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자켓·청바지, 타임머신 탄 국립오페라단 '라 트라비아타'[리뷰]

기사등록 2023/09/21 00:10:00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오페라단은 2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베르디 탄생 210주년을 맞아 새로운 해석, 새로운 연출로 선보이는 '베르디가 건네는 사랑의 꽃, 라 트라비아타' 언론시연회를 하고 있다. 공연은 내일부터 9월24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2023.09.20.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세상사 즐겁지 않다면 모두 미친 짓! 즐겨요, 사랑의 환희는 덧없고 즐겁게 가버리니까요."

가죽자켓에 청바지, 굽 높은 부츠 차림의 비올레타(소프라노 박소영)가 아름답고 강렬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사치스러움과 아름다움의 정점에 선 이 여성에게 홀딱 반한 매력적인 음색의 알프레도(테너 김효종)는 깔끔한 체크무니 코트에 현대적인 구두 차림이다.

2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국립오페라단의 프레스리허설 현장에서 만난 '라 트라비아타'는 파격 그 자체였다. 비올레타와 알프레도 뿐만 아니다. 2막 가면무도회 장면에서는 드레스 차림의 남성들과 턱시도를 입은 여성들이 컬러풀한 롱부르를 신고 춤을 추는 장면도 볼 수 있다.

라 트라비아타는 코르티잔(부유층을 상대하는 고급 매춘부·'궁정의여인'이라는 어원) 비올레타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오페라다. 

막이 열리면 '라 트라비아타'의 리허설 현장이다. 현대적 복장의 한 소프라노가 리허설에 참여, 폐병을 앓고 있는 파리 사교계의 꽃 비올레타를 연기한다. 수트 차림의 알츠레도, 화려한 호피무늬 의상의 플로라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오페라단은 2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베르디 탄생 210주년을 맞아 새로운 해석, 새로운 연출로 선보이는 '베르디가 건네는 사랑의 꽃, 라 트라비아타' 언론시연회를 하고 있다. 공연은 내일부터 9월24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2023.09.20. pak7130@newsis.com
연출가 뱅상 부사르는 이번 작품을 연출하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시대의 이야기 '라 트라비아타'를 작곡했던 베르디의 의도에 주목했다.

베르디가 이 작품을 작곡할 당시 오페라는 주로 역사·신화적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1853년 초연된 '라 트라비아타'는 1847년 파리에서 스물세살의 나이로 사망한 젊은 코르티잔 마리 뒤플레시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베르디는 관행을 깨고 이 작품을 통해 위선과 향락에 빠진 당대의 파리를 날카롭고 거침없이 묘사했다.

당시 파리는 식민지 무역으로 큰 돈을 번 신흥 부르주아들로 넘실댔다. 이들은 귀족들만 누려온 각종 특권을 누리고 싶었고, 코르티잔과의 비밀스럽고 뜨거운 사랑은 그런 욕망을 충족시켜줬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소녀들은 배고픔과 추위를 피해 상류층 남성들의 욕망의 대상이 됐고, 그런 코르티잔들이 수없이 피고 졌다.

마리 뒤플레시 역시 가난을 피해 파리로 온 가장 유명한 코르티잔이었다. 그녀는 무도회, 오페라장 등에서 손님들을 만났는데 자신의 오페라장 박스석에 늘 동백꽃 한 다발을 뒀다. 평소에는 하얀 동백꽃, 생리 중일 때는 빨간 동백꽃을 둬 자신이 사랑을 나눌 수 없는 기간을 알렸다. 그래서 '동백꽃 아가씨'로 불렸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오페라단은 2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베르디 탄생 210주년을 맞아 새로운 해석, 새로운 연출로 선보이는 '베르디가 건네는 사랑의 꽃, 라 트라비아타' 언론시연회를 하고 있다. 공연은 내일부터 9월24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2023.09.20. pak7130@newsis.com
뱅상 부사르는 "역사라는 거름망 없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려 했던 베르디의 의도에 충실해 이번 작품을 소프라노와 비올레타의 만남으로 그렸다"며 "1847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자유로운 영혼과 육체에 대해 사회가 가하는 잔인함은 변한 것 없이 똑같고, 질병의 흔적, 인간과 상황의 잔임함, 질투와 죄책감은 같은 깊이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2막은 비올레타와 알프레도가 한적한 시골에서 즐기는 '사랑의 도피' 장면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비올레타는 자신의 재산을 처분해야 했고,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알프레도는 돈을 구하러 파리로 떠난다. 그사이 비올레타를 찾아온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은 자신의 아들과 헤어질 것을 종용한다.

비올레타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이별을 결심하고, 진실을 말해주지 않은 채 알프레도를 떠난다. 분노와 복수심에 사로잡힌 알프레도는 비올레타가 새 연인과 함께 참석한 가면무도회장을 찾고, 이곳에서 배반당한 연인을 조롱하는 기괴한 춤의 여흥이 펼쳐진다.

드레스를 입은 남성과 턱시도를 입은 여성들, 핑크·초록·주황의 형광색 의상을 입은 파티 참가자들이 무대를 가득 채우고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알프레도는 손님들을 불러모아 비올레타에게 돈을 던지며 그녀를 모욕한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오페라단은 2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베르디 탄생 210주년을 맞아 새로운 해석, 새로운 연출로 선보이는 '베르디가 건네는 사랑의 꽃, 라 트라비아타' 언론시연회를 하고 있다. 공연은 내일부터 9월24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2023.09.20. pak7130@newsis.com
3막이 시작되면 텅 빈 무대 위 피아노 위에 누워있는 비올레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뒤늦게 이별의 전말을 알게 된 알프레도는 그녀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지만 이미 비올레타의 병은 깊다.

공연 중간 중간 등장하는 어린 소녀는 비올레타의 어린 시절이자 순수한 사랑을 상징한다. 연출가는 피아노와 어린 소녀, 무대 뒤로 보여지는 영상을 통해 비올레타의 변화하는 감정을 시각적으로 설명한다.

이번 무대를 통해 지휘자 세바스티안 랑 레싱과 연출가 뱅상 부사르가 '마농', '호프만의 이야기'에 이어 세 번째로 인연을 맺었다. 소프라노 박소영·윤상아가 비올레타역을, 테너 김효종·김경호가 알프레도역을 각각 맡는다. 21~24일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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