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광장서 분신 택시기사 영결식
오후엔 고인 분신한 회사 앞서 노제 진행
"먼 훗날 만나면 평화로운 데로 여행가자"
[서울=뉴시스]임철휘 박광온 기자 = "장례를 치렀다고 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동훈그룹이 반성하고 사죄하는 날까지 계속해서 싸울 것입니다. 먼 훗날 아빠를 만나면 아빠가 못 이룬 거 내가 이뤘다고 생색 한번 내보고 싶습니다. 이제 아버지가 편하게 눈을 감았으면 좋겠습니다."
택시기사 고(故) 방영환씨의 딸 희원(32)씨가 눈물을 흘리며 추도사를 끊어지듯 읽어나갔다. 영결식에 자리한 노동자들은 고개를 떨구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택시 완전월급제 등을 주장하다 분신해 숨진 택시기사 고(故) 방영환씨의 영결식이 사망 144일 만인 2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열렸다. 앞서 '방영환 열사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는 지난 25일부터 사흘간 노동시민사회장으로 방씨의 장례를 치렀다.
이날 영결식에는 딸 희원씨를 비롯해 상임공동장례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린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 엄길용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이백윤 노동당 대표, 손은정 영등포산업선교회 목사, 양규헌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상임이사 등 추모객 400여명이 자리해 방씨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희원씨는 유족 인사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개월 만에 드디어 아버지를 보내드릴 수 있게 돼 막막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졌다. 아버지가 살아생전 원하셨던 것들을 완벽하게 다 이뤄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제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아주실 거로 생각한다"며 눈물을 삼켰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조사에서 "고단한 삶을 마감하고 우리 곁을 떠나는 방영환 동지의 명복을 빈다"며 "택시 현장에서 완전월급제를 실현하는 것, 방영환 열사의 죽음에 책임 있는 자들이 제대로 처벌받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고 말했다.
엄길용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내 한 몸 불태워 세상이 좋아지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동지의 유언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며 "살아남은 우리가 동훈그룹의 전액관리제와 최저임금법 위반에 대해 반드시 처벌받도록 할 것이다. 최저임금법을 지키도록 만들 것"이라고 했다.
오후 1시30분부터는 방씨가 다녔던 서울 양천구 해성운수 앞에서 노제가 진행됐다. 고인은 이곳에서 임금체불에 항의하는 1인 시위를 하다 몸에 불을 붙였다. 꽃상여가 회사 입구에 놓였고 추모객들은 '악덕기업주 처벌' '방영환 열사 분신 책임 정부가 처벌' 등의 손팻말을 들어올렸다.
남성화 공공운수노조 조직실장은 지난 2020년 같은 해고자 신분으로 고인을 만나 막역하게 지내왔다고 한다. 남 실장은 "방영환 동지가 언젠가 '내가 잘못되면 딸을 꼭 찾아달라' 그랬었다. 농담으로 받아들였었는데, 그날이 너무 빨리 왔다"며 "분신 항거 전날 우리 함께 여행 가자고 약속했었다. 먼 훗날 우리 다시 만나면 꼭 같이 평화로운 곳으로 여행 가기로 약속하자"며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박상길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방영환 열사의 한과 염원이 서린 이 장소에서 다시 한번 투쟁의 결의를 다지고 싶다"며 "해성운수 대표 이사가 구속됐다. 하지만 동훈그룹 실질적인 주인인 정 회장은 아직 따뜻한 집에 있다. 이 자를 감옥으로 보내는 투쟁을 할 것"이라고 했다.
30여분가량의 노제가 끝난 후 조합원 등 100여명의 추모객들은 고인이 안정될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으로 이동했다.
이에 앞서 오전 8시께 유족과 동료 조합원, 시민사회단체들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발인을 했다.
양규원 공동장례위원장은 추도사에서 "참담한 고통과 좌절을 극복하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난 방영환 열사의 명복을 빈다. 아울러 해결되지 못한 과제들은 산 자들의 몫으로 남기시고 억압과 착취가 없는 해방된 세상에서 고이 잠드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빨간색 조끼를 입고 '열사 정신 계승'이라 적힌 머리띠를 두른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은 방씨의 영정 앞에서 수 차례 절을 올리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후 동료 조합원들은 방씨의 영정과 위패를 앞세워 그의 관을 운구차까지 옮겼다. 방씨의 관을 옮기는 동안 참석자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부친의 관이 운구차에 실리는 순간 희원씨는 관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흘렸다. 참석자들이 슬피 우는 희원씨를 안아주며 위로했다.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해성운수 분회장인 방씨는 추석 연휴 이틀 전인 지난해 9월26일 오전 8시30분께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전신 60% 이상에 3도 화상을 입고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진 고인은 분신 열흘 만인 지난해 10월6일 오전 6시18분께 사망했다.
이후 노동계는 서울시와 고용노동부의 점검·감독, 사측의 사과, 택시업체 대표 처벌 등을 촉구해 왔으며 업체 대표인 정모 씨는 방씨를 폭행·협박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재판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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