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에 녹음장치 설치해 민간인 도청 혐의
반국가단체 조사하던 중 무작위로 대화 녹음
1심 "미필적 고의"…징역형 집유·자격정지
"단순한 과실 및 실수에 의한 범죄 아냐"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김동현)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국정원 대공수사국 소속 수사관 A씨 등 4명에게 각 징역 6~10월 및 집행유예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정원 수사관들이 법률상 허용되지 않은 타인 간 사적 대화를 녹음한 것으로써, 직무 특성상 이런 위법행위를 조심해야 하는 피고인들이 범행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단순한 과실이나 실수에 의한 범죄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녹음 자체가 사적 이익이나 위법하게 수사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조직이 존재한다고 판단해 실체를 파악할 목적으로 범행에 이르렀다"고 봤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은 (범행의) 고의를 다투는 등 전반적으로 범행을 부인하는 점과 판결 선고로 예상되는 신분상 불이익도 양형에 참작했다"고 했다.
A씨 등은 지난 2015년 8월께 충남 서산의 한 캠핑장에서 비밀녹음장치를 이용해 민간인들의 대화를 녹음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사 결과 이들은 한 대학교 학생조직에서 활동했던 제보자를 통해 반국가조직으로 추정되는 단체 관련 정보를 수집했는데, 이 과정에서 녹음에 동의한 제보자를 제외한 나머지 민간인들의 대화도 몰래 녹음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A씨 등이 다른 사람의 대화를 감청하고도 법원으로부터 사전·사후 영장을 발부받지 않았고, 긴급 감청에 따른 사후 허가 과정도 거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들의 행각은 제보자가 국정원에 협조한 사실을 외부에 밝히며 알려졌다.
A씨 등은 재판 과정에서 대화 녹음은 제보자의 적극적·자발적 의사에 의해 이뤄졌고 제보자 요청에 따라 녹음장치를 설치해 줬을 뿐 대화녹음의 주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하려는 고의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1심은 A씨 등이 제보자에게 녹음장치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주도적으로 녹음 계획을 실행했다며 범행에 가담한 공동정범으로서 죄책을 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녹음장치가 무작위로 타인의 대화를 녹음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녹음 장치를 설치했다며 미필적으로나마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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