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희망퇴직 등 2000명 감축…KDN 등 매각해 1조 기대
가정·소상공인 동결…요금인상으로 추가수익 올해 4000억
"원가 낮은 산업용만 인상, '원가주의 원칙' 정면으로 위배"
[세종=뉴시스]임소현 기자 = 경영 위기 사태에 직면한 한국전력공사가 '알짜자산'인 서울 공릉동 인재개발원을 매각하고 2000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비롯해 최대 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정부는 일정 기준 이상의 산업용 전기요금만 인상하기로 결정하면서 한전의 재무구조 개선에 요금 조정은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9일 한국전력에 따르면 한전은 희망퇴직을 실시해 인력 2000명을 감축하고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한전 인재개발원 부지를 팔아 1조원의 자금을 확보하는 등 내용이 담긴 자구책을 내놨다.
자구책에 따르면 한전은 2001년 발전사를 분사한 이래 최대 규모의 조직개편을 단행한다. 본부장 직위 5개 중 2개를 축소하는 등본사 조직 20%를 축소한다. 희망퇴직을 비롯해 인력 효율화를 추진해 약 2000명 감축한다.
공공기관 혁신계획에 따라 지난 1월에 감축한 정원의 초과 인원인 488명을 연말까지 조기에 해소한다. 디지털 서비스 확대와 설비관리 자동화 등으로 오는 2026년까지 700명 수준의 운영인력을 추가로 감축한다. 전력수급기본계획과 분산에너지 특별법 이행, 원전수출 추진 등으로 약 800명이 필요하지만 증원 없이 조직 효율화로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한전은 알짜 매물도 줄줄이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한전의 상징적 자산인 서울 공릉동 인재개발원 부지와 자회사 한전KDN의 지분 20%, 필리핀 칼라타간 지분 전량을 매각해 총 1조원을 창출할 것으로 관측했다.
인재개발원은 대체시설 확보와 부지 용도상향 등으로 부지 내 연구용 원자로 해체, 154kV 지중송전로 이설 등 방안이 마련되는 대로 결정한다. 약 7800원에 매각될 것으로 한전은 예상했다.
전력산업 정보통신기술(ICT)분야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전KDN은 매각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국내 증시에 상장한 뒤 보유 지분 중 20%를 매각한다. 상장 이후 가치를 정확히 추정할 수 없지만 대략 1300억원이 창출될 전망이다.
필리핀 칼라타간 지분도 매각한다. 고정배당금이 확보돼 수익성이 양호하고 매각 제한조건이 적어 투자자 관심이 높은 칼라타간의 태양광사업 보유지분 38% 전량도 매각한다. 한전은 매매가 약 500억원으로 관측했다.
이 가운데 정부는 산업용 중에서도 300㎾h(킬로와트시) 이상의 경우에만 ㎾h 당 평균 10.6원(6.9%) 인상하는 요금 조정방안을 시행하기로 했다.
산업용 고객 44만호 중에서 40만호(99.8%)에 달하는 중소기업이 사용하는 산업용(갑)의 요금은 동결되고, 대용량 고객(0.2%)인 산업용(을)만 평균 ㎾h 당 10.6원 인상된다.
대용량 고객 중에서도 시설규모와 전압별로 인상폭을 차등화했다. 대부분 대기업으로 구성된 산업용(을) 중에서도 3300V~6만6000V인 고압A는 ㎾h당 6.7원, 154kV 이상인 고압B와 345kV 이상인 고압C는 13.5원 인상된다. 이에 따라 산업용(을) 고객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월 평균 431만원으로 예상된다.
강경성 산업부 2차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지난해 4월부터 5차례 요금을 인상했지만 여전히 원가에 못 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최저 수준"이라며 "자체 노력 만으로 적자 구조를 해소하기 어려워 일반 국민과 소상공인, 중소기업 부담은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조정했다"고 말했다.
이번 인상으로 한전은 올해 4000억원, 내년 2조8000억원의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집계된다. 문제는 이번 요금 조정이 한전의 재무구조 완전해소로 이어지기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당초 산업부는 '한전 경영정상화 방안'에서 올해 ㎾h당 51.6원의 인상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이에 대해 강 차관도 "이번 요금 조정으로 한전의 재무구조를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한다"며 "앞으로 재무구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물가 부담은 어떻게 되는지, 글로벌 에너지 가격은 어떻게 되는지 보면서 (추가 인상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전문가 역시 이번 요금조정은 한전 재무구조 개선에 미치는 효과가 미미하다고 지적한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앞으로 발생할 적자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기존 누적적자와 부채 개선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며 "부채나 적자가 줄지 않으면 내년 채권발행 한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결국 또 다시 전기요금 조정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번 전기요금 조정 대상인 산업용 전기가 주택용·농사용·일반용 전기에 비해 원가가 매우 낮은만큼 원가가 높은 주택용 전기요금을 동결한 것이 원가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고압용 전기의 경우 원가가 낮지만 주택용의 경우 원가가 높다"며 "주택용이 이번 요금 조정에서 빠진 것은 아쉽다"고 전했다.
유 교수 역시 "우리나라 전기공급에 있어서 고압으로 보내고 많이 쓰기 때문에 산업용(을) 전력 공급원가는 가장 낮다"며 "가장 원가가 낮은 용도에 대해서만 올리고 원가 높은 다른 용도를 동결하는 것은 '시장주의 원칙', '원가주의 원칙'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요금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전은 낮은 요금수준으로 인한 에너지 다소비·저효율 구조의 개선과 동계 안정적 전력수급을 위해서도 요금조정을 통한 가격신호 기능 회복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마저도 대상을 잘못 선정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 차관은 "이번 조정대상인 산업용(을)의 경우 가정용의 100배 정도로 전기를 많이 쓰는 곳"이라며 "이 대상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커서 부담할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값싼 전기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혜택을 누려왔기 때문에 이번 요금인상도 기업들이 경영 효율, 에너지효율로 극복 가능하리라고 기대하고 희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유 교수는 "이번에 오르는 전기 판매수익 대부분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포스코, LG디스플레이, 현대제철 등 5사 대기업이 부담한다"며 "이들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외국 유명 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만큼 더 이상 효율을 개선하기 어려운 여건"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절약 유도, 효율 개선보다는 기업 부담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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