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이동에 최대 50만원 더"…혜택일까, 차별일까

기사등록 2024/03/09 08:30:00 최종수정 2024/03/12 10:59:05

'전환지원금' 신설…이통사 옮기는 가입자는 혜택

고가 단말·요금제 가입자 중심 지원 집중될 가능성

불필요한 교체 유도…가계통신비 인하 아닌 부담 증가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16일 서울시내 한 휴대폰 할인매장 앞의 모습. 2022.06.16. jhope@newsis.com


[서울=뉴시스]심지혜 기자 = #이통사를 바꾸면서 공시지원금을 받고 단말기를 구매하면 최대 50만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게 되자 A씨는 갤럭시S24 교체를 마음 먹었다. 현재 갤S24 최대 공시지원금은 50만원이다. 여기에 추가지원금까지 받으면 총 107만5000원을 지원 받는다. 하지만 월 13만원이 최고가 요금제를 써야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단통법 시행 이후 기기변경과의 차별이 없어 한 통신사를 계속 사용한 B씨.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욕심이 없고 결합 혜택을 받고 있어 이통사 변경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런데 이번에 번호이동 가입자에게만 최대 50만원의 혜택을 준다고 하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막상 이통사를 바꾸려고 생각하니 불필요하게 스마트폰을 사야하고 또 결합 혜택이 많은지, 추가 지원 혜택이 많은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 결단을 내지 못했다.

#고가의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불법 보조금을 받아 싸게 구매하곤 했던 C씨는 이번에도 이통사를 옮길 생각이다. 약정을 하고 고가 요금제에 가입해야 하지만 관계없다. 빠르게 이동해도 전환지원금으로 위약금을 지원 받을 생각이다.

이달 14일부터 이통사를 옮기는 번호이동 가입자는 단말기 지원금 이외에 최대 50만원의 추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는 이통사 변경시 발생하는 위약금이나 심(SIM) 카드 발급 비용, 장기가입자 유치를 위한 추가 쿠폰 등을 포함한 전환지원금이다.

이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단통법 시행령 개정과 고시 제정을 통해 진행된다.

단통법 폐지가 추진되고 있지만 이전에라도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간 지원금 경쟁을 활성화 하겠다는 의도다. 소비자들이 혜택을 더 많이 주는 이통사에 쏠리면 대응을 위한 경쟁이 활발해 질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는 공시지원금, 추가 지원금 이외에 받는 추가적 혜택이다. 이통사 변경 조건만 맞추면 지원금을 받고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이들은 최대 50만원을 더 받을 수 있는 것이다.

◆ 번호이동 철새족만 혜택…장기 가입자 역차별 우려

기존에 없던 혜택이 생겼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특정 가입 유형에만 제공되는 만큼 정부가 차별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단통법 시행 이후 가입 유형에 대한 차별이 막히면서 가입 유형에 상관없이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이통사를 바꾸는 가입자에게 혜택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이는 스마트폰 교체 수요가 없거나 한 이통사를 오래 이용한 충성 가입자 입장에서는 역차별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환지원금에 대한 지급 기준이 없어 불필요한 교체 수요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번호이동 제한기간 3개월만 유지하면 위약금이 나와도 전환지원금으로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번호이동 철새족을 양상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셈이다.

이뿐 아니라 지급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고가 요금제 가입을 유도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통사 입장에선 기존에 없던 최대 50만원의 마케팅비를 투입해야 하는 만큼 고가 요금제 가입자에게 집중 제공할 수 있다.

이는 결국 가계통신비 인하가 아닌 부담을 증가시키는 역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이동통신 판매점 관계자는 “현재에도 지원금 정책은 고가 요금제 가입자에게 집중돼 있는 상황”이라며 “전환지원금 또한 고가 가입자 유치를 위해 이들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일부 시민단체 또한 이번 정책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서울YMCA 시민중계실은 ‘전환지원금 50만원으로 이용자 갈라치기 하는 방통위의 단통법 고시’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전환지원금 대상에 대한 기준이 없어 무차별적 지급에 따른 여러 문제들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번호이동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이용자까지 불필요한 단말기 구매를 유도하게 되면 결국 보조금 중심의 번호이동 시장이 과열될 것”이라며 “잦은 단말기 교체는 가계통신비 증가와 자원 낭비 등 부작용을 낳고 단통법이 추구했던 가입유형간 차별 금지를 오히려 대폭 확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고 했다.

◆ 제조사 지원 없이 이통사만 폭탄…'번이' 경쟁

이통사 입장에서도 이번 고시가 달갑지 않은 눈치다. 전환지원금 재원을 오롯이 이통사가 부담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지원금 경쟁 확대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이통사뿐 아니라 제조사도 단말기 지원금을 위한 ‘판매장려금’을 높여야 하는데, 현재의 전환지원금은 위약금, 심 비용, 장기가입자를 위한 쿠폰 등 이통사가 부담해야 하는 재원에 집중돼 있다.

이는 이통사가 부담하는 지원금으로 단말기 가격 인하가 아닌, 신규 스마트폰 구매 확대에 따른 제조사의 배만 불리는 구조에 그치는 셈이다.

이에 이통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이통사는 그동안 단통법으로 경쟁이 억제되면서 마케팅비를 통제하는 대신 신성장 사업으로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등 디지털 전환 분야를 육성하고 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모두 앞으로의 성장 키워드를 ‘AI’로 잡고 전형적인 통신 중심 사업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이동통신 업계 한 관계자는 "사회적 총 비용이 더 올라가는 구조인데, 통신비 인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오히려 제조사랑 유통업자만 이득을 보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이어 "기존 공시지원금에 전환지원금까지 나가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안 된다"며 "부담이 크다"고 부연했다.

안정상 국회 더불어민주당 방송정보통신 수석전문위원은 “시장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부는 지원금만 대폭 증액시키면 이용자들이 앞다퉈 번호이동에 나설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말기에 대해 판매장려금의 대폭적인 상향 조정이나, 단말기 공급가격 자체를 인하하지 않는 한 이통사의 지원금 무제한 살포만 요구해서는 결코 이용자가 단말기 구입 부담 경감을 체감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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