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학과별 정원 모아 자유전공학부 신설"
예비 고3 입시부터 정원 5%…한양대는 12% 운영
광역선발 10% 계획했던 동국대, 확대 여부 검토
정시 40% 서울 16개교 중 13개교가 검토 들어가
입시 판도 바뀔 듯…과거 '실패' 답습할라 우려도
[세종·서울=뉴시스]김정현 오정우 이태성 이승주 기자 = 장기간의 등록금 동결 속 연간 수십억원대 국고 인센티브가 걸린 교육부의 '무전공 모집' 확대 방침이 나오자 대학들도 부랴부랴 구조조정 채비에 나서고 있다.
당장 대다수 서울 주요 대학들의 모집정원이 수백명 단위로 바뀔 조짐이다. 예비 고교 3학년 수험생들이 치를 입시부터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인기 없는 필수 학문이 피해를 입고 학생들의 학업 부담도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찮다.
◆서울대·한양대·외대 정원 5~10% 자유전공 저울질
9일 뉴시스가 대입 정시 수능 위주 전형으로 40% 이상을 선발하도록 규제가 걸려 있는 서울 주요 대학 16개교를 취재한 결과, 13개교가 2025학년도 입시부터 자유전공학부나 광역·계열단위 모집정원 신설·확대 검토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외대는 박정운 총장이 지난 2일 신년사를 통해 직접 "무전공 입학과 광역화 모집 등을 포함한 제도적 개선과 내실 있는 융복합 교육과정의 확대"를 공언했다. 외대는 자유전공학부와 광역선발 모두 도입할 방침이다.
외대 관계자는 "자유전공학부는 각 학과에서 일정 인원을 갹출(醵出, 나누어 냄)해야 한다. 학부별로 어느 정도로 할지 논의 중"이라며 "(교육부 최소 기준인) 2025학년도 5% 이상, 2026학년도에 10% 이상만 충족할 계획"이라고 했다. 2024학년도 외대 입학정원(3475명)의 5%는 174명이다.
한양대는 2025학년도에 자유전공학부인 '한양인터칼리지'를 신설하고 250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수시·정시 모집 비율 등 시행계획은 내부 논의 중이지만 2024학년도 모집인원(2096명)과 견줘 12%에 이른다.
서울대는 지난해 10월 전공 간 칸막이를 완화하고 창의적 융합인재 양성을 위한 학부대학협의체를 구성했고 추후 학부대학 설립추진단을 꾸릴 예정이다.
당초 서울대의 '학부대학'은 1학년 동안 송도 국제캠퍼스에서 생활하며 적응기를 갖는 연세대처럼 교육과정 개편 수준에서 검토됐으나, 교육부의 무전공 확대 방침 이후 모집정원 확보까지 저울질하는 중이다.
이런 학부대학 모집정원은 기존 자유전공학부(123명)에 280명을 늘린 400여명 수준을 검토한다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서울대 측은 "논의 중"이라고만 밝혔다. 맞다면 올해 모집인원(3496명)의 11.4% 규모다.
◆동국대 광역선발 확대 검토…연대는 위원회 구성
앞서 단과대학별 광역선발을 추진해 오던 대학들도 교육부 방침이 알려진 이후 당초 계획보다 입학정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동국대는 당초 9개 단과대학의 정시 모집인원 10%에 해당하는 247명을 학부제처럼 단과대에서 '광역선발'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최근 재검토에 들어갔다.
교육부의 대학혁신지원사업 개편 연구진안은 광역선발의 경우 2025학년도는 모집인원의 20%, 2026학년도는 25% 이상을 뽑아야 국고 인센티브 지급 자격이 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규모를 더 늘려야 한다.
의견 수렴에 나선 대학도 많다. 연세대는 무전공 선발을 검토하기 위한 학내 위원회를 구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숙명여대 측도 "여러 시나리오를 작성해 살펴보는 중"이라며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 같다"고 했다.
서울시립대도 내주 관련 설명회를 열 예정이고 성균관대·건국대·서울여대·숭실대도 내부 논의 중이다.
아직 관망 중인 중앙대와 경희대, 광운대도 교육부가 이달 중으로 대학혁신지원사업 개편 계획을 확정해 안내하면 그에 맞춰 논의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모집단위별 입학정원 등을 담은 대학별 대학입학전형시행계획은 고등교육법에 따른 사전예고제에 따라 이미 지난해 4월말 확정됐는데 구조조정에 따른 변경이 있을 경우 이를 늦어도 올해 4월까지는 고칠 수 있다.
이처럼 서울 상위권 대학들이 정원 5~20%를 자유전공학부나 과거 학부제와 유사한 광역단위 선발로 돌릴 경우 입시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자유전공학부의 경우 2~3학년에 의약학계열과 사범계열과 같이 자격증이 부여되는 학과를 제외하고 다른 전공을 택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한 대학 입학처 관계자는 "요즘 중·고등학교 진로교육이 예전에 비해 많이 발달해 있어 그에 맞춰 공부하고 준비하던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 '다르다' 느낄 수 있다"며 "(진로탐색 차원에서) 이것저것 배워보는 게 졸업 이후 적응도를 높이는 방법일 것"이라고 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그간 대학 교수들이 융복합이라는 흐름보다 일정 규모의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학문 간 견고한 벽을 유지하고 구시대적인 교육과정에 안주해 왔다고 지적해 왔다.
그러나 대학들의 이런 움직임은 말 그대로 자발적인 노력이라 평가하기 보다 국고 인센티브를 포기할 경우 입을 피해를 걱정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 더 많다.
광역선발과 자유전공학부 모두 실패한 전례가 있다.
광역선발의 원조 격인 학부제는 1994년부터 김영삼, 김대중 정부 당시 국고와 연계해 추진돼 왔지만 2000년대 들어 차츰 폐지 수순을 밟았다.
학생들도 4년 간 배울 전공 교육과정을 2~3년에 몰아서 듣느라 학업 부담이 커질 수 있고 대학들이 성적순으로 전공을 택하게 할 경우 부담이 가중된다.
자유전공학부는 지난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과 함께 기존 법학과를 폐지하고 기존 정원을 활용해 우후죽순 도입됐다. 그러나 학부제와 마찬가지 이유로 인기학과 진학을 위한 경쟁과 학습 부담으로 '고등학교 4학년'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서울 한 사립대 관계자는 "인센티브가 중요하다. 등록금을 15년 동안 올리지 못했고 직원 임금은 동결돼 사실상 삭감"이라며 "자체적인 교육 혁신도 하지만 이렇게 파격적으로 (무전공 모집 확대를) 하는 것은 교육부의 푸시(압박, push)가 세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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