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세계 최초 '약자 동행' 정책 관련 지수 개발
"첫 술 배부르기 어렵지만 올 예산부터 최대한 반영"
"하락하면? 더 좋다, 곤혹스러워 더 잘하게 될 테니까"
"가족돌봄청년들 같은 친구들에게 더 많은 도움 가야"
오 시장은 "도시 발전과 경쟁력 등 다른 신경 쓸 일이 많기에 나도 때로는 흐트러진다. 정치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다. 스스로를 가다듬기 위해 잘 보이는 곳에 걸어뒀다. 무엇이 옳은가를 떠나서 (약자와의 동행은) 가야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은 다 약자다.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기조 아래 이들과의 동행을 핵심 철학으로 시정을 꾸려가고 있는 오 시장이 탄력을 붙일 또 하나의 주목할만한 정책을 내놨다.
바로 '약자동행지수'다. 시민 생활과 밀접한 영역을 평가·분석해 사회적 위험을 조기 발굴하고, 성과를 스스로 평가해 개발에 활용한다는 것이 이번 정책의 핵심이다. 약자동행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한 의지의 표현으로, 변화를 시민들에게 상세히 보고한다는 의미도 내포됐다.
오 시장은 지난 12일 집무실에서 진행한 뉴시스와 인터뷰에서 "(약자동행지수는) 시장이 되기 전 갑자기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다. '하드웨어한 정책의 경우 대부분 환경영향평가를 하는데 소프트웨어에는 왜 없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척도가 있으면 좀 더 완벽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약자동행지수는 크게 ▲생계·돌봄 ▲주거 ▲의료·건강 ▲교육·문화 ▲안전 ▲사회통합 등 6대 영역으로 나뉜다. 여기에 영역별 5~12개씩 총 50개의 세부지표가 평가에 도입된다. 1년 넘게 분야별 전문가 및 이해관계인 등 200여명이 20회 이상의 논의를 거쳐 탄생시킨 결과물이다.
도시가 자체적으로 추진 중인 정책 성과를 평가해 그 결과를 정책 개발과 예산 편성 등에 실질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약자동행지수가 세계 최초이며, 세부 지표값과 지수는 매년 산출 과정을 거친 후 다음 해 상반기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서울시는 밝혔다.
생계·돌봄 세부지표에는 위기가구 지원율, 안심소득 지원 가구의 일에 대한 만족도, 영유아기 틈새돌봄 제공률 등이 담긴다. 주거 영역에서는 청년들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주거사다리 복원'을 핵심으로 공공임대주택 재고 수, 주거취약계층의 주거환경 개선 규모 등을 점검한다.
아동청소년·청년의 마음건강 지원 규모와 자살고위험군 관리율 등은 의료·건강 영역에서, 가구소득 수준에 따른 교육격차 해소, 교육 소외계층 기회 확대는 교육·문화 영역에서 다룬다. 고립·은둔청년, 독거노인, 교통약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촘촘한 안전망 구축(안전)과 양극화 및 불평등 해소(사회통합)도 들여다본다.
오 시장은 "'약자와의 동행'은 여러 부서로 흩어져서 챙겨야 하는 업무들이 많다. (약자동행지수는) 컨트롤 타워를 통해 정책들을 다 관리한다고 보면 된다"면서 "내가 몇 개가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를 준 적은 없다. 모두 위임했는데 직원들이 1년 가량 씨름하면서 '50개는 돼야 사각지대가 없겠다'고 본 것 같다. 잘 분류를 했더라"고 언급했다.
오 시장이 정책을 정량화하는 지수 개발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또 다른 이유는 연속성이다. 추후 누가 시장이 되든 약자를 위한 정책을 흔들림 없이 지속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나한테는 전임 시장님으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가 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후임 시장이 안 해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더라. 좋은 것은 당연히 이어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떠올린 오 시장은, "올해 발표를 했으니 내가 2~3년은 더 할 수 있다. 이후 (자리를 잡으면) 다음 시장이 오더라도 '약자동행지수를 하지 않겠다'고 쉽게 말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지수 개발이 실제 약자 보호로 이어질지에 대해 오 시장은 "최소한 1년은 지켜보셔야 한다. 지금 그걸 다 입증할 방법은 없다"면서 "다만 정책 집행자 입장에서 보면 스스로 비판의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시가 도출한 계산법이 과연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는 지적에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예로 들었다.
오 시장은 "당시 정부는 집값이 10%, 20% 올랐다고 했는데 사실 거의 1.5배, 2배 오르고 있었다. 피부로 실감하는 가격 상승은 분명 그게 아니었는데 계속 (상승률을) 줄이고 있었다. 이런 식이면 정부의 신뢰가 무너진다는 생각을 다들 했을 것이다. 숫자로 속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만약 직접 개발한 지수가 하락하면 정책이 소홀했음을 자인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오 시장은 이 경우 자칫 큰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해당 정책을 펼치는 것은 그만큼 꼭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오 시장은 "지수가 떨어지거나 50개 중에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야당과 언론이 가만히 있겠나. 담당부서에서 비판 받을 일을 하진 않을 것이다. 적어도 50개 분야는 잘 챙길 것"이라면서 "첫 술에 배부르긴 어렵겠지만, 올해 예산부터 최대한 반영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지수의 하락으로) 민낯이 드러나면 더 좋다. 담당 부서는 곤혹스러워 질 것이고, 그러면 더 잘하지 않겠나"라면서 "시정질문을 하면 나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에 동의할 수 없을 때도 있지만, 더불어민주당 시의원들 질의 중에서도 '정말 필요한 비판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민낯이 드러나는게 뭐가 무섭나. 고쳐서 더 잘하면 된다"고 보탰다.
안심소득과 서울런 등 굵직굵직한 '장단기 프로젝트'를 시행 중인 오 시장은 앞으로 가족돌봄청년 돌보기에 속도를 더할 생각이다.
오 시장은 "더 중점을 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영 케어러'(Young Carer)다. 가족돌봄청년들을 발굴하려고 했는데 몇 백 명에 그쳤다. 몇 천 명일 가능성이 있는데 발굴이 안 된 것이다. 더 진정성 있게, 진심을 갖는다면 더 많이 발굴 될 것이다. 그런 친구들에게는 더 많은 도움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