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안무가 마이요 "로미오와 줄리엣,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죠"[문화人터뷰]

기사등록 2023/10/02 15:55:20 최종수정 2023/10/05 17:58:52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2019.06.10.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안무는 기억나지 않아요. 하지만 두 무용수가 미치도록 사랑에 빠졌고 언젠가 나도 그랬던 것은 기억합니다.' 제 '로미오와 줄리엣'의 파드되에 대해 누군가 이렇게 말했어요. 그게 바로 제 춤의 주제입니다."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62)가 이끄는 몬테카를로 왕립발레단이 4년만에 내한, 오는 7~19일 서울·대구·강릉에서 발레 팬들을 만난다. 선보이는 작품은 예술감독이자 안무가인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마이요는 공연에 앞서 뉴시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해 "이 작품이 독창적인 이유는 우리를 상징하는 감정을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 발레는 우리를 닮은 몸짓으로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다"고 소개했다.

마이요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안무하며 줄거리 묘사보다는 사랑과 죽음의 재현, 특히 죽음에 중점을 뒀다.

절정은 2막3장으로, 로미오가 티볼트를 목 조를 때 무대 전체가 슬로우 비디오 화면처럼 연출된다. 죽어가는 머큐소, 놀란 군중, 공포를 느낀 티볼트, 친구의 죽음에 분노한 로미오, 전 출연진이 합세해 한 장면을 각인시킨다. 비극적인 멜로디를 들으며 살인 광경을 속속들이 지켜보는 관객들은 비극의 진정한 출발점은 바로 여기였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3막2장에서 로미오가 죽는 방법도 새롭다. 줄리엣의 죽음을 확인한 로미오는 그녀의 침대 모서리에 가슴을 부딪쳐 자살한다. 키스 포즈로 줄리엣의 상체를 끌어 올리며 애절한 사랑을 표현하던 로미오가 무대 왼쪽 앞으로 이동할 때 관객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2019.06.10. chocrystal@newsis.com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찬사를 받는 또 다른 이유는 간결한 무대 장치와 조명이다. 흑백 무대, 전통이 숨어든 도회적 의상, 장치 변환과 조명의 강약에서 안무자의 천재성이 드러난다. 장치의 위치나 높낮이 조절만으로 다른 배경을 만들어낸다.

마이요는 "제 발레의 세트 디자인은 매우 단순하다"며 "소품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무용수들의 행동에서 때로는 무용에 대한 전통적인 시각과 모순되는 형태의 사실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제 목표는 관객들이 우리 모두가 경험한 강력한 감정을 최대한 진정성 있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 발레를 안무 예술을 보여주기 위한 예술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내러티브 작업을 통해 관객이 시대를 초월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감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무엇보다도 신경을 쓰죠."

마이요는 투르 국립콘서바토리에서 무용과 피아노를 공부했으며, 로젤라 하이타워 국제무용학교에서 수학했다. 1977년 로잔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고, 함부르크 발레단에서 솔로이스트로 무대에 올라 활약했다.

1987년 몬테카를로 발레단을 위해 '중국의 이상한 관리'를 창작, 큰 성공을 거뒀다. 그 후 1992~1993 시즌 발레단 예술 고문을 맡았으며, 1993년 예술감독 겸 안무가로 임명돼 현재까지 발레단을 이끌고 있다. 모나코공국 문화훈장과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안무상을 수상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로 최고 공연상을 포함한 세 개의 황금가면상을 수상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2019.06.10. chocrystal@newsis.com
마이요는 "발레단의 수장이 된 것은 카롤린 공주 덕분"이라며 "공주는 저에게서 모나코 공국의 정체성과 일치하는 안무가를 발견한 것 같다"고 했다.

"모나코는 작은 나라지만 항상 전 세계로 눈을 돌리고 다양성을 바탕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저는 천성적으로 호기심이 많아요. 매주 같은 극장에서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와 제 레퍼토리를 공유하는 것을 좋아하죠. 그것이 저에게 동기를 부여해요. 활기찬 호기심을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죠."

이번 내한 무대는 발레단 내 유일한 한국 수석무용수 발레리노 안재용(31)의 활약을 볼 수 있어 더욱 특별하다. 2016년 몬테카를로에 입단해 군무(코르드발레)로 시작한 안재용은 입단 첫해부터 주요 배역들을 연기했고, 2017년에는 세컨드 솔로이스트로 승급했다. 이후 마이요 감독의 신뢰로 1년만에 두 단계 승급, 수석무용수의 영예를 안았다.

마이요는 "안재용이 몬테카를로 발레단에 입단하게 된 경로가 매우 특별해 애착이 간다"며 "그는 16살에 제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춤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미친 듯 노력해 4년 후 오디션을 보러 왔다"고 설명했다. "재용이는 제 작품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준 무용수죠. 저는 이런 사연을 전혀 모른 채 그를 고용했고, 그는 이제 우리 발레단에서 중요한 솔리스트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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