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그렸다'…마뉴엘 솔라노 韓 첫 개인전

기사등록 2023/12/04 15:52:36 최종수정 2023/12/04 17:23:03

HIV 관련 합병증으로 시력 잃어

페레스프로젝트 서울서 내년 1월까지

El otro Disfraz de Jazmín, 2023 Painting - Acrylic on canvas 180 x 150 cm (71 x 59 in) Framed Dimensions: 196 x 166 x 5 cm (60 x 51 x 2 in)(MSO18137) Courtesy Peres Projects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열정은 암흑도 뚫는다.

서울 삼청동 페레스프로젝트 서울에서 한국 첫 개인전을 열고 있는 멕시코 화가 마뉴엘 솔라노(36)의 그림은 알고 보면 놀랍다.

일상의 한 부분을 스냅 사진처럼 밝고 천진난만하게 담아낸 그림은 마법이다. 시력을 잃은 화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10년 전 HIV 관련 합병증으로 눈이 멀었다. 스물여섯 살에 빠진 '암흑 세상'은 화가인 그녀를 절망에 빠지게 했다. 미친듯이 붓질을 휘둘러 파괴적인 화폭을 만들며 좌절했지만, 받아들였다. 그 고통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붓을 쥐는 대신 자신의 두 손을 붓 삼아 오로지 촉감에 의존하며 손끝으로 형상을 찍어냈다.

캔버스를 틀에 매지 않고 벽 위에 바로 펼쳐 놓은 채로 작업한다. 핀이나 압정, 못 등을 꼽은뒤 끈이나 파이프 클리너 같은 철사를 이용해 선을 만들어 적절한 위치에 채색할 수 있도록 영역을 구분 짓는다.

Manuel Solano Big Bird, 2023 Painting - Acrylic on canvas 180 x 150 cm (71 x 59 in) Framed Dimensions: 196 x 166 x 5 cm (60 x 51 x 2 in) (MSO18138) Courtesy Peres Projects *재판매 및 DB 금지

페레스프로젝트 서울 조은혜 디렉터는 "물론 이렇게 해도 한계가 있기에 종종 애플리케이션과 보조의 도움을 받지만, 대체로 혼자서 작업을 하는 편"이라면서 "이는 솔라노가 모든 것을 사진 찍듯 기억하는 포토그래픽 메모리(Photographic Memory)에 특화된 인물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앞이 보이지 않지만 쉽게 그리고 싶지는 않다"는 솔라무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구체적으로 제가 가진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렇게 나오는 그림은 1년에 10점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Manuel Solano Mi Primer Beso, 2023 Painting - Acrylic on canvas 181 x 221 cm (71 x 87 in) (MSO18141) Courtesy Peres Projects *재판매 및 DB 금지

고통과 절망을 뚫고 '회화의 환희'를 느낀 화가는 작업 장르를 넓히고 있다. 비디오,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작품으로 세계 유수의 미술관 및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주목받고 있다. 최근 작품은 뉴욕 솔로몬 구겐하임미술관에 영구 소장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의 대부분은 솔라노의 신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1990년도의 아날로그 비디오 감성을 그대로 담은 작가의 어린시절 단편을 모아 제작한 영상들도 함께 공개한다.

그림은 '긍정의 빛'이 스며있다. 초상화와 같은 자서전적 작품들은 언뜻 연약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친근감이 느껴진다. 솔라노는 “좋은 기억을 떠올리려고 부단히 노력한다”며 “관람객들이 제 그림을 보고 저마다 자신의 일부를 보거나 자기 모습을 떠올렸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전시는 2024년 1월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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