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대학30부터 학과-전공 벽 허물기 강조
예비지정 결과 에둘러 언급하며 '무전공 30%'
실험대학, 학부제, 자유전공…학과쏠림에 발목
20여년 간 기초학문 감축 계속…우려 나올 듯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대학 무(無)전공 입학 제도에 힘을 싣겠다고 밝히면서 '글로컬대학30' 사업을 비롯한 대학구조조정 정책의 방향성을 분명히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8일 교육부에 따르면 선정된 지방대 한 곳에 5년간 국고 재정지원사업 사상 최대인 1000억원을 주는 글로컬대학30 사업은 다음달 중 첫 본지정 결과가 발표된다.
이 사업은 학령인구 감소와 급격한 산업구조 변화 속에서 지방대가 경쟁력 인재를 기르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 선정 조건은 소멸 위기의 지역을 살릴 인재를 양성할 교육과정의 파격적 혁신이다.
이 부총리는 지난 5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모든 대학의 정원 30%를 무전공 입학으로 전환하겠다며 이미 대학가에서 '벽 허물기'가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글로컬대학30 예비지정 결과를 언급한 것으로 여겨진다.
교육부는 그간 글로컬대학30을 통해 무(無)전공 입학을 확대할 의사를 지속적으로 내비쳤다. 지난 3월 '추진 방안'에서는 대학이 학문 간 견고한 벽을 유지하며 공급자 중심의 교육과정에 안주해 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 6월 본지정 후보 성격인 예비지정 결과를 발표하면서도, 대학들이 지원하면서 제출한 총 94장의 혁신기획서가 다양한 '벽 허물기'를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예비지정을 통과한 국립 순천대는 단과대를 폐지하고 3대 특화분야에서 무(無)학과 교육과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순천향대는 10개 단과대와 50개 전공을 폐지하고 15명 이하 소전공 40개를 운영하며 3~5년제 학·석사 과정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안동대-경북도립대는 통합 후 무제한 자유전과제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미 무전공 입학을 실시하고 있는 한동대는 14개 학부를 단일대학으로 통합해 융·복합 교육을 강화하고 전공선택권을 무제한 보장하겠다고 밝혀 예비지정 됐다.
구조조정을 유도하기 위해 대학 운영의 기본 법령인 '대학설립·운영규정'도 이달 대폭 완화했다. 기존 운영 대학은 교지(땅), 교사(건물), 교원, 수익용 기본재산을 일정 조건 이상 충족해야 했으나 '교지' 요건을 폐지했다. 대학 간 통·폐합 시 입학정원 감축 조건도 없앴다.
여기에 이 부총리는 글로컬대학을 필두로 모든 대학에 무전공 최소 30%를 관철시키기 위해 '벽 허물기'를 추진하는 대학은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했다. 이는 대학혁신지원사업으로 구현될 예정인데 특정 조건이 아닌 대학의 혁신계획에 따라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국고가 매년 수십억원 지원되는 사업이라 영향력이 매우 크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전공 벽 허물기가 완전히 새로운 정책이 아니며 과거에도 유사한 정책이 실패를 거듭했던 만큼 우려하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대학교육연구소와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의 1998년 '학부제 현황,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박정희 정권 시기인 1972년 '실험대학안'을 통해 계열별 모집을 시도했고 김영삼 정부 떄인 1994년 '학과통합 정책 추진 계획'을 통해 학부제 도입을 밀어 붙였다.
당시 정부는 '수요자 중심 교육', '학생 과목 선택 제한', '다양한 산업수요에 맞는 인재 양성'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현재의 교육부가 내세우는 구호와 흡사하다.
반면 물리학 등 배우기 어렵지만 첨단분야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기초과학이나 신학 등 전통적인 분야는 지원자가 아예 없는 등 외면 받는 장면이 연출됐다.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과 함께 기존 법학과를 폐지하고 기존 정원을 활용해 만든 자유전공, 자율전공학부 역시 다양한 학문을 경험하고 전공을 정하게 한다는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인기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학점경쟁에 시달리느라 커뮤니티에서는 '고등학교 4학년'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대학들이 지역 특성화 전략에 맞는 다양한 전공을 육성하기보다 정부가 정한 첨단분야나 인기 학과로의 구조조정을 밀어붙여 수년 뒤 인력이 과잉 공급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정권 초부터 반도체, 디지털 등 첨단분야 인재 양성 확대를 추진했다.
전공 편중은 해마다 심화됐다. 대학교육연구소가 한국교육개발원(KEDI) 교육통계연보를 분석한 결과,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인문·사회·자연계열 입학 정원은 감소하고 공학·의약계열은 크게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19년 동안 인문계열은 4만7032명에서 3만6853명으로 1만179명(21.6%) 감소했고 사회는 19.0%, 자연은 17.5% 각각 줄었다. 의약은 1만699명에서 2만6424명(147%)으로 두 배 넘게 불어났고 공학은 4.5% 늘었다.
매년 입시철마다 '의대 쏠림'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는 상황이고 과거보다 학령인구 감소 문제가 더 심각해진 만큼 아무리 교육부가 권한을 내려놓았어도 인기학과 편중 문제는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학교육연구소는 "기초학문의 입학정원 감소와 실용학문의 증가는 대학 스스로 학령인구 감소 등에 따라 선택한 측면이 있겠지만 정부 정책에 의해 불가피한 구조조정이 단행된 측면이 크다"며 "기초학문의 뒷받침 없이는 여타 학문 발전도 한계가 있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dobagi@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