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여일 동안 '3개 모자' 쓰고 활약
막판 10일 이코노미 타며 지구 반바퀴
발목 부상에도 3개월간 '목발 투혼'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포함한 주요 기업인들은 막판까지 프랑스 파리에 머물며 분투했지만 28일(현지시간) 아쉬운 결과에 고개를 떨구었다.
◆이코노미석 타며 10일간 '지구 반바퀴'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은 윤석열 대통령 프랑스 방문 전부터 영국과 프랑스를 찾아 2030 엑스포 부산 유치를 호소하며 막판 총력전을 펼쳤다. 하지만 사우디 돈의 벽을 넘지 못했다.
특히 최태원 회장은 '메종 드 부산(부산의 집)'이라는 거주 공간을 지난달부터 파리에 마련하고, 이를 거점으로 유치 활동을 벌이며 분투했지만 유치에 실패했다.
최 회장은 최종 투표를 앞둔 이달 초부터 세계박람회기구 회원국들이 몰려있는 중남미, 유럽의 7개국을 자의반 타의반 장거리 비행에 나섰다. 비행거리만 2만2000㎞로 지구 반바퀴에 이르는 강행군이었다.
최 회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처음 뛰어들었을 때는 승산이 전혀 보이지 않는 불가능한 싸움이었지만, 한국 정부와 여러 기업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한 결과 이제는 어느 누구도 승부를 점칠 수 없을 만큼 바짝 추격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용기 대신 여객기 이코노미석도 마다하지 않았던 최 회장은 "매일 새로운 나라에서 여러 국가 총리와 내각을 만나 한 표라도 더 가져오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이 곳에서 엑스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대한상의 회장에 민간유치위원장까지 '3개 모자' 활약
지난해 6월 2030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한 민간위원회가 공식 출범한 이후 550여일 동안 최 회장은 위원장을 맡아 전 세계를 누비며 고군분투했다.
SK그룹 회장뿐 아니라 대한상의 회장, 엑스포 민간유치위원장 등 '3개의 모자'를 쓴 최 회장은 국내, 아시아뿐 아니라 아프리카, 중남미, 유럽 등 전 세계 곳곳을 다니며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 활동을 지속했다.
특히 올 들어 스위스 다보스포럼을 시작으로 유럽·아시아 등 대륙을 오가며 각국의 대통령, 총리, 대사 등을 만나 지지를 호소했다. 최 회장은 자신이 만든 SK그룹의 대표적인 경영 행사인 '이천포럼' 개막식까지 건너 뛰는 등 부산엑스포 유치에 총력을 다했다.
지난 4월 엑스포 실사단이 방한했을 때는 삼성, SK, 현대차, LG, 포스코 등 주요 기업인들을 모아 환영 오찬을 갖기도 했다. 최 회장은 "험난한 과정이 예상되지만, 한국과 부산은 준비가 되었다"며 실사단에 거듭 강조했다.
올 여름 휴가 역시 반납하고 부산엑스포 홍보 활동에 매진했다. 최 회장은 유럽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를 방문하며 휴식 대신 엑스포 유치 활동에 전념했다.
올 하반기 SK그룹 최대 행사 중 하나인 'CEO 세미나' 역시 엑스포 유치 활동에 나선 경영진 일정을 고려해 파리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SK가 CEO 세미나를 해외에서 진행한 건 2009년 중국 베이징 이후 14년 만이다.
◆발목 부상에도 목발 짚고 '3개월 강행군'
지난 6월 테니스를 치다가 발목 부상을 입은 최 회장은 목발을 짚고서도 종횡무진하는 투혼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응급실에 갈 정도로 큰 부상을 당했지만 그는 직후 부산에서 진행된 제12회 한일 상의 회장단 회의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바야시 켄 일본상의 회장은 호텔 엘리베이터 앞에서 휠체어를 탄 최 회장을 직접 맞았고, 목발을 짚고 걷는 최 회장의 어깨를 감싸며 "천천히, 천천히 가라"고 배려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같은 달 파리에서 열린 부산엑스포 공식 리셉션에도 참가했다. 그는 특히 부산엑스포 로고를 새긴 홍보 패드를 부착한 목발을 행사 내내 짚고 다니며 홍보 효과를 톡톡히 봤다.
7월 제주포럼에서도 환영사를 위해 단상에 목발을 짚고 등장한 그는 "운동하다가 아킬레스건을 다쳤는데 목발을 하고 다니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좀 불쌍해한다"며 "덕분에 동정을 얻어 엑스포 유치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하며 유쾌한 분위기를 끌어냈다.
최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을 모시고 여러 기업인들과 해외출장을 다녔는데 글로벌 정상, 기업인들과 제가 엑스포 로고를 붙인 목발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며 "이걸 들고 다니면 사진을 찍은 것과 더불어 찍은 사람들이 부산엑스포를 지지해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국에서는 'break a leg', 다리가 부러졌다고 하면 숨은 의미가 있는데 행운을 빈다는 것"이라며 "제 다리가 부러졌지만 여러 분들에게 행운을 나눠드릴 수 있기 때문에 부러진 다리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다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그룹 내에서는 부상 회복 속도가 늦어져서 말리는 측근들도 다수 있었지만 엑스포 홍보를 향한 최 회장의 열정을 막지 못했다"며 "자신의 부상조차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는 최 회장이 대단할 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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