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당신의 영혼까지 알게 되면 그때 눈동자를 그릴게요."(뮤지컬 모딜리아니 중) "날 바라보는 수만 개의 눈동자, 수만 개의 거울, 그 안에 비친 수만 개의 나, 모두 날 바라봐."(뮤지컬 에곤실레 중)
화가 시리즈 뮤지컬 '모딜리아니'와 '에곤 실레'가 지난 9일 두번째 시즌의 막을 올렸다. 눈동자가 없는 그림을 그린 화가 모딜리아니와 100여개의 자화상을 남긴 에곤 실레를 소재로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는 연작 뮤지컬이다.
'모딜리아니'는 자신의 그림을 두고 쏟아지는 비평 속에서 힘겨워하는 모딜리아니의 짧은 생애를 그린다. 생전 자신의 예술을 인정받지 못한 모딜리아니의 예술적 고뇌와 이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자신의 그림에 담긴 무의식 속 영혼을 알아챈 연인 잔과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에곤 실레'는 젊은 시절 큰 성공을 거두며 클림프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하지만, 갑작스러운 스페인 독감으로 28세에 생을 마감한 작가의 자화상 비하인드를 풀어낸다. 1918년 새 시대를 여는 빈 분리파 전시회 중앙전시실에 걸린 에곤 실레의 자화상은 화제의 중심이 된다. 작품은 그의 삶과 예술적 동료이자 연인인 발리에 관해 다룬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배우가 1인2역으로 변신, 서로 다른 이야기의 공연을 이끄는 것이 이 작품의 묘미다. 공연은 각각 60분이다. 무대의 삼면을 LED로 채워 모딜리아니와 에곤 실레, 피카소, 구스타프 클림트의 명화를 미디어아트로 볼 수 있다.
정찬수 연출은 14일 서울 종로구 서경대 공연예술센터 SCON 2관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둘 다 짧은 생을 살면서도 아카데믹한 화풍에서 벗어나기 힘들던 시절 자신만의 관점을 가진 작품 세계를 구축한 화가들"이라고 설명했다.
"두 인물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기 보다는 관객들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지, 앞으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져볼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정 연출은 "60분 안에 화가의 삶과 생각, 살아온 이야기, 작품까지 담아야 해 고민이 많았다"며 "초연 때 어떻게 세계를 구성할 지에 대한 고민과 공부를 많이 했다면 재연 때는 작품의 의미를 곱씹고, 인과관계를 더 촘촘히 연결했다"고 설명했다.
백혜빈 작가는 "처음 이 작품을 제안 받았을 때 눈에 띈 키워드가 '비극'이었고, 본인들도 자신의 삶을 비극이라고 생각할 지 의문이 들었다"며 "이들의 그림을 통해 그 답을 찾아가는 게 화가 시리즈"라고 설명했다.
백 작가는 "그림을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보니 전시회라는 틀을 사용했다"고 소개했다. "모딜리아니의 경우 화상이 전시회를 만들어가는 구성, 에곤 실레는 스페인독감에 걸려 사경을 헤매며 가장 화려했던 전시회를 떠올리는 구성이죠."
"'3분40초', '여름'이라는 키워드가 은유적으로 사용됐다. "보통 가요 하나의 길이가 3분40초 정도잖아요. 모딜리아니가 마지막 남은 시간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림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어요. 28세에 사망한 에곤 실레의 경우 '그의 삶이 여름 그 자체였다'고 은유했죠."
백 작가는 "삶에는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 작품을 통해 마음 속 각자의 정답을 꺼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우리 모두 모딜리아니처럼 재촉하는 시간의 초침을, 에곤 실레처럼 전쟁 같은 시간을 견뎌야 하잖아요."
작곡가 문동혁은 "모딜리아니의 경우 드라마적 요소가 많아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음악이 흐르게 했고, 에곤 실레는 캐릭터가 도드라지고 돋보일 수 있게 에너지 넘치는 곡을 썼다"고 소개했다. "에곤 실레의 경우 데이비드 보위가 많이 연상 됐어요. 그를 상상하며 곡을 썼죠."
'모딜리아니'와 '에곤 실레' 역은 배우 양지원, 김준영, 황민수, 최민우가 출연한다.
초연에 이어 재연에서 다시 활약하는 황민수는 "모딜리아니와 에곤 실레는 너무 다르지만 닮은 부분이 많다"며 "말투부터 모든 것이 다르지만 두 명을 연기하면서 그들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것은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모딜리아니는 몸 상태, 에곤 실레는 결핍을 잘 표현하려고 특히 노력했어요. 1시간 안에 한 사람을 표현하는 거잖아요. 감정적으로 점프하는 부분이 있어요. 한 장면 한 장면에 모든 걸 쏟아내죠."
이번 시즌에 새로 합류한 양지원은 "두 화가는 너무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세상을 바라보고 인간을 바라보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었다"며 "이번 작품 준비하며 인간의 이면, 제 자신을 돌아봤다"고했다. "내 안에 어떤 욕망이 있는 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 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어요. 죽기 전까지 인정받지 못했던 모딜리아니를 연기하며 가수를 준비하고, 뮤지컬 배우가 되기까지 경험했던 복합적 감정들이 떠올랐죠."
최민우는 "두 작품의 매력이 각각 달라 재미있게 연기하고 있다"며 "모딜리아니는 당당하고 싶지만 기가 죽고, 결핍이 생기고, 실레는 어떤 상황에서든 급진적"이라며 "모딜리아니의 경우 노래와 극을 따라가기만 해도 잘 표현할 수 있고, 실레는 열려있는 작품이어서 자유롭고 개척할 포인트가 많다"고 소개했다. "이제 막을 열었고, 앞으로 3개월간 긴 여정을 이어갑니다. 잘 헤쳐갈 수 있게 응원해주세요." 내년 3월10일까지 서울 종로구 SKON 2관에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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