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자살자 수 최근 5년이래 최대 전망
미국 교포 자살률, 전체 아시아인比 1.6배↑
교통사고 예방전담조직 꾸려 사망자 80%↓
"자살 예방도 지자체 등 전담조직 필요해"
미국 유명 작가의 비판은 씁쓸하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한 해 1만3000명 가량이 스스로 삶을 등지고 있는 국가적 재난 상황이다.
31일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안실련) 등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1만2906명으로, 교통사고 사망자(2735명)보다 약 4.7배 많았다. 해외 교포들의 정신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최근 5년간 미국 내 한인 200만 명 중 한 해 평균 220명 가량이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낯선 미국 땅에서 적응하는 데 따른 어려움, 참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의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미국 내 한인 자살률은 11명으로, 전체 아시아인 자살율(인구 10만 명당 6.8명) 대비 1.6배 가량 높다.
새해에는 달라져야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양두석 안실련자살예방센터장(생명사랑연대 공동대표)은 최근 뉴시스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지난해 8월까지 잠정 통계치를 보면 자살자 수는 전년 대비 8.5%인 726명 늘어나 2023년에는 최근 5년 중 최고였던 1만3799명(2019년)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자살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개인적·사회적 요인을 인식해 국가와 지자체, 민간의 유기적인 협력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양 센터장은 "지자체·경찰서에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교통안전과를 설치해 교통사고 사망자를 대폭 줄인 것처럼 전국 시도와 지자체, 경찰서, 경찰청, 소방서에 자살예방 전담 조직을 신설해 매년 1만 3000여 명이나 생명을 잃는 자살 예방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양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매년 1만 3000여 명 가량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있는데요.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어떻게 1991년 1만 3000여 명에서 2022년 2700명 수준으로 80% 감소했나요?
"2000년 국무총리실에 안전관리개선기획단이 발족돼 행정자치부, 국토부, 경찰청, 교통안전공단, 보험사, 교통시민단체 등이 합동으로 교통 관련 법규 제정과 제도 개선, 중앙 분리대 설치 등 교통 안전 시설 개선, 안전띠 착용 캠페인 등 대책을 지속적으로 실시해 2년 만에 교통사고를 30% 줄였습니다. 이후에도 정부와 지자체, 교통시민단체 등이 과속 단속 카메라 지속 설치, 교통 안전 시설 개선, 음주운전과 스쿨존 사고 시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민식이법 제정 등에 힘써 교통사고는 해마다 감소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자체·경찰서에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교통안전과를 설치해 교통사고 사망자를 대폭 줄였습니다."
-1990년대 자살자 수가 급증했던 일본은 어떻게 자살률(2003년 인구 10만명당 27.0명에서 2020년 16.8명으로 감소)을 낮췄나요?
"1997년을 기점으로 자살자 수가 급증한 일본은 2006년 자살 유가족 등 시민단체가 연대 서명해 자살대책기본법을 제정했고요. 자살대책기본법 1조에 어느 누구도 자살로 내몰지 않는 사회 실현을 목표로 명시했고, 특히 총리실에 자살대책위원회를 설치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간 후생노동성 등 전 부처가 힘을 합쳐 대책을 추진해 자살률을 37% 줄였습니다."
-일본이나 한때 자살률 세계 1위였던 핀란드 사례를 보면 지역사회의 효과적인 자살예방 정책이 자살 예방에 있어 매우 중요한데요.
"지역의 자살률 감소에는 지자체 단체장의 의지와 관심이 크게 작용합니다. 지자체 단체장이 지역 주민들의 생명을 지키고 살리는 일에 관심을 갖고 예산 지원과 대책 추진에 적극 나서야 자살률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자살예방 전담 조직을 설치해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고 지역 실정에 맞는 자살예방 대책을 추진하면 자살률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전국 시도 중 자살률 1위였던 충남은 2018년 취임한 도지사가 자살예방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맞춤형 시책, 자살 유가족 지원 및 상담 등 자살 예방을 위한 전방위 활동을 적극 펼쳐 만년 자살률 1위에서 벗어났습니다. 서울 노원구는 구청장이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자살예방 전담팀 신설 및 운영, 생애주기별 자살예방대책, 자살 고위험군 조기 발굴과 지원 대책 등을 추진한 결과 연간 자살자 수가 2009년 180명에서 2023년 103명으로 30% 줄었습니다. 그 결과 서울 25개 자치구 중 7번째로 높던 자살률이 지난해 16위로 크게 떨어졌죠."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 정책 혁신위원회'가 조만간 출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요. 설치될 경우 자살을 줄일 수 있다고 보시나요?
"네. 생명연대와 안실련은 일본과 같이 대통령실에 자살대책위원회를 설치 운영해야 자살률을 줄일 수 있다고 지속적으로 촉구해왔습니다. 대통령실에 성명서도 전달했고요. 자살예방은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교육부, 국방부, 고용노동부 등 모든 부처가 힘을 합쳐 대책을 만들어 추진해야 힘이 실리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정신건강 문제를 주요 국정 어젠다로 삼아 국가가 적극 해결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상태여서 기대가 큽니다."
-국가가 자살 예방에 적극 나서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려면 예산 문제를 해결해야 할텐데요.
"지난해 중앙 정부의 자살예방 예산은 546억 원으로, 일본(8300억 원)의 6% 수준에 불과합니다. 지자체 자살예방 예산도 전체 지자체 예산 중 0.017%밖에 되지 않습니다. 연간 복권기금 중 일부를 자살예방기금으로 편성하거나, 주류세나 응급 의료기금을 활용해 중앙 정부의 자살예방 예산을 3000억 원 정도로 끌어 올려야 합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면 자살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는데요. 당부하시고 싶으신 말이 있으시다면요.
"지자체는 지역의 자살 고위험군인 독거 노인과 자살 유가족 등을 적극 발굴해 지원하고, 올해 7월부터 초·중·고교에서 생명존중 자살예방교육이 의무화되는 만큼 유아부터 노인까지 모든 연령대를 대상으로 생명존중 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는 자살예방전화 '109'를 적극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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