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비 보조금 삭감에서 과감한 정권퇴진 운동으로
러시아의 도움에 아사드 대통령의 기반은 공고해져
정부의 연료 보조금 대폭인하 조치에 주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지만 시위는 곧 보조금 인하 반대 수준이 아니라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예상외의 높은 수위로 내달았다는 것이다. 시위대는 주도 소재 아사드의 바트당 사무소를 공격했다.
시위 개시 지역이 종교 소수계인 드루즈파 중심의 남부 스웨이다주로 민중 기반이 약해 보였으나 곧 남서부 수도 다마스쿠스는 물론 북부의 대도시 알레포 그리고 아사드 가문 연고지인 지중해변의 라타키아와 타르투스까지 스웨이다 시위를 지지하는 군중 모임이 있었다고 타임스는 전했다.
전쟁으로 계속된 경제난이 정치적 변혁 요구와 민중 결집을 이끌어내는 모습이다.
시리아는 2011년 3월의 '아랍의 봄' 시기에 평화적인 민중 시위를 40년 독재 집권 가문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반정부 세력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내전으로 비화되었다.
2015년부터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이슬람국가(IS)' 소탕을 핑게로 전폭적인 공군 지원에 나선 덕에 바샤르 정권은 살아남은 대신 시리아 국민들은 엄청난 물적 및 인적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내전 전 2300만 인구 중 500만 명이 국경을 넘어 탈주했으며 아사드 정부군이 살해한 자국민 수가 50만 명은 훨씬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외국으로 빠져나간 시리아인 중 100만 명 이상이 유럽으로 무작정 이주했으며 수백 만 명이 아직도 터키,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및 이집트에서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집을 버리고 국내 피난길에 올랐던 800만 명 중 반 이상이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유엔은 시리아인 90% 이상이 빈곤선 아래서 생활하고 있으며 70%는 인도주의적 구호가 필요한 처지라고 최근 말했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 당시의 불개입 정책과 러시아 푸틴의 적극 지원에 힘입어 살아난 아사드 정권은 이후 같은 시아파인 이란이 병력과 무기를 대주자 한층 공공해졌다. 초기 아사드 축출을 외치던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푸틴과 친해지면서 자국 이익을 위해 북서부의 친튀르키예 반군을 지원하는 선에서 아사드 반대를 완화하는 행운도 뒤따랐다.
그런 자신감 속에 아사드는 러시아의 푸틴만 찾아가는 데 그치지 않고 시리아의 아랍연맹 자격 복원을 위해 여러 나라에 얼굴을 드러냈다.
이 상황에서 이름 없는 남부 스웨이다주 발의 시리아 내 반 아사드 퇴진 시위가 일회성에 그치고 말지 아니면 시리아 내전에서 극적인 전환의 계기될지 주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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