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개발 도로 확장으로 무분별 설치
도로 복잡화에 부적절하게 설치되기도
"도로 한가운데 있는 느낌…안전 우려"
전문가 "울타리 등 안전 설비 설치해야"
[서울=뉴시스]박광온 기자 = 11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의 한 도로 교통섬에서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 시민들 앞을 차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박모(32)씨는 아이를 태운 유모차 손잡이를 쥔 채 "사실상 도로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걱정을 토로했다.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들의 '안전섬'이어야 할 교통섬에서 교통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교통섬 주위에 안전 설비를 설치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4일 오후 7시20분께 마포구 지하철 합정역 8번 출구 앞 사거리에서 대형 버스가 우회전을 하던 중, 횡단보도 옆 교통섬의 연석과 신호등을 들이받았다.
당시 교통섬에는 시민 10여명이 있었는데, 이 사고로 신호등이 넘어지면서 시민 1명이 파편에 맞아 어깨를 다쳤다고 한다.
지난 6월2일엔 경기 수원시 권선구에 있는 오거리에서 60대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교통섬에 올라타면서 50대 보행자 한 명이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교통섬은 보행자의 안전한 도로 횡단을 위해, 도로 한 가운데나 교차로에 설치한 섬 모양의 구조물이다. 특히 보행자의 안전섬 역할을 하거나 정지선 위치를 전진시켜 도로의 용량을 확보하는 역할을 한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9년 9월 기준 전국 7172개 교차로 중 523개 교차로에 936개 교통섬이 설치돼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원활한 교통처리 등을 위해 1990년대 전국적으로 설치되기 시작한 교통섬이 도시 개발에 따른 도로 확장을 거듭하며, 보행자에 대한 안전 고려 없이 무분별하게 설치되는 경우도 많았다는 점이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도로가 점점 더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교통섬을 부적절하게 설치한 경우가 꽤 있다"라며 "이 같은 부적절한 교통섬은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해, 교통사고 등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취재진이 찾은 동대문구의 한 교통섬은 조경용 화단만 있을 뿐, 보행자 보호용 안전 울타리나 신호등, 저속 운행을 유도하는 과속 방지턱 등은 없었다.
특히 가로수 등으로 시야 확보가 어려운 상태인 데다, 교통섬이 커브 길에 있다 보니 야간에는 운전자가 보행자를 인식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교통섬 인근 아파트에 사는 70대 백모씨는 "여기 이렇게 서 있으면 사고가 날까 봐 무섭다"라며 "교통섬을 제대로 막아주는 게 없으니까 밤에 운전자가 잘못 보거나 혹은 음주운전을 하면 큰일 날 수도 있겠다"고 전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공단)이 지난 2020년 12월, 전국 7207명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94.9%(6839명)가 "교통섬을 횡단할 때 차량의 위협을 느낀 적이 있거나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교통섬 앞에서 우회전 일시정지를 지키는 운전자는 10명 중 3명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공단이 지난해 8~9월 전국 34개 교차로를 대상으로 우회전 시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실태를 조사한 결과, 교통섬이 있는 경우 일시정지 비율이 31.7%에 불과했다. 이는 일반 교차로에서 우회전 때 일시정지 비율인 47.6%보다 15.9% 포인트 낮은 수치였다.
앞서 우회전하다 초등학생을 치어 사망케 하는 등의 교통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하자, 정부는 지난 4월 우회전 시 전방에 빨간 불인 경우 무조건 일시정지하도록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또 공단이 수도권 등 전국 6개 지역의 12개 교차로를 분석한 결과, 교통섬이 설치되지 않은 교차로보다 교통섬이 설치된 교차로에서 우회전 차량의 주행속도는 평균 7.3%, 직진 차량은 평균 4.4%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강 교수는 "과거 무분별하게 설치됐던 교통섬의 안전성 문제를 재검토하면서, 울타리 등 안전 설비를 제대로 설치해야 한다"며 "그게 어려운 경우 정부 차원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교통섬은 철거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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