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례시행 이후 학생 체벌 줄어…23%→6% '뚝'
학생 인권보호 효능감은 4년 만에 64%→71%
'개성실현' 보장하지만…용모규제 여전히 많아
"학생인권조례 이행력 높이는 방안 강구해야"
조희연 "성급하게 폐지하지 말고 보완 나서야"
24일 교육계에 따르면 서울 학생인권조례 제6조는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규정하면서 학생이 체벌, 따돌림 등 모든 물리적·언어적 폭력을 당하지 않도록 보장하고 있다.
체벌을 당한 학생들은 이 조항에 근거해 학생인권 상담실에 구제 신청을 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사안 조사와 권리 구제 절차가 진행된다. 시교육청 내에 설치된 학생인권옹호관이 사안을 심의한 후 인권 침해가 발생했다고 판단되면 그에 맞는 개선 권고 조치를 내린다.
조례 시행 전에도 학교 내 체벌 금지가 시행령(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 제8항)으로 규정돼 있었지만 직접 체벌만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간접 체벌에 대한 여지는 남겨둬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 체벌이 발생했을 때 관할 교육청이 직접적으로 개입할 법적 근거도 없었다.
조례는 체벌의 구체적 범위를 정하지 않고 교육청 차원의 조치도 가능하게 해 시행령의 맹점을 보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학생들이 인권 침해를 당했을 때 구제 받을 수 있는 전담기구가 조례를 계기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교육계에선 시대 흐름에 따라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진 데다 조례 시행 이후 행정기구를 통한 대응체계가 갖춰지면서 학교 체벌 관행이 많이 사라졌다고 본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2015년과 2019년에 걸쳐 실시한 학생인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내 초·중·고교생 중 학교에 체벌을 한번이라도 경험한 학생의 비율은 22.7%에서 6.1%로 4년 만에 16.6%p 감소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조례가 생기기 이전에는 심한 체벌이 발생하면 개별 학부모가 폭행으로 신고해 처리하는 식이었다"며 "조례 이후로는 사법의 영역이 아닌, 교육적 테두리 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학교 현장에서도 '체벌은 안 된다'는 인식이 쌓이게 됐다"고 했다.
조례 시행 지역 학생들의 인권 인식 수준이 미시행 지역 학생들보다 앞선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 10월 내놓은 ‘학생인권조례의 사후입법영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조례 시행 지역 학생의 인권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미시행 지역 학생보다 높은 데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상향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여기서 말하는 ‘인권 인식 수준’이란 유엔(UN) 아동권리협약 등 인권 관련 협약과 국가인권위원회 등 인권 관련 기관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 정도를 평가해 점수화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 같은 분석 결과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인권에 대한 인식이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조례 시행과 학생인권교육 및 학생인권옹호관 제도 등 학생인권에 대한 다양한 입법수단을 통해 조례라는 규범의 실효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적었다.
조례 시행 이후 학생들의 인권보호 효능감과 학교 참여율도 과거에 비해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시교육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생들이 체감하는 인권보호 효능감은 2015년 64.2%에서 2019년 70.7%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학교 규칙·규정 제·개정 때 학생 의견 반영이 늘었다고 응답한 초·중·고 학생 비율도 67.3%에서 86.5%로 늘었다. 학칙을 만들거나 고칠 때 학생들 의견을 수렴하려는 학교가 이전보다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계 일각에선 인권침해 요소가 짙은 학칙을 운영하는 학교가 여전히 많다고 꼬집는다.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이 두발, 용모와 관련된 규제다.
조례 제12조는 학생이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학교는 학생들 의사에 반해 용모에 대해 규제할 수 없다.
지난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서울 소재 학교들의 학칙과 운영상황을 조사한 결과 31개 학교가 학칙으로 학생의 두발과 복장 등을 과하게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A학교는 교복 위 담요 사용을 제한하고 있었으며 신발과 양말의 색깔과 모양까지 학칙에 정하고 있었다. 일명 '똥머리', 투블럭, 스포츠형 등의 머리 모양도 금지했다.
B학교는 염주, 묵주와 같은 종교적 장신구 착용을 제한하고 외투 안에 반드시 재킷을 입어야 하는 점 등을 학칙에 명시하고 있었다.
인권위는 이들 학교를 포함한 31개교에 "학생 구성원 일체가 획일적인 모양을 해야만 '단정한 용모'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래야만 교육질서가 이뤄진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학칙 개정을 권고했다.
학생들의 두발, 용모를 규제하는 학교는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상당수 존재한다. 인권위가 올해 전국 중·고등학교 540개교를 대상으로 학생 생활규정을 점검한 결과 파마와 염색 등에 제한을 두는 학교는 63%로 조사됐다.
2016년 93%에서 상당 폭 줄긴 했지만, 여전히 10개 학교 중 6개 학교는 완전한 두발 자유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학칙이 학생인권조례보다 우선되는 이유는 조례의 법적 구속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에 반하는 내용의 학칙을 학교가 제정, 개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법제처가 2021년 법령 해석을 내린 사례를 보면 조례는 법령 성격을 지닌다.
조례는 선출 권력인 지방의회를 통해 제정된 것이고 초중등교육법에서 '학교의 장은 법령의 범위에서 학칙을 제정, 개정할 수 있다'고 명시한 만큼, 학교는 학생인권조례의 범위 안에서 학칙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조례에는 학교가 학생의 권리를 침해했을 때 제재를 가하거나 시정 조치를 내린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학교들의 이행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현장에 가져온 긍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 '선언문적 성격에 머무른다'는 비판을 제기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은 인권교육을 강화하는 등 조례의 이행력을 담보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윤경 참교육학부모회장은 "학교들이 조례에서 규정한 인권교육 의무를 지키지 않아 조례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학생들도 많다"며 "조례에 관한 교육을 의무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학생인권 보장 내용을 조례가 아닌 법률로 담아 근거를 강화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학생인권조례가 아닌 '학생인권법'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윤명화 학생인권위원장은 "조례 내용을 학칙에 담지 않으려는 학교 상당수의 논리는 '상위법이 없다'는 것"이라며 "학생인권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조례가 있는 곳은 전국에 6곳밖에 없는데 이 지역 학생들만 인권을 보호 받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며 "어디에서 태어나든 학생들이 균일하게 인권을 보장 받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최교진 세종시교육감은 이날 오전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하는 시·도교육감 9명(전국 17명)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서울(조희연)·인천(도성훈)·울산(천창수)·세종(최교진)·충남(김지철)·경남(박종훈)·전북(서거석) 등 진보 성향이 7명으로 대부분이다.
하지만 진보 성향으로 분류돼 왔던 김대중 전남도교육감은 참여하지 않았고 대신 보수 성향 김광수 제주도교육감과 중도진보 성향 이정선 광주시교육감이 동참했다. 전남은 학생인권조례가 없고 제주와 광주는 있다.
조 교육감은 "학생인권 조례를 성급하게 폐지할 것이 아니라 (지난 10월 시교육청이 낸) 학생인권 조례 개정안에 대한 심사를 시작으로 보완에 나서 달라"고 촉구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oy@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