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게 손가락은 남성 혐오" VS "집단적 착각의 페미니즘 혐오몰이"
집게 손이 왜 나와?…게임 전수조사…외주 제작사 대표 '의도' 인정
노동계도 갈등…민주노총 VS 넥슨노조 VS IT노조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이념적 갈등이 게임 업계에 파고들며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메갈리아' '일간베스트' 등 특정 이념을 가진 커뮤니티에서 주로 사용하던 표현이 잊혀질 만하면 게임 콘텐츠에서 발견되는 악순환이 사회적 갈등에 불을 지피고 있는 것이다.
최근엔 다수의 게임 홍보 영상에서 특정 여성단체가 남성의 신체 일부를 비하할 때 표현하는 '집게 손가락'이 다수 숨겨져 있다는 논란에 게임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집게 손가락' 논란을 두고 '의도하지 않은 게임 영상 속 한 장면일 뿐 억지 논란'이라는 주장과 '남성 혐오를 목적으로 몰래 집어넣은 것'이라는 주장이 충돌한다.
게임사들은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집게 손가락'으로 의심되는 게임 영상물을 전수 조사하고 삭제 조치하고 있다. 반대로 여성단체들은 이런 게임 업계의 조치가 "게임 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라며 반발한다.
문제의 장면은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뿌리가 만든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게임 홍보 영상에 등장한다. 얼핏 보면 알 수 없지만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쪼개보면 여성 캐릭터가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모아 집게 모양을 만든 것 같은 장면이 나온다.
이런 장면은 '메이플스토리' 뿐만 아니라 '던전앤파이터'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블루아카이브' '이터널리턴' '에픽세븐' '브라운더스트2' 등 다수의 게임 영상에서 발견돼 의혹을 키웠다. 하나가 아닌 다수가 발견됐기 때문에 '오인'으로 볼 수 없다는 것. 스튜디오 뿌리에 영상 제작을 맡겼던 게임사들은 서둘러 해당 영상을 비공개 처리하고, 사과했다.
특히 문제의 장면을 남성 혐오라 주장하는 이들은 스튜디오 뿌리에서 특정 작화를 담당했던 스태프가 개인 SNS에 '남자 눈에 거슬리는 말 좀 했다고 SNS 계정 막혀서 몸 사리고 다닌 적은 있어도 페미 그만둔 적은 없다 ㅇㅇ 은근슬쩍 스리슬쩍 페미 계속해줄게' 등의 페미니즘 관련 발언이나 리트윗을 게재했던 것을 근거로 삼고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스튜디오 '뿌리' 측에서도 지난달 26일 공식 입장을 통해 해명했다. 뿌리 측은 먼저 "많은 분께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논란이 된 집게 손가락에 대해선 "동작과 동작 사이에 이어지는 것으로 들어간 것이지 의도하고 넣은 동작은 절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이 사과문이 오히려 논란을 키우자 다음날 뿌리의 장선영 대표가 직접 2차 사과문을 올렸다. 장 대표는 "문제가 지적된 건들에 대해 의도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다고 말씀해 주신 부분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면서 "책임을 통감한다. 문제가 됐던 해당 스태프는 퇴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사과문은 돌연 삭제됐다.
◆민주노총 "넥슨, 억지 논란"…넥슨노조 "손가락 의미도 모르면서"…IT노조 "넥슨 반성해야"
그리고 다음 날 민주노총 총연맹이 공동주최(여성민우회 주관)한 기자회견이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진행됐다. '넥슨은 일부 이용자의 집단적 착각에 굴복한 집게 손 억지논란을 멈춰라: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를 규탄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넥슨 노조가 반발하면서 노-노 갈등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배수찬 넥슨 지회장은 입장문을 내고 "민주노총 총연맹은 우리와 어떠한 논의도, 사안에 대한 이해도 없이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심지어 손가락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였다"며 "우리에게 민주노총이 정말 필요한지에 대해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이번엔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IT노조)가 넥슨 노조를 저격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IT 노조는 1일 '있지도 않은 자라를 핑계로 솥뚜껑만 내다버리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이번 논란을 "아무런 문제도 저지르지 않는 일개의 외주 업체를 게임 업계 차원에서 희생양을 삼은 사태"라고 규정했다.
특히 IT 노조는 "넥슨은 가장 먼저, 가장 깊게 반성해야 한다. 참담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게임업계의 무책임과 무분별을 처음 드러낸 곳이 바로 넥슨이었기 때문"이라며 "페미니즘 지지 견해를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게임 성우를 교체한 2016년의 '넥슨 성우 교체사건'은 페미니즘을 표적삼은 사상검증의 시작이었다"고 비판했다.
'집게 손가락' 논란은 정치권으로 번졌다. '게임 업계의 사상 검열'이라 비판하는 입장과 '사상의 문제를 떠나 민간 기업에 피해를 입힌 사건'이라는 주장으로 갈린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개인이 페미니즘 활동하는 것 그 자체를 누가 억압할 수 있겠냐. 오히려 우리 사회 주류 제도권에선 환영받는 일"이라면서도 "문제는 이를 민간 영역의 일터로 갖고 들어왔을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을 하러 왔으면 일을 해야지, 왜 업장에서 사회 운동을 하는가"라면서 비판했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번 '뿌리' 사태는 진영과 사상의 문제가 아니다. 하청업체 직원이 원청업체에 피해가 갈만한 행동을 독단적으로 했다"면서 "이 문제의 악질적인 점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이라는 데 있다"고 꼬집었다.
반면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게임 업계 페미니즘 사상 검열과 억지 남혐 마녀사냥이 도를 넘고 있다"며 "넥슨은 부당한 남혐 몰이에 사과하는 대신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 조장을 단호히 제지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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