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발표 이후에 언론과의 첫 인터뷰
"통합은 선대 회장 부탁 이행 하는 것"
"장녀, 故 임회장 경영자질 가장 닯아"
[서울=뉴시스]송연주 기자 = "이 세상에 나보다 임성기 선대 회장을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번 결정이 결국은 임 회장의 뜻이고, 한미의 방향입니다. 임 회장이 부탁하고 가신 일을 제가 이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은 지난 8일 언론 인터뷰에서 "OCI그룹과의 통합은 'R&D 집중 신약 개발 명가'라는 한미의 정체성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밝혔다.
한미약품그룹은 에너지·소재 기업 OCI그룹과의 통합 계약 발표 후 오너가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한미약품 사장이 반기를 들며, 법적·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다.
송 회장은 "(임 회장 별세 후) 내가 회장 자리를 물려받은 이유에 대해, 또 OCI와 통합하려는 데 대해 두 아들이 문제 제기하는 기사를 봤다"며 "임 회장께서 돌아가신 후 둘째 아들이 '어머니께서 회장 자리에 오르라'고 가족과 친인척들이 있는 자리에서 최초로 제안했고, 가족과 한미 경영진 모두 찬성해서 그렇게 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또 상속세 문제로 고민할 때 첫째 아들이 '편드에 지분을 넘기는 것은 회사를 파는 것이고 한미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이니 절대 안 된다'고 여러 차례 조언했고, 그래서 한미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은 게 'OCI와의 대등한 통합'이었다"고 말했다.
두 아들을 향해선 "어느 집이든 이런 비슷한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며 "어머니를 좋아했고 존경했던 두 아들이 다시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에는 나의 결심을 이해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송 회장은 "세상이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헬스케어 분야는 더 그렇다"며 "(이번 통합 모델은) 서로를 지키면서 더 큰 발전을 위해 나아갈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오픈 이노베이션이고, 이종 산업 기업 간의 결합이어서 오히려 리스크가 훨씬 적다"고 말했다.
다음은 송영숙 회장과의 일문일답.
-. OCI그룹과의 통합을 발표한 후, 여러 상황이 겹치면서 심경이 복잡할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가족이 합심해야 하는데, 주주들에게 면목이 없다. 우리 가족이 아주 화목했는데 '한미를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선 이견이 있는 것 같다. 어미로서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공과 사는 분리돼야 한다. (두 아들 주장처럼) 한미를 지금 이대로 그냥 내버려 두자는 태도로는 회사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이다."
-. 한미가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는 없었나? 꼭 통합이 필요했나?
"임 회장이 돌아가신 후 가족에게 부과된 상속세가 이번 통합의 단초가 됐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통합 결정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한미가 그저 한국에서만 최고인 로컬 회사로 남아도 된다고 생각했다면, 또는 해외 사모펀드나 일부 기업들의 M&A 사냥감이 돼도 상관없다고 봤다면, 또는 내 개인적 이익만을 생각했다면 OCI와의 통합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 주가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을 제시한 곳도 있었지만 난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것은 큰 아들의 말마따나 '한미를 팔아넘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계 펀드에 한미 지분을 넘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미는 임성기 회장과 내가 젊은 시절을 다 바쳐서 일군 회사다. 임성기 회장의 집념과 리더십으로 한미를 한국 최고의 신약 개발 회사로 만들었고, 그 과정 속에 내가 있었다. 그런 내가 한미를 해외 자본에 팔아넘기는 결정을 할 수 있겠나.
'R&D 집중 신약개발 명가'라는 한미의 DNA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여러 방안 중 OCI그룹과 같은 이종 산업의 탄탄한 기업과 대등한 통합을 하는 게 최선의 방안이라고 판단했다. 상속세 재원 마련은 '현실의 문제'였고, OCI그룹과의 통합은 '한미의 미래'가 달린 일이었다. 현실의 과제와 미래의 가치 모두를 가져올 수 있는 합리적인 통합 모델이었고 심사숙고해 과감하게 결단했다."
-. 왜 이종산업 기업과의 통합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는지?
"임성기 회장이 계실 때 한미가 동아제약 지분을 취득했는데, 시장에서는 '한미가 동아제약을 상대로 적대적 M&A를 하려고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당시 임성기 회장은 (지금의 통합 모델처럼) 서로의 경영권을 존중하면서, 부족한 것은 채워주고 때론 자금도 지원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동아제약과 협력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을 추진하려고 했다.
그런데 상황은 정 반대로 흘러갔다. 업력이 오래된 동아제약을 한미약품이 집어삼키려 든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동아제약 구성원들도 불안감에 휩싸였다고 한다.
임 회장은 당시 저에게 '서로가 잘 해보자는 취지인데 이렇게 비판을 하니 같은 업계에서 힘을 합친다는 게 참 어렵다. 동종 기업간의 Win-Win은 한국에선 불가능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동아제약과의 협력을 포기했었다.
한국에서는 동종 기업 간의 통합이나 인수합병은 극심한 혼란과 상처를 줄 수 있겠다는 경험적 판단이 있었고, 그래서 이종 기업인 OCI그룹과의 통합 모델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한미사이언스의 이사회 역시 이종 기업 간 통합이 서로의 전문성을 오히려 더 존중받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뜻을 같이 했다. 이것이 OCI를 선택한 이유다."
-. 일각에서는 통합 이후의 한미 리더십이 '장남'이 아닌 '장녀'가 된다는 사실 때문에 이번 한미 상황에 더 주목하는 것 같다.
"세 자녀 모두 30대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같은 조건에서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장남은 주로 중국에서, 장녀는 아버지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차남은 한미의 관리나 영업쪽 실무를 익히는 것에서 시작했다. 나는 세 자녀 모두 각자 영역에서 잘 해 왔다고 생각한다.
장남과 차남은 아주 창의적이고 열정적이지만 개성이 강하고 다소 즉흥적이어서 언제든 사업의 방향성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장녀 임주현 사장은 20여년간 임성기 회장 지근거리에서 그의 '눈과 귀' 역할을 해왔고, 우리가 신약으로 최대의 성공과 좌절을 동시에 겪었던 시기 임 회장 옆을 지키면서 한미의 미래를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세 자녀 중 임 회장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고, 임 회장의 생각을 꿰뚫고 있었고, 임 회장의 경영자적 성격을 가장 많이 닮았다. 아버지와 생각이 다를 때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차분히 주변을 배려하며 자기 주장을 관철하는 능력도 임주현 사장이 탁월했다."
-. 법적인 문제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현실은 조금 다르게 그려질 수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개인 최대주주인 신동국 회장이 장남의 편에 서거나, 현재 진행 중인 '3자 배정 유상증자' 가처분이 인용되는 등의 경우 말이다.
"가능성을 전제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만 신동국 회장님은 우리 부부와 30년지기 친구다. 이런 일로 고민거리를 드려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신 회장님도 이번 통합이 한미의 미래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는 점을 잘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한다.“
-. 두 아들을 설득해 볼 생각은 없는가.
"나는 지금도 '내 방식대로' 계속 설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번 상황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는 이유도 두 아들은 아마 잘 알 것이라 생각한다. 두 아들이 밖에서는 엄마와 동생(또는 누나)을 비판하고 있지만, 정작 내 앞에서는 착하고 사랑스러운 자식들일 뿐이다. 가족간의 다툼에서 승자가 어디에 있겠나. 그리고 승자가 됐다고 좋아할 일이겠나. 두 아들이 가족이 화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택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엄마의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 송 회장이 통상의 경우 보다 더 많은 지분을 상속받았다고 두 아들이 문제제기 했는데.
"가족 간에 다 합의된 내용이었다."
-. 송 회장의 뜻과 달리 장남은 한미를 위해 '나쁜 아들, 나쁜 오빠'가 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강경한 태도로 나오고 있다.
"오죽 속상하면 그런 표현을 썼겠나. 지금 이 순간에도 임종윤, 종훈 사장이 '한미를 위한 결단'에 동참해 주길 바란다. 행여나 아버지가 물려준 회사의 소중한 지분을, 값을 많이 쳐 주겠다고 유혹하는 해외 펀드에 팔아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두 아들의 요구를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 통합 관련 큰 결정에 앞서 두 아들에게 언질을 줄 생각은 없었는지.
"난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한미사이언스는 상장회사다. 아들이라 하더라도 이사회 멤버가 아닌 이상 미리 알릴 수는 없었다. 발표 후 차남에게는 설명을 했지만 상황이 급박하게 진행되면서 장남에게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소송 중이라 어떤 말을 전하기도 조심스럽다."
-. 시장에서는 양 그룹간 경영 시너지 효과를 궁금해 하고 있다.
"나는 'R&D 명가, 신약 개발 명가라는 한미의 정체성을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대원칙을 모든 경영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단순히 일회적, 단기적 성과에 만족하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현재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더 큰 경제적 가치를 기대할 수 있다면 과감히 투자하고 그 기조를 리더십을 통해 지속시켜 주는 것이다. 한미가 신약 개발 회사이기 때문에, 이런 기조는 더욱 필요하다. 조직 구성원들이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혁신을 위해 계속 도전해 보자'는 마음가짐을 갖도록 하려면 회사의 지속가능한 경영 모델이 반드시 구축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선대 회장님의 철학이었다.
OCI와의 통합은 신약 개발을 위한 많은 도전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한미사이언스가 중심이 돼 유망한 신약 개발 회사나 벤처, 기술들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도 있고, 때로는 M&A에도 적극 나설 수 있다. 해외의 빅파마들을 한번 보라. 그들은 수십번, 아니 수백번에 이르는 M&A를 통해 회사의 규모를 키워냈고, 그 체급을 기반으로 혁신을 창출해 왔다. 그들이 하면 혁신이고, 한국의 한미가 하면 사익을 위한 결정인가?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시각에서 탈피해야 한미도 살고,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도 산다."
-. 임성기 회장이 손주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을 공개해 공감을 얻기도 했다. 그 마지막 말 속에서 한미의 방향성을 그려 볼 수 있었다. 병상의 임 회장과는 어떤 대화를 나눴나.
"언론을 통해, 또 세 자녀에게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병상에서 임 회장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임 회장의 간곡한 당부들도 있었다. 이렇게 나눈 얘기를 바탕으로 임 회장은 '모든 것을 맡긴다'며 떠나가셨다. 우리 둘 만의 약속이 있었고, 임 회장이 부탁하고 가신 일을 내가 이행하는 것이다. 그게 이번 통합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한미를 지켜달라'는 그의 마지막 뜻을 지킨 것이다."
-. 마지막으로 이번 통합을 바라보고 있는 한미그룹 주주들, 직원들에게 한 말씀 남긴다면.
"가족의 일로 혼란을 드려 송구하다. 주주들께서 하시는 여러 말씀들은 '더 잘 해 내라'는 격려로, '한미라면 달라야 한다'는 진심 어린 성원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 오셨던 것처럼 '한미의 길'을 믿어 달라. 한미는 창업주 가족의 이익만을 위해 존재하는 회사가 아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제약바이오 기업, 나아가 세계적인 제약바이오 기업이 돼야 한다는 주주들의 열망을 잘 알고 있다. 더 노력하겠다. 이번 통합은 그 길을 여는 첫 번째 열쇠가 될 것이다. 주주님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주주가치 실현을 위해 모든 노력을 쏟겠다. 그리고 직원들에게는 '한미 가족의 삶을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겠다'고 했던 약속은 변함이 없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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