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간 급성심정지 16만여건 발생
CPR 교육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 커져
"CPR 중 환자 다치면 책임 물까 우려"
응급의료법, 사망 형사책임 '감면' 규정
감면일 뿐 형사책임은 여전하단 지적
'감면'을 면책으로 바꾸잔 법은 계류 중
[서울=뉴시스]박광온 기자 = 갑작스럽게 심장 기능이 중단되는 급성 심장정지(심정지) 발생 환자가 해마다 3만건 이상 발생하면서 심폐소생술(CPR)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지자체)는 CPR에 대한 교육·체험 환경을 늘려가고 있으나, 시민들은 CPR을 하다 형사 책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에 선뜻 나서지 않는 모습이다. 이를 해결할 관련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된 상황이다.
16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5년간 급성심정지 발생 건수는 총 16만1226건이다. 연평균 3만2000여건의 심정지 사고가 발생한 셈이다.
연도별로 보면 ▲2018년 3만539건 ▲2019년 3만782건 ▲2020년 3만1652건 ▲2021년 3만3235건 ▲2022년 3만5018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를 보였다.
실제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8일 오후 3시45분께 전북 완주군에 있는 한 자동차 공장에서 50대 직원 A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옆자리에 앉아 있던 직원의 CPR로 A씨는 의식을 회복해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또 지난달 22일엔 대구 남구에서 수영장을 이용 중이던 80대 여성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CPR 등 응급처치 후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지는 사고도 있었다.
이처럼 매년 심정지 발생 사고가 늘어남에 따라 CPR 교육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심정지가 온 이후 즉각 CPR을 시행하지 않을 경우 소생률이 빠르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가슴압박 심폐소생술을 1분 내 시행할 경우 소생률 97%, 2분 내 90%, 3분 내 75%, 4분 내 50% 정도로 시간이 지연될수록 소생률이 떨어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일반인이 심정지 환자에 심폐소생술을 했을 경우 생존율(12.2%)이 그렇지 않은 경우(5.9%)보다 2.1배 높게 나타났다.
이 같은 상황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CPR 교육 상설화 및 길거리 체험장 조성 등을 통해 CPR 교육 저변을 넓히는 데 부심해왔다.
일례로 서울 서초구는 올해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서초구 주민 및 직장인을 대상으로 응급처치 상설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기존에는 응급처치 교육 날짜가 정해져 있지 않아 신청을 위해서는 서초구청 홈페이지를 확인하거나 보건소에 전화로 문의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으나, 올해부터는 교육 일을 매주 토요일로 고정해 일일이 날짜를 확인하는 불편함을 없앴다.
서울 종로구도 길거리 곳곳에 개방된 상태의 CPR 교육 체험장을 갖춰놓은 상태다. 실제 지난 12일엔 광화문역 인근에 있는 '열린 심폐소생술 체험장'에선 초등학생들이 사람 모형을 상대로 부모와 함께 CPR 하는 법을 배우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사람들 인식 속에 CPR을 하다 상대방이 다치거나 숨지는 경우 혹은 성추행범으로 몰리는 경우 등 민·형사 사건에 휘말릴 수 있다는 걱정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경기 평택시에 사는 박준호(28)씨는 "내가 CPR을 하다 심정지 상태에 있는 사람이 더 크게 다치거나 숨진다면, 그 책임은 내가 지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된다"며 "물론 사람을 살리는 행위이기에 면책된다는 건 들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중대한 과실을 저질러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어 쉽게 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전했다.
'선한 사마리아인법'으로 알려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응급의료법) 5조 2항에는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조항을 두고 있다.
구체적으로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응급처치를 제공해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死傷)에 대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 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않으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 조항은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데도 도운 환자가 사망할 경우 형사책임을 져야 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는 문구 때문이다.
의료인이나 119구급대원이 아닌 일반인은 '중대한 과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이 인식하지 못한 과실로 환자가 사망에 이른 경우 형사책임이 '감면'될 뿐 여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해석한다는 것이다.
경기 의왕시에 사는 배성훈(28)씨는 "CPR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전히 시민들 인식 속에 CPR을 하다 상대방이 다치거나 숨지면 그 책임은 어떻게 하나라는 우려가 남아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을 수용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3월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2023~2027년)을 발표하며 "선의의 응급의료행위에 대한 면책 범위 확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 2022년 6월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이날 기준으로 1년6개월이 넘도록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해당 법안은 긴급하게 응급의료 등이 필요한 상황에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이 응급처치 등을 하는 경우에는 응급환자가 사망하더라도 형사책임을 면제하도록 해 적극적인 응급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응급환자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박정호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일반인이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의료행위를 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이를 가로막는 제도적 미비점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계류돼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응급위료 행위에 대한 형사 책임을 '감면'이 아닌 면제토록 하는 등, 관련 제도적 기반이 빠르게 정비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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