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보이' 얻은 韓축구…'가짜 금메달의 저주' 풀까

기사등록 2024/01/09 06:00:00

2회 대회 도금 금메달에 화난 선수들, 우승 메달 반납

이후 64년간 아시안컵과 인연 없어…준우승만 4번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이 2일 오후 서울 강서구 메이필드호텔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출정식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2024.01.0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64년 만의 우승에 도전한다. 이른바 '가짜 금메달의 저주'로 불리는 64년간의 부진을 이번에 털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 축구가 출전한 첫 아시안컵은 6·25전쟁이 끝나고 3년 뒤인 1956년 홍콩에서 '제1회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당시 대한축구협회는 직원이 3명에 그칠 만큼 재정 등 모든 면에서 열악했다. 경기 중 다치면 상대 의무팀이 와서 치료를 해줘야 할 정도였다. 그래도 선수단 기량은 뛰어났다. '아시아의 황금 다리'로 불린 최정민을 비롯해 함흥철, 차태성, 손명섭, 김지성, 우상권, 성낙운 등이 포진했다.

1차·2차 예선을 통과해 최종예선에서 맞붙은 상대는 당시 자유중국으로 불리던 대만이었다. 8월26일 서울 홈경기에서 2-0으로 이겼지만 9월2일 타이페이에서 열리는 원정 경기를 앞두고 문제가 발생했다. 대한축구협회 재정이 빈약해 당시 국적기인 대한민국항공사(KNA) 비행기를 외상으로 탔다. 비행기 요금은 추후 친선경기 수익으로 갚기로 했다. 2차전에서 한국은 대만을 2-1로 누르고 역대 처음으로 아시안컵 본선에 올랐다.

그해 9월 홍콩에서 열린 본선에는 한국과 홍콩, 이스라엘, 베트남 4개 팀이 참가했다. 대만을 떠난 한국 대표팀은 9월6일 경기 당일 새벽 가까스로 홍콩에 당도했다.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경기장으로 갔다. 지친 한국은 초반 2골을 내줬지만 2골을 만회해 2-2로 비겼다. 당시 프로리그를 운영하며 강팀으로 군림하던 홍콩과의 무승부는 우승에 큰 힘이 됐다. 한국은 2차전에서 서부 지역 대표인 이스라엘(당시 아시아축구연맹 소속)을 2-1, 베트남을 5-3으로 누르고 2승1무 승점 5점으로 초대 우승국이 됐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제1회 아시안컵 우승컵은 2012년 국가 등록 문화재(493호)가 됐다. 특이한 점은 실제 선수들이 경기에서 들어 올린 대형 우승컵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시아축구연맹은 1회 대회를 비롯해 초창기 우승국에게 우승컵을 주지 않았다. 대신 은(銀)으로 제작한 소형 우승컵을 만들어 선수들에게 나눠줬다. 이 우승컵이 문화재로 지정돼 현재 대한체육회 한국체육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초대 챔피언에 등극한 한국은 제2회 아시안컵을 개최하기 위해 서울 효창운동장을 지었다. 1959년 6월 대회 유치가 확정되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효창공원에 축구경기장을 지으라고 지시했다. 대회 개최 직전인 1960년 10월12일 효창운동장이 완공됐지만 4·19혁명으로 하야한 이 대통령은 개장 기념 경평 OB전에 참석하지 못했다.

[인천공항=뉴시스] 홍효식 기자 = 카타르 아시안컵에 출전하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2024.01.02. yesphoto@newsis.com
국내 첫 아시안컵은 4대 윤보선 대통령의 개막 선언으로 열렸다. 본선 참가국은 1차 대회와 같은 한국과 이스라엘, 대만, 베트남 등 4개국이었다. 한국은 '드리블의 마술사'로 불렸던 조윤옥(4골)과 '강철 심장'으로 불린 우상권(2골)의 활약 속에 3전 전승으로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2만 명을 수용하는 효창운동장에는 한국과 베트남 간 개막전을 보기 위해 10만여 명이 몰렸다. 관중석에서 밀려난 관중들이 운동장까지 내려와 관전하는 가운데 한국은 베트남을 5-1로 대파했다. 2차전에서는 이스라엘을 3-0으로 이겼고 3차전에서는 대만을 1-0으로 꺾었다.

조윤옥은 베트남과의 1차전, 이스라엘과의 2차전에서 2골씩을 넣어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1960년대 아시아 최고 공격수였던 최정민과 수비수 김홍복은 2회 연속 우승을 경험했다.

2번째 우승 이후 유명한 '가짜 금메달의 저주' 사건이 발생했다. 대한축구협회는 2회 아시안컵 우승 후 아시아축구연맹에서 받은 지원 비용으로 도금 금메달을 만들어 선수 23명에게 나눠줬다. 적은 제작비 탓에 메달에 씌운 금은 금새 벗겨져 나갔다. 중간에 누가 금값을 빼돌린 것이라는 소문이 났을 정도였다. 이에 최정민 등이 나서 항의했고 결국 선수 전원이 메달을 반납했다.

선수들을 분노케 한 이 사건 이후 한국 축구는 64년 동안 아시안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준우승은 4번(1972년, 1980년, 1988년, 2015년), 3등도 4번(1964년, 2000년, 2007년, 2011년) 했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시드니(호주)=뉴시스】고범준 기자 = 31일(현지시각) 오후 호주 시드니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2015 호주 아시안컵 대한민국과 호주의 결승전 경기에서 호주가 2-1로 승리를 거둔 가운데 제디낙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2015.01.31. bjko@newsis.com
3회 대회였던 1964년 대회(이스라엘)에서는 도쿄올림픽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2진급 선수들을 내보낸 끝에 3위에 그쳐 대회 3연패에 실패했다. 1968년 대회(이란)에서는 예선에서 일본과 대만에 져 아예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차범근과 이회택, 김호, 김호곤 등 스타들을 총출동시킨 1972년 대회(태국)에서는 1960년 이후 처음으로 결승전에 올랐지만 이란에 1-2로 져 준우승에 그쳤다. 후반 19분 박이천의 득점으로 승부를 연장전까지 끌고 갔지만 연장 후반에서 칼라니에 실점했다.

1976년 대회(이란)를 앞두고는 상비군을 구성한 뒤 최종 명단을 추리는 등 신경을 썼지만 예선에서 말레이시아, 태국에 패하면서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1980년 대회(쿠웨이트)에서는 최순호의 득점포를 앞세웠지만 결승전에서 개최국 쿠웨이트에 3골을 내주며 0-3으로 완패했다.

1984년 대회(싱가포르)에서는 조별리그에서 2무2패에 그쳐 4강에 오르지 못했다.

【서울=뉴시스】대한축구협회가 4일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59년 만에 1960년 아시안컵 우승 금메달 전달식을 가졌다. 왼쪽부터 고 김홍복 선생의 아들 김원식, 고 최정민 선생의 딸 최혜정, 홍명보 축구협회 전무이사, 고 손명섭 선생의 딸 손신정, 고 조윤옥 선생의 아들 조준헌 축구협회 인사총무팀장. (사진 = 대한축구협회 제공)
1988년 대회(사우디아라비아)에는 이태호와 정해원, 김주성, 황선홍, 변병주 등 스타들이 출전했다. 결승전까지 올랐지만 개최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연장 120분 혈투를 벌인 뒤 승부차기에 나섰지만 조민국과 조윤환의 실축으로 졌다.

1992년 대회(일본)에서는 지역예선 상대국인 태국,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등을 얕보며 실업 선발팀을 내보냈다가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1996년 대회(아랍에미리트)에는 김병지, 홍명보, 하석주, 고정운, 김도훈, 황선홍 등 호화 멤버가 출전했지만 8강전에서 이란에 2-6으로 참패했다. 이란 골잡이 알리 다에이에 후반에만 4골을 내주며 패했고 그 충격으로 대표팀 사령탑이었던 박종환 감독이 경질됐다.

레바논에서 열린 2000년 대회에는 박지성, 하석주, 이영표, 윤정환, 유상철 등 월드컵 4강을 이끈 선수들이 나섰지만 사우디와 4강전에서 알 메샬에게 2골을 내줘 1-2로 졌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진출 후 나섰던 2004년 대회(중국)에는 박지성, 이영표, 김남일, 안정환, 최진철, 차두리, 설기현 등이 총출동했지만 8강전에서 다시 만난 이란에게 3-4로 졌다. 이 경기에서 이란 알리 카리미에는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아부다비(아랍에미리트)=뉴시스】김진아 기자 = 25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자예드 스포츠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AFC 아시안컵 8강전 한국과 카타르의 경기, 1:0으로 패한 한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2019.01.26.  bluesoda@newsis.com
동남아 4개국에서 열린 2007년 대회에서 바레인에 지는 등 힘겹게 조별리그를 통과한 한국은 이란과 8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했지만 4강에서 이라크와 승부차기 끝에 3-4로 패했다.

박지성과 이영표의 은퇴 무대였던 2011년 카타르 대회에서 한국은 기성용, 손흥민, 이청용 등 젊은 피를 수혈해 역대 최강 전력을 자랑했지만 3위에 그쳤다. 4강전 연장 후반 2-2를 만드는 황재원의 극적인 동점골로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지만 구자철과 이용래, 홍정호가 모두 실축해 패했다.

호주에서 열린 2015년 대회에서는 조별리그부터 4강전까지 무실점 전승 행진을 벌였지만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지휘 하에 결승에 올랐지만 개최국이자 직전 대회 준우승팀인 호주에 연장전 끝에 패했다. 후반 추가 시간 손흥민이 극적인 동점골을 넣어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지만 상대 제임스 트로이시에 결승골을 내줬다.

아시안컵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는 일이 거듭되자 축구계는 심각성을 깨닫고 가짜 금메달의 저주를 푸는 작업에 착수했다. 축구 원로들은 1960년 아시안컵 우승 금메달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대한축구협회는 2014년에 금메달 23개를 다시 만들었다. 당시 연락이 닿았던 6명에게만 메달이 전달됐고 나머지는 금고에 보관됐다.

2019년 대회를 앞두고 나머지 메달을 전달하는 행사가 열렸다. 대한축구협회는 2019년 1월4일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1960년 아시안컵 우승 주역인 최정민의 딸 최혜정씨와 김홍복의 딸 김화순 대한농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 조윤옥의 아들 조준헌 축구협회 인사총무팀장 등을 초청해 금메달을 전달했다.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2023 AFC 아시안컵에 출전하는 축구국가대표팀 이강인이 5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파크하얏트 아부다비 호텔 앤 빌라스에 도착하고 있다.(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2024.01.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그렇게 나선 2019년 대회(아랍에미리트)에서도 우승은 달성하지 못했다.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당시 파울루 벤투 감독의 신임을 받던 남태희가 십자인대를 다쳐 낙마했고 이재성도 조별리그 1차전에서 부상을 입었다. 중원의 핵인 기성용마저 허벅지를 다쳐 대회 도중 대표팀을 떠났다. 프리미어리그를 치르던 중 합류해 지쳐 있던 손흥민도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8강전에서 득점 기회를 살리지 못하다 후반 33분 압델 아지즈 하팀에게 왼발 중거리포를 허용해 0-1로 패했다.

가짜 금메달의 저주를 풀기 위한 마지막 열쇠 하나가 모자랐을까. 2019년 아시안컵이 끝난 뒤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저주를 풀 선수가 등장했다.

스페인 라리가에서 성장한 이강인이 이 대회에서 한국을 역대 최고 성적인 준우승까지 이끌며 한국 남자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골든볼(최우수선수상)을 따낸 것이다.

이후 이강인은 유럽 언론이 선정하는 '2019 골든보이 어워드' 후보에 포함됐다. 아시아 선수로는 유일하게 20인 최종 후보까지 포함됐지만 이강인은 유럽 주요 언론사 취재진의 마지막 투표에서 득표에 실패했다. 골든보이 상은 포르투갈 신예 주앙 펠릭스에 돌아갔다.

골든보이 상을 받지 못했지만 이강인의 별명은 골든보이가 됐다. 이후 활약도 골든보이다웠다. 지난해 A대표팀에 발탁돼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에 기여했고 올해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한국의 대회 3연패에 일조했다. 지난해 프랑스 명문 파리생제르맹(PSG)에 입단한 이강인은 그해 10월 튀니지전에서 A매치 데뷔골까지 넣었다.

이강인은 정확한 왼발킥을 비롯해 패스, 탈압박, 드리블 등에서 탁월한 기량을 선보이며 손흥민의 대를 이을 대표팀 에이스로 급성장 중이다.

이번 카타르 아시안컵에서도 이강인은 팀 주축으로 중용될 전망이다. 한국 축구가 가짜 금메달의 저주를 풀고 64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을 달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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