원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의료 수가가 국가에 의해 고정돼 있는 한국 의료체계에서 수가는 자원 배분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의료시스템의 개혁을 통해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구조개혁이 없는 상태에서 의사 수가 늘어나면 과잉 진료를 더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의사 1인당 연간 진료 환자 수가 OECD 평균 1594.6명인 반면 우리나라는 6000명입니다. 국민 1인당 연간 의사 진료 횟수도 14.7회로 OECD(5.9회) 1위이고, 인구 천명 당 병상 수도 12.7병상으로 OECD(4.3병상) 1위인데요.
"수가는 건강보험정책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회(건정심)에서 결정됩니다. 수가를 올리려는 측 8명과 내리려는 측 16명이 의결해 결정하다 보니 수가를 인상하기 어려운 구조죠. 여기에다 수가는 평균 의료원가의 70% 정도 선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의사들은 비급여로 수익을 내고 병상과 진료횟수를 늘리게 되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OECD 1인당 진료행위 6000회로 그리스, 포르투갈(500~600회)의 10배 수준입니다. 저수가 체계에서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19년째 의대증원을 못해서 늘려야 된다고 하면 수가는 그동안 왜 올리지 않았나요. 물가상승률, 사회적 변동, 기술수준 발달에 맞춰 수가를 적절히 올려주거나 재분배 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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