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내년도 등록금 인상률 법정 상한선 공고
제도 도입 이래 역대 최고치인 5.64%로 결정
국가장학금 규제만 갖고 인상 막기는 역부족
"고정비가 95%"…인상 틀어막기도 한계 도달
단순 계산하면 올리는 게 이익일 수 있지만
신입생 못 받고, 교육부 눈치 보랴 '전전긍긍'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대학들이 고물가 속에 내년 학부 등록금을 법적으로는 5.64%까지 올릴 수 있게 됐지만 치열한 '눈치게임'이 예상된다.
교육부가 국가장학금 예산을 증액했지만 등록금 인상으로 얻는 수익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학생 모집난과 교육부의 동결 압박 등으로 인상을 마냥 강행하기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등록금 최대 인상 시 수익>국가장학금 Ⅱ유형 예산
27일 대학가와 당국 등에 따르면, 교육부가 전날 공고한 내년도 대학 등록금 인상률 법정 상한선은 5.64%다. 지난해 4.05%보다 상승한 것은 물론 제도가 처음 도입된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로 인해 등록금 동결을 유도해 온 국가장학금 규제만으로는 대학들의 인상 시도를 막는 데 한계가 왔다는 분석이 많다.
한국사학진흥재단에 따르면 사립 일반대 190개교의 지난해 결산 기준 등록금 수입액은 총 9조8155억원이다. 여기에 내년도 등록금 상한선(5.64%)을 곱하면 5536억원이 나온다. 교육부의 내년도 '국가장학금 Ⅱ유형' 예산은 총 3500억원이다.
대학마다 여건이 달라 이런 상황을 모든 대학에 단순 적용하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정부의 노력이 현실적으로는 미흡한 수준이라는 점은 충분히 지적할 만하다는 것이 다수 대학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교육부는 국가장학금 Ⅱ유형 예산 뿐만 아니라 내년도 일반재정지원인 대학혁신지원사업의 예산을 795억원 증액하고 지방대 활성화, 국립대학 육성사업 등의 예산도 각각 증액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한 사립대 총장은 "(대학 재정 지원을 위한)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는 2025년을 끝으로 일몰(기한만료 폐기)될 예정"이라며 "올해 예산이 증액됐다고 해서 내년에 예산이 더 확보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점도 고민거리"라고 했다.
교육부는 2011년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 투쟁에 밀려 현재와 같은 등록금 동결 '이중규제'를 마련했다.
첫째가 고등교육법상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물가상승률 평균값의 1.5배로 정해지는 등록금 인상률 법정 상한선이다. 상한선에도 불구하고 등록금 동결을 이끌어낸 규제가 둘째 '국가장학금 Ⅱ유형' 사업이다.
국가장학금 사업은 대학생의 소득에 연계해 학생에게 직접 지원하는 'Ⅰ유형'과 대학의 학자금 부담 경감 노력에 연계해 국고를 대학에 지원하는 'Ⅱ유형'으로 나뉜다. 등록금을 올리면 Ⅱ유형 지원에서 배제된다.
이런 규제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올해부터다. 등록금 상한선(4.05%)이 2013년(4.65%) 이후 처음 4%대를 넘기면서다.
지난 1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총회 당일 이해우 부산 동아대 총장은 취재진과 만나 "학생들이 등록금 올리더라도 화장실 좀 고쳐달라고 하더라"고 털어놨었다. 동아대는 올해 학부 등록금 3.95%를 인상한 바 있다.
이 총장은 당시 "(등록금 인상으로) 50억원 정도 여유자금이 생겨 20억원 정도인 국가장학금Ⅱ 재원을 어떻게든 마련해 학생들이 손해를 안 보게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인건비와 장학금 등 고정지출만 한 해 예산의 95%라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이유도 들었다.
대학들이 등록금 동결 규제 완화를 요구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올해부터 국가장학금을 포기해도 등록금 인상으로 결손을 메꿀 수 있다는 선택지가 열리게 된 것이다.
다만 대학들이 무턱대고 등록금을 올리기에는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다. 대학마다 여건이 달라 실질적인 손익계산서를 두드려봐야 할 필요가 있다.
먼저 전액 장학금을 주고도 신입생을 다 채우지 못하는 지방 사립대 입장에서 등록금 인상은 언감생심(焉敢生心, 엄두도 못 낸다)이라는 평가가 많다. 한 사립대 총장은 "대다수의 대학, 특히 지방대는 (등록금을) 올리기 힘들 것"이라며 "학령인구 감소로 학생 모집이 힘든 상황에서 등록금까지 올리면 경쟁력이 있을 지 걱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올해 등록금을 인상한 일반대는 17개교였다. 지난해 6개교와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등록금을 올린 일반대 중 절반에 가까운 8개교가 교육대학(교대)이었다.
일각에서는 교대만의 특수한 여건으로 등록금 인상이 보다 쉬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가장학금 Ⅱ유형 수혜 인원이 많지 않고, 그만큼 등록금 인상에 따른 재정 결손 부담이 크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학생에게 직접 지원하는 국가장학금 Ⅰ유형 연간 최대 지원액의 최소치는 350만원이다.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학생들 중 소득·재산수준이 가장 나은 '학자금 지원 8구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올해 교대 평균 등록금은 이보다 적은 341만원 수준이다. 등록금 지원이 필요하면 Ⅰ유형 사업으로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올해 초 등록금을 올렸던 한 교대 총장은 "당시 계산해보니 국가장학금 Ⅱ유형을 신청한 학생도 거의 없었다"며 "등록금을 인상해서 (장학금 수혜에) 손해를 본 학생들이 없었다"고 전했다.
배제하기 어려운 변수 중 하나가 교육부의 압박이다. 등록금 인상이 '눈치게임'이라 불리는 이유다.
교육부는 전날 오석환 차관 명의로 "고물가, 고금리 등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해 각 대학에서 등록금 동결에 적극 동참해 달라"는 공개 메세지를 냈다. 실무진들도 총장 및 기획처장 협의체 등을 통해 대학들을 설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학 입장에서도 교육부와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일은 가급적 피하고 싶은 일이다. 사학진흥재단의 '2022 사립대학재정통계연보'를 보면, 2021년 결산 기준 전체 사립대의 총 수입 중 국고 보조금은 17.2%에 달한다.
다른 국립대 총장은 "교육부가 매우 강력하게 등록금을 올리면 안 된다(요청하고 있다)"며 "현실적으로 지난해보다 올리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한 사립대 총장은 "계산기를 두드려 봐서 국가장학금을 받는 것보다 안 받는 게 더 유리하다는 판단은 하겠지만 물가가 다 오르는 마당에 대학 등록금까지 올린다는 게 부담이 없을 수는 없다"며 "대학은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라는 사회적 시선을 감안해야 하니 막무가내로 올릴 수도 없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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