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마지막 우승이던 1994년 상대 태평양 선수로 현장 지켜
'감독들의 무덤'이던 LG서 부임 첫 시즌 만에 정상 이끌어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1994년 10월23일 인천 숭의야구장.
태평양 돌핀스 염경엽은 팀이 2-3로 끌려가던 한국시리즈(KS) 4차전 9회말 1사 2루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안타 하나면 동점도 노릴 수 있는 상황에서 LG 트윈스 마무리 투수 김용수에 3루 땅볼로 잡혔다. 후속 김성갑 마저 투수 땅볼로 아웃되면서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선수' 염경엽은 그렇게 LG의 통합 우승 현장을 허탈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29년이 지난 2023년, 염경엽은 당시 태평양을 울렸던 LG의 감독으로 한국시리즈 현장을 누렸다. 그리고 마침내 LG의 염원이나 다름없었던 'V3'를 자신의 손으로 일궜다.
LG는 1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쏠 KBO KS' 5차전에서 KT 위즈를 6-4로 눌렀다. 시리즈 전적 4승1패를 만든 LG가 챔피언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염경엽 감독은 LG 더그아웃에서 누구보다 크게 환호했다. 29년 전 자신에게 준우승 아픔을 선사한 LG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숙제로 남겨놓았던 '우승 감독'의 꿈을 이룬 순간이었다.
광주제일고-고려대를 졸업한 염 감독은 내야수 출신으로 태평양과 현대 유니콘스에서 뛰었다. 화려한 선수는 아니었다. KBO리그 10시즌 동안 통산 타율은 0.195에 불과했다.
은퇴 후 프런트로 변신했던 그는 코치로 현장에 복귀해 현대, LG,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등을 거쳤다. 2013시즌을 앞두고는 넥센 감독에 임명됐다. 당시 하위권을 전전하던 넥센을 맡아 부임 2년 차에 KS 준우승을 이끄는 등 지도자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2017~2018시즌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단장을 맡아 현장을 지원한 뒤 2019~2020년 SK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기도 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LG는 제14대 사령탑으로 염 감독을 선임했다.
LG도, 염 감독도 목표는 뚜렷했다. LG는 1994년 이후 닿지 못한 우승을 갈망했다. 선수, 프런트로 수차례 우승을 경험했던 염 감독도 사령탑으로 서지 못한 정상에 큰 갈증을 느꼈다.
염 감독이 부임할 때만 해도 외부에서는 의심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LG는 오랫동안 '감독들의 무덤'으로 남아있었다. 열성팬이 많은 인기 구단임에도, 좀처럼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사령탑의 자리가 늘 불안했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재계약에 성공한 감독이 한 명도 없을 정도다.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옷을 벗은 감독도 수두룩하다.
현대 유니콘스의 왕조 시절을 이끌었던 김재박 감독도, '야신' 김성근 감독도 LG를 정상에 올려놓지 못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전인미답의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일군 '야통' 류중일 감독도 LG에선 우승 반지 없이 물러났다.
그런 LG가 택한 '우승 청부사'가 아직 정상에 선 적 없는 염 감독이란 점은 물음표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
기대와 불안의 시선 속에서 염 감독은 "(계약기간) 3년이 주어졌지만, 2년 안에 뭔가를 해야 한다"며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말대로 부임 첫 해부터 팀을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올 시즌 일찌감치 선두 싸움에 뛰어든 LG는 6월 27일부터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다. 팀 평균자책점(3.67), 타율(0.279)로 투타 모두 최고의 팀을 자랑한 LG는 29년 만에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다.
염 감독은 선수가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면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세리머니를 하는 등 우승을 목표로 하는 여정에서 '원팀'으로 섞여드는 데도 앞장섰다.
KS에서는 과감한 운용으로 '우승 감독'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2차전에서 선발 최원태가 흔들리자 ⅓이닝 만에 교체를 지시, 이후 7명의 불펜 투수를 쏟아 부어 추가점을 내주지 않았다. 그렇게 추격의 발판을 마련한 LG는 8회 박동원의 역전 투런으로 짜릿한 승리를 가져왔다. 사실상 이번 시리즈의 흐름을 바꾼 승리였다.
그렇게 KT의 기세를 꺾은 LG는 챔피언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계속해서 옮겼다. 염경엽 감독이 이끄는 LG는 2023년 KBO리그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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