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된 비닐하우스촌…열악한 환경
"힘들고 어렵지만…우린 없는 사람들"
"바람쐬고 좋잖아"…팥죽으로 나눈 정
[서울=뉴시스]여동준 이승주 기자 = 서울과 경기도 과천의 경계인 남태령역 인근에는 비닐하우스에 주거시설을 갖춘 가구들이 모인 비닐하우스촌이 형성돼있다.
건조한 겨울이 되면 연탄불과 전기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하기 쉽고, 상대적으로 열악한 시설 탓에 수도관 동파에도 취약한 곳이지만 여전히 70여 가구가 모여 옹기종기 살고 있다.
뉴시스는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떨어진 동지였던 지난해 12월22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남태령 전원마을 비닐하우스촌을 찾아 비닐하우스촌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40년 된 동네…열악한 환경
비닐하우스촌 초입에는 농업용 비닐하우스 용도변경(주거, 사무실 등) 행위를 금지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고발 및 이행강제금 부과 등 행정조치 될 수 있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하지만 비닐하우스촌에는 약 70여가구가 터전을 잡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70대에서 90대 사이의 고령층으로, 퇴직하거나 기존 사업 등이 잘 풀리지 않는 등의 이유로 주거비 부담이 적은 이곳으로 유입된 것으로 파악된다.
서초구청은 비닐하우스촌에 대해 "형성된 시기가 오래된 집단 무허가 거주 지역으로 대부분 저소득층 분들이 거주하고 있다"며 "신규 발생 및 기발생 건축물의 개조 행위 위주로 시정명령 및 이행강제금 부과 등을 통해 지도 단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닐하우스촌은 지난 1980년대부터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순자(78) 전원마을주민자치회장은 "많게는 30~40년 동안 거주 중인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수도·전기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았던 동네였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수도·전기 시설은 어느 정도 갖춰졌지만 도시가스 시설은 아직이다.
그마저도 온전히 갖춰진 상황은 아니다. 이 자치회장은 "전깃줄이 정리돼있는 것이 아니고 엉클어져있기 때문에 합선될 수가 있어 염려가 많다"며 "이를 각자 개인이 정리해야 하는 상황인데, 가끔 합산이 돼 불이 나기도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31일 비닐하우스 1개 동을 모두 태운 화재로 주민인 80대 남성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겨울이면 수도관이 동파되는 일도 잦지만 이를 예방하고 관리하는 일은 역시 개인의 몫이다.
도시가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탓에 대부분의 가구가 난방을 위해 연탄을 사용하는 것도 화재 취약성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다.
게다가 도시가스 시설 미비로 대부분의 가정에서 온수가 나오지 않는데, 인근 찜질방에 가서야 제대로 씻을 수 있는 탓에 겨울철이 되면 씻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한다.
◆"힘들고 어렵지만…우린 없는 사람들"
이렇듯 열악한 환경의 비닐하우스촌을 떠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문제였다.
이 자치회장은 "힘들고 어려운 점은 많지만 우리는 없는 사람들이니까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밝힌 한 달 수입은 소득 하위 70%인 노인 1명에게 지급되는 최대 32만3180원의 기초연금과 기초연금 수급자에게 월 30시간을 일하면 지급되는 '공공형 노인일자리' 27만원을 더해 약 60만원 정도이다.
약 20년째 비닐하우스촌에서 거주 중인 김규남(82)씨도 같은 수입을 유지 중이다.
이는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연구원의 '제9차(2021년도) 중고령자 경제생활 및 노후준비 실태' 보고서에서 규정한 고령층 1인 기준 필요한 최소 노후 생활비 월 124만3000원의 절반 수준이다.
개인회생에서 인정하는 1인 최저생계비도 2023년 기준 월 124만6735원이다. 이는 중위소득의 60%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계산된다.
서초구청은 "주거취약계층 임대주택 지원사업에 따라 자격요건이 되면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 신청할 수 있다"며 "구민 복지를 위해 매입임대주택 및 영구임대주택을 신청 가능한 저소득 취약계층에게 수시로 안내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관리비조차 부담으로 다가오는 이들에게 임대주택은 손쉬운 선택지가 아니다.
김씨는 "구청에서 임대주택 이야기를 하지만 관리비가 월 15만원은 나온다고 하던데 그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며 "방도 이곳보다 작은 7~8평 정도 크기라고 하니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자치회장 역시 "보증금을 내고 추가로 관리비 등 돈을 내야 하니까 가기 어렵다"고 전했다.
◆"바람도 쐬고 좋잖아"…팥죽으로 나누는 온기
이웃 간의 정도 이들이 좀처럼 비닐하우스촌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이 자치회장과 취재진이 대화하던 중 한 주민이 그를 '언니'라고 부르며 집을 찾아와 동지 팥죽을 가져다줬다. 이 자치회장은 "뭘 이런 걸 주고 그러냐"면서도 내심 반가운 기색이었다.
비닐하우스촌에 거주한 지 40년 정도 됐다는 최병학(85)씨는 올해 3월까지 서울 송파구에서 구두 수선방을 하다가 무릎 등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가게를 접었다. 서 있는 것뿐만 아니라 앉아있기만 해도 무리가 가 누워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서초구청으로부터 주기적으로 약을 제공받고 있었다.
최씨 역시 임대주택으로 이사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거기(임대주택) 가면 돈이 들어가는 게 있지 않냐"며 비용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다만 "그런 곳 사는 것보다는 여기가 살기 편하다"며 "비용 부담이 없더라도 그곳에 가면 갑갑해서 살겠냐. 여기 있으면 다리가 아파도 절뚝이면서 바람도 쐬고 좋지 않냐"고 말했다.
이어 "아파트에 가서 살면 놀기 위해 경로당까지 나가야 하는데 여기는 그게 아니지 않냐. 바로 앞에 나가면 되니까"라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yeodj@newsis.com, heyjud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