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의 적, 증권범죄③]재범 높은 주가조작…처벌강화가 답[뉴시스 창사 22년]

기사등록 2023/10/02 08:00:00 최종수정 2023/10/11 14:59:12

美, 경제 범죄 중죄로 인식 처벌 강경

적발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적용해야

영국 FCA 같은 국내 콘트롤타워 필요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유관기관 합동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3.05.23.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 강수윤 기자 = 지난 6월 차명계좌를 이용해 선행매매를 저질러온 애널리스트가 검찰에 송치됐다. 이 애널리스트는 증권사 보고서를 내기 전 '매수 의견 을 제시한 종목을 차명 증권계좌로 미리 사들인 뒤 보고서 공개 후 주가가 오르면 팔아 치우는 식으로 5억2000여만 원의 차익을 챙겼다. 그가 사들인 종목은 총 22개에 달했다.

애널리스트의 선행매매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1년에도 현직 애널리스트가 선행매매 혐의로 구속수감 된 적이 있어 잊을만하면 재발하고 있다. 그러나 선행매매로 걸린 증권사 직원 대부분은 징역 1~3년 사이의 형벌을 받는데 그쳤다.

올해 4월 발생한 라덕연의 차액결제거래(CFD) 사태처럼 주가조작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지능화된 가운데 증권 범죄가 수십 년 동안 반복되는 원인으로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란 비판이 나온다. 수십억 수백 억을 챙기고도 '몇 년 감옥에서 살다 나와도 남는 장사'라는 한탕주의 인식이 팽배하면서 주가조작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금융위원회가 강병원 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증권시장 3대 불공정거래(미공개중요정보이용·시세조종·부정거래)로 처벌받은 이들의 23%가 재범 이상의 전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16~2021년 중 3대 불공정거래 위반으로 수사기관에 고발·통보된 사건 중 불기소율은 53.5%에 이른다. 또 2021년 대법원이 불공정거래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사례는 절반 이상(61.5%)에 달했고, 실형 비율은 38.5%에 그쳤다.

라덕연발 주가폭락 사태로 주가조작에 대한 처벌 강화 목소리가 높아지자 금융당국도 칼을 꺼내들었다.

금융위원회는 '주가조작 패가망신법'으로 주목받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 6월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시행령과 감독규정 최종안을 이달 입법예고한다. 주가조작으로 얻은 이익의 2배에 이르는 과징금을 환수하는 내용을 담은 불공정거래에 대한 과징금 제재를 도입한 가운데 불공정거래 혐의자에 대한 자산동결 제도도 추진키로 했다. 다만 입증 책임을 두고 논란이 됐던 위반 행위자 소명 조항은 삭제됐다.

전문가들은 자본시장 범죄에 대한 우리나라의 처벌 강도가 해외 보다 여전히 미약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이나 영국, 캐나다, 일본 등 선진시장에서 징벌적 성격의 막대한 제재금과 함께 수백년 단위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등 시장 신뢰를 해치는 불법행위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다.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에 비해 경제적 범죄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은 양형이 선고되고, 금융 관련 범죄나 화이트칼라 범죄의 상당 수를 중죄로 인식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다단계 금융사기(폰지 사기)로 175억 달러(약 23조825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피해액을 발생시킨 미국의 증권거래인 버나드 메이도프는 2009년 뉴욕 연방법원으로부터 징역 150년을 선고받았다. 2021년 82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감옥에서 나오지 못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세 조정,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국내 처벌이 해외 보다 아직도 약하다"면서 "미국은 합리적인 정황이 있으면 범죄자가 증명하는 의무를 부여하는데 우리나라는 검찰이 모든 정보를 추적해 잡아내야하고, 법원에서 이를 증명해 유죄를 받아내는 게 상당히 어렵다. 피의자에게 입증 의무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게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불공정 거래 적발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하고 원스톱 제재가 이뤄지도록 영국 FCA(금융감독청)처럼 불공정 거래에 대한 콘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증권범죄는 재범률이 높기 때문에 '한 번 걸리면 끝'이라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며 "불공정 거래를 하려는 범죄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자본시장에서 한 번 적발될 경우 거래를 완전히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기관 간 협업체계도 중요하지만 한국거래소,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검찰 등 4개 기관을 주도하는 TF(태스크포스)나 조직 등 콘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종국에는 증권선물위원회가 콘트롤타워 역할을 해야겠지만 중간 과정에서 종합적으로 불공정 행위를 살펴볼 수 있는 팀이나 기관을 만들어서 평소에도 모니터링하고 잡아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구제수단 마련 시급…공적 기관 도움 받아야

증권범죄에 대한 엄단과 더불어 피해를 본 주식투자자들에 대한 구제수단 마련도 시급하다. 집단소송제도가 있지만 집단소송을 제기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상당한 절차와 시간, 비용 등이 소요되고 피해 증명도 쉽지 않다.

이상민 법무법인 대웅 변호사는 "민사적 구제수단을 통해 피해자들이 피해를 제대로 변제 받는 것이 중요하다. 피해자들이 취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은 공적인 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이라며 "수사기관에 대한 고소, 고발이나 금융감독원 등에 대한 민원 등을 통해 필요한 사실관계가 드러나도록 하는 방법이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형사사건에서 불리한 심증이 민사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형사고소와 같은 수단을 강구할 때도 의혹의 단순 나열이나 단순히 '관련자를 엄벌해달라'는 주장은 오히려 사건이 불리하게 흘러갈 가능성도 있다"면서 "따라서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어떠한 근거로 의혹을 제기하며, 관련 증거나 사실관계는 이러하다'와 같은 치밀한 구성을 통해 수사기관을 설득시키고 추가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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