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 신림동 발달장애 일가족 참변 1년
얼룩·곰팡이…당시 폭우 피해 흔적 여전
'한반도 관통' 6호 태풍에 주민들은 불안
8일 오전 10시30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빨래방을 운영하는 김모(60)씨는 허벅지 중간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도 후유증이 있다. 바로 옆집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8일 밤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발달장애가 있는 일가족 3명이 반지하에 갇혀 숨졌다. 안전을 위해 창문에 설치된 쇠창살을 이웃주민들은 뜯어낼 수 없었다. 당시 서울에는 하루 동안 381.5㎜(동작구 기준)의 비가 내렸다. 1907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많은 강우량이었다.
'반지하 일가족 참변' 사건으로부터 1년이 지난 이날 찾은 사고 현장에는 당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동네 주민들은 지난해 악몽을 떠올리며 다가오는 태풍 '카눈'에 대한 걱정을 토로했다.
참변이 발생한 건물 바로 옆에 위치한 김씨의 빨랫방에는 지난해 폭우로 생긴 빗물 얼룩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스며들었던 빗물이 마르면서 나무 구조물들은 그 틈이 벌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검은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사고 현장에서 30m 떨어진 성당을 다닌다는 이모(70)씨는 "그때 숨진 초등학생의 친구들이 성당에 와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애들이 지금 중학교 1학년이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가오는 태풍 '카눈'으로 반지하 주택의 피해가 재현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지난해 폭우 때 신림동 반지하 자취방에서 살았던 박모(25)씨는 "사고가 난 빌라보다 높은 고지대였는데도 발목까지 물이 찼었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 보고 반지하에서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며 "이번에도 그런 일이 생길까 걱정된다"고 했다.
인근 빌라 건물주인 정모(74)씨도 "태풍이 온다고 해서 오늘도 하수구를 한 번 확인하고 왔다"며 "그래봤자 저번처럼 비가 많이 오면 물막이판(차수판)은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이 들어차는 한 두 시간을 늦출 순 있지만, 작년처럼 오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며 "물막이판이 있어도 하수도가 역류하거나 하면 물이 차오르는 건 순식간"이라고 했다.
태풍 카눈 상륙이 임박했지만, 물막이판조차도 설치되지 않은 건물들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사고 현장에서 5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한 빌라 건물엔 반지하 방에 난 창문이 바닥과 가깝게 붙어있었지만, 물이 들어차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구조물은 없었다.
실제로 지난 6월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설명자료에 따르면, 서울시의 경우 물막이판·역류방지기 동시 설치 대상인 1만5543가구 중 실제 설치한 가구는 6310가구(40.6%)로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북상 중인 제6호 태풍 '카눈'은 10일 오전 우리나라에 상륙, 한반도를 관통할 것으로 예보되고 있다.
이에 따라 행정안전부는 전날 오후 6시부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2단계를 가동하고, 위기 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경계' 단계로 상향한 상태다.
카눈은 강도 '강' 상태로 이동 중이며, 이는 10일께에도 계속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도 '강'은 순간풍속 초속 33~44m로, 기차를 탈선시킬 수 있을 정도의 세력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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