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다이허 회의에 유력 원로 불참…대신 시 주석에 '질책'
로켓군 사령관·외교부장 교체, 부동산 위기 등 '내정 혼란'
'국경 분쟁' 인도 주최 회의 참석시 체면 깎여…대미관계도 염두
5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복수의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한 결과, 올 여름 허베이성의 유명 휴양지인 베이다이허(北戴河)에 공산당 수뇌부 출신의 초거물급 장로(원로)는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매년 여름 베이다이허에서는 중국의 전·현직 지도부가 2주 동안 여름 휴가를 겸한 비밀회의인 '베이다이허 회의'를 열고 국가의 향방을 논의한다. 현역 지도자는 물론 정치 원로들이 대거 참석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장쩌민 전 국가주석은 2022년 11월 96세를 일기로 별세했고 후진타오(80) 전 국가주석은 지난해 10월 공산당 전당대회 폐회식 자리에서 팔을 받치며 강제 퇴장당한 후 행적이 불분명하다. 닛케이는 "실력 있는 시끄러운 장로들이 자리를 비웠으니까 원래 이것은 시 주석에 바람직한 상황"이라며 "하지만 그보다 더 복잡한 일이 올여름에 일어났다"고 전했다.
신문은 "중국 경제는 개혁개방 정책이 본격화된 이후 본 적도 없는 미증유의 후퇴 국면에 있다"며 중국 최대 부동산기업인 헝다그룹의 파산 위기와 같은 부동산 불황과 청년층 실업률이 올 여름부터 공표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중국군은 7월 밝혀진 핵미사일을 운용하는 로켓군 사령관들의 일제 실각으로 혼란을 겪고 있고, 강경한 전랑외교를 주도해 온 중국 외교부에서도 수장이었던 친강이 이유를 모른 채 해임되면서 조직 내에 의심이 더 확산되고 있다.
닛케이는 "과거 중국 공산당을 지탱해 온 장로집단이 현 상황을 걱정하는 것은 무리도 아니다. '이대로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의 혼란이 길어지고 아무런 유효한 대책도 취하지 못한다면 일반 민중의 마음이 당을 떠나고 우리의 통치 자체가 위태로워질도 모른다'고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위기감을 고조시킨 원로들은 8월 열릴 베이다이허 회의에 앞서 독자적으로 회의를 소집해 현 지도부에 전달해야 할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그곳은 베이다이허가 아니라 베이징 교외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닛케이가 전했다. 원로들의 '총의'를 모은 대표자 몇 명만이 이번에 실제로 베이다이허 회의에 참석했다고 한다.
닛케이에 따르면 간언에 앞장선 원로는 전 국가부주석이자 장쩌민의 최측근이었던 쩡칭훙으로, 무명이었던 시 주석이 단숨에 정상에 오르는 길을 여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진다.
닛케이는 "공산당 조직 내에서 지금도 실력자임에는 변함이 없다"며 "장쩌민이 사망한 지금 원로를 중심으로 폭넓은 인맥을 가진 쩡칭훙의 역할은 오히려 커졌다는 시각마저 있다"고 평했다.
원로들로부터 예상 밖의 호된 간언을 들은 시 주석은 다른 자리에서 측근들에게 분노를 터뜨렸다고 신문이 전했다.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은 측근들에게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라는) 과거 3대가 남긴 문제가 모두 (나에게) 덮어씌워진다. (그 처리를 위해 취임하고 나서) 10년이나 노력해 왔는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게 내 탓이라는 거냐?"고 불만을 표출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닛케이는 시 주석은 장로들이 지적한 '혼란'은 과거 3대에 의한 '부정의 유산' 탓이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신문은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인도가 주최하는 G20 정상회의에 시 주석이 직접 참석하면 체면이 깎일 수 있다"며 "주요 의제인 세계경제의 향방을 둘러싼 논의에서 중국이 세계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구조가 거론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짚었다.
"권위 있는 지도자를 지금 보내는 것은 위험하다"는 게 시 주석 측근집단의 판단이었고, 이 위태로운 국면에서는 중국 경제의 실무 책임자인 리창 총리가 시 주석 대신 인도에 가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닛케이는 "비즈니스 서밋 회의장에서 좋지 않은 중국 경제에 대해 시 주석에 직접 묻는 질문이 만에 하나 튀어나오면 체면을 구길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고 보도했다.
또 한 가지 큰 요인은 가장 중요한 대미관계에 타개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 상무장관의 지나 러몬도 방중 등 미중 관계에 완화 조짐이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중국 측에서 보면 이는 완전한 오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신문이 전했다.
닛케이는 "미국, 중국 모두 중요한 경제 문제에서 양보할 수 없다"며 "즉, 시진핑 정권으로서는 이 어려운 국면에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웃는 얼굴로 만날 수 없는 이치"라며 중국과 국경에서 대치하고 있는 인도가 주최하는 국제회의의 장이란 점도 고려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런 추세라면 11월 중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도 시 주석이 방미할 수 있을지가 불투명할 수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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