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농업 강국' 네덜란드, 대학·기업·지역 '삼각편대' 똘똘 뭉쳐…韓CJ도 협업

기사등록 2023/12/07 14:59:10 최종수정 2023/12/07 16:51:28
[뉴시스=바헤닝언] 구예지 기자=지난달 9일(현지시간) 네덜란드 바헤닝언에 위치한 바헤닝언 대학교에서 벤 기링스가 온실 '엔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바헤닝언=뉴시스]구예지 기자 = "네덜란드는 어떤 방향으로 농업을 이끌어갈 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돼있습니다. 한국에도 필요한 자세입니다."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자동차로 2시간을 달려가면 세계적 '푸드 밸리'로 꼽히는 도시 바헤닝언이 나타난다.

 수도에서 다소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도시 전체가 나무와 농경지로 녹색 풍경을 보이고 있었다.

조용한 도시의 한 가운데에는 바헤닝언 대학교를 중심으로 연구 시설이 밀집해있다.

바헤닝언 지역은 하나의 클러스터로 대학교와 기업, 지역사회가 교류하며 농식품 산업 연구를 주도한다.

그 중심에 있는 바헤닝언 대학교(WUR)는 연구중심 공립 종합대학교다.

2004년 네덜란드 농업성 산하의 농업연구소가 합쳐져 탄생한 대학 및 연구소의 결합체다.

생명과학과 사회과학 분야에서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자 생명과학과 자연자원 분야를 집중 연구하는 연구기관이기도 하다.

유럽생명과학리그(ELLS)의 일원이다. 농학과 식품과학,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바헤닝언=뉴시스] 구예지 기자=지난달 9일(현지시간) 방문한 바헤닝언 대학교의 온실 '엔펙' 모습.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달 9일(현지시간) 바헤닝언 대학교에서 만난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벤 헤얼링스는 "바헤닝언은 2050년에 전 세계 100억 인구에게 맛있고 저렴하며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식품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바헤닝언이 연구할 때 중심으로 삼는 핵심 철학은 '함께 답을 찾는 것'이다.

헤얼링스는 "한 곳에서만 답을 찾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정부·기업·지역사회가 정보를 서로 공유하고 함께 답을 찾아 시너지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일 차원의 해결책은 없고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바헤닝언은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 간의 소통을 강조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학과 시장 지향적인 연구 기관 간의 협력도 성공의 원동력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바헤닝언은 9개의 연구 기관이 있고 다른 연구 기관들과도 협력한다"고 덧붙였다.
[바헤닝언=뉴시스] 구예지 기자=지난달 9일(현지시간) 방문한 네덜란드 바헤닝언에 위치한 바헤닝언 대학교 내 온실 '엔펙'에서 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정부·기업·지역사회라는 세 가지 축은 '엔펙(NPec)'이라고 불리는 투명 온실에 집약돼 있다.

지난달 9일 방문 당시 엔펙에서는 수백 그루의 토마토와 퀴노아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토마토가 좋아하는 빛의 종류, 혹한을 견디는 퀴노아 유전자를 찾아 데이터를 쌓고 기업·지역 농가와 나눈다. 작물의 최적 생장 데이터를 수집해 농업 종사자에게 제공하고, 이들이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업이 바헤닝언 대학교에 협업을 제안하면 공동 연구를 하기도 한다.

대학교 내에 기업별 별도 연구 센터도 있다. 한국 기업으로는 CJ제일제당이 이곳에 연구센터를 가지고 있다.

바헤닝언의 또 다른 장점은 다양한 국적의 연구원들이다.

바헤닝언 대학교는 20개의 학사 프로그램과 37개의 석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석·박사 학생의 45%의 외국인이다. 한국에서도 석사 준비생 7명, 박사 준비생 8명이 바헤닝언 대학교를 찾았다.

헤얼링스는 "바헤닝언 대학교의 학·석사 전공생은 1만3500명, 박사 후보자는 2500명이고, 직원 수는 4000명"이라며 "수익만 해도 4억 6000만 유로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바헤닝언=뉴시스] 구예지 기자=지난달 9일(현지시간) 방문한 바헤닝언 대학교 내 온실 '엔펙'에서 작물의 성장 데이터가 모니터에 표출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이처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농업기술을 연구하고 기업·지역사회와 지식을 나누는 모델은 네덜란드가 농업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네덜란드의 땅 크기는 미국의 240분의 1에 불과하지만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농·축산물을 많이 수출하는 국가다.

네덜란드 무역흑자의 79.3%, GDP의 10%, 고용의 10%가 농·축산업에서 나온다.

세계 다양한 국가에서 바헤닝언 대학교의 성공 사례를 배우려고 한다.

한국도 그중 하나다. 특히 한국농촌진흥청은 바헤닝언 대학교에 연구위원을 파견해 네덜란드의 발전된 농업 기술 상황을 배우려 하고 있다.

지난해 바헤닝언 대학교에 온 정민웅 연구위원은 "한국도 바헤닝언 대학교처럼 작물을 기르는 데이터는 있지만 농가에 정보가 전달되거나 기업과 이를 활용하는 등의 협업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협업과 이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생태학, 경제학적으로 순환하도록 만드는 '순환농업'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연구위원은 "환경 문제가 대두되면서 동물성 단백질을 식물성으로 바꾸는 방법을 연구하거나 지속가능하고 균형잡힌 단백질을 공급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게 주류가 되고 있다"며 "한국은 아직 순환농업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바헤닝언=뉴시스] 구예지 기자=지난달 9일 방문한 네덜란드 바헤닝언 대학교 내 온실 '엔펙'에서 작물을 실어나르는 컨베이어 벨트의 모습. *재판매 및 DB 금지

정 연구위원은 한국도 네덜란드처럼 농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했다.

네덜란드는 고수익 작물에 집중한 시설원예를 주로 한다.

토마토·파프리카·오이·딸기·화훼에 집중해 수출하고 곡물은 프랑스에서, 과일은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에서 수입한다.

선택과 집중이 되기 때문에 연구개발비용 투자 수준 역시 높다.

그는 "한국에도 엔펙처럼 작물이 어떤 환경에서 잘 자라는지를 관찰하는 공간이 있고, 관련 데이터 역시 잘 축적돼 있지만 농가에서 이러한 정보를 쓰기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헤얼링스는 "바헤닝언 대학교가 기업, 지역사회와 손잡고 협업을 시작한지 35년이 됐다"며 "앞으로도 기후위기 등 다양한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농식품업 생태계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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