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특정 다수 대상, 이유없는 '이상동기범죄'
경찰, 치안 중심 조직 개편…검찰 '구속 수사'
처벌 강화하는 '엄벌주의'가 근본 대책 될까
경찰특공대원이 소총과 삼단봉으로 무장하고 도심을 순찰하는 '가시적 위력 순찰'은 여름 내내 이어졌다. 경찰청은 8월4일부터 10월3일까지 두 달간 진행된 특별치안활동 기간 동안 연인원 74만명이 넘는 경찰을 투입했다.
30일 뉴시스 취재에 따르면 경찰대학 부설 치안정책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치안전망 2024'에서 올해 10대 치안 이슈 중 첫 번째로 이상동기범죄, 일명 '묻지마 범죄'(이상동기 범죄)를 선정했다.
◆'토막살인'에 '흉기난동'까지…이유가 없다
지난 5월 부산에서는 범죄 경력이 없는 여성 정유정(23)이 "살인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이유로 온라인 과외앱을 통해 처음 만난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토막 낸 시체를 유기해 버린 정유정은 경찰 조사에서 "평소 고유정 살인사건 등을 보면서 직접 사람을 살해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연쇄살인, 토막살인, 시신 없는 살인사건 등을 검색하며 방법을 학습했다"고 진술했다.
지난 7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인근에서는 한 남성이 길을 가던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이 사건으로 20대 남성 한 명이 숨지고 30대 남성 3명이 다쳤다. 검찰은 피의자 조선(33)이 현실 불만과 좌절 상태에 있었으며, 또래 남성들에 대한 열등감을 분노로 표출한 것이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8월에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에 있는 쇼핑몰에서 최원종(22)이 모닝 차량을 몰고 돌진해 행인을 덮친 후 칼을 휘둘러 60대 여성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 당했다. 그는 지난 2020년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았는데, 이후 최근 3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달 KTX 광명역에서도 50대 남성이 30대 여성을 폭행하고 이를 말리는 30대 남성에게 철제 공구를 휘둘렀다. 이처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마구잡이로 흉기를 휘두르는 범행이 이어지고, 모방범죄 효과로 온라인상에 살인 예고 글까지 확산되자 시민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활기를 찾은 거리는 두려움으로 얼어붙었다. 길 가던 행인이 언제 살인마로 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람들은 지하철과 번화가를 피하고 호신용품을 사들였다.
경찰은 일련의 사태를 계기로 현장 치안 중심의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행정인력을 감축해 '기동순찰대'와 '형사기동대 등 치안현장에 재배치하는 것이 골자다. 검찰은 살인 예고글 작성자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세우고 살인예비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했다.
◆정부 '가석방 없는 종신형' 등 대책 발표
'치안전망 2024'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발생한 이상동기 범죄는 23건으로 신림역·서현역·광명역 흉기 난동 사건이 모두 포함됐다. 범행 장소는 노상이 20건으로 가장 많았고 피의자 성별은 남성이 18명으로 대다수였다.
정부는 부랴부랴 정책 발표에 나섰다. 법무부는 지난 8월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중증 정신질환자 사법입원제 검토 ▲살인예고·공공장소 흉기소지 처벌 규정 신설 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현재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아도 20년을 복역하면 가석방되는 '상대적 종신형'만 존재한다. 여기에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 즉 '절대적 종신형'을 신설하겠단 것이다.
서현역 사건 피의자 최원종이 과거 정신병력이 있는 점이 알려지며 '강제 입원' 필요성이 대두됐다. 법무부는 치료를 거부하는 중증 정신질환자를 사법기관이 강제 입원시킬 수 있도록 하는 '사법입원제' 검토라는 강수를 뒀다.
다만 2016년 헌법재판소가 본인 동의 없는 정신병원 강제입원을 위헌으로 판결한 만큼 시대 역행이란 비판이 제기된 상태다.
법무부는 지금까지 경범죄로 취급됐던 불특정 다수 대상의 살인예고글과 공공장소 흉기 소지도 강도 높게 처벌하겠다며 법 개정에 착수했다. 모두 사회로부터의 격리와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한 대책들이다.
◆처벌 강화하는 '엄벌주의'로 해결될까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범죄를 저질렀을 때 엄벌주의 기조로 처벌하는 건 쉽게 할 수 있지만 사회적 고립 문제는 계층 양극화, 청년 문제와 긴밀히 연결돼 있어 손쉬운 대응책이 나오기 어렵다"며 "중장기적으로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성훈 경찰대 교수도 지난 8일 관련 학술대회에서 은둔형 외톨이와 실직자·파산자 등이 범죄 고위험군에 해당한다며 "전반적인 복지체계 확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4년 대검찰청의 묻지마 범죄 집계 사례를 보면, 가해자들은 대부분 경제적 빈곤·사회적 소외계층, 피해망상 등 정신질환자, 상습 폭력전과자였다.
<풍요중독사회>의 저자 김태형 사회심리학자는 한국을 풍요롭지만 불화하는 '풍요-불화 사회'로 규정하며 사람들이 더 높은 위계로 가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분노 수준이 높아졌다고 분석한다. 분노 수준이 높은 사회는 정신질환과 범죄가 증가하는 특징을 보인단 것이다.
작가는 "과거에는 대부분 생계형 범죄였다는 오늘날에는 주로 분노형 범죄"라며 "존중 불안이 분노 수준을 높이고, 분노가 상호 공격과 범죄를 낳으며 다시 불안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청년들의 정신 건강 관리에 착수했다. 지난 10월 당정은 '청년 복지 5대 과제'를 발표하며 고립·은둔청년 52만명(추산) 지원을 위해 청년미래센터(가칭)를 설립하는 계획안을 발표했다. 은둔형 외톨이와 관련한 첫 공식 대책이다.
지난 5일에는 보건복지부가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을 발표하며 청년을 대상으로 정신건강검진을 2년마다 실시하는 방안을 내놨다. 사법입원제도 10대 과제 중 5번째로 포함시켜 계속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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