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도 무량판인가"…불안감에 도면 찾아 나선 주민들

기사등록 2023/08/03 16:05:00

입주민들 단톡방서 '무량판 구조' 여부 확인 나서

"민간아파트까지 명단 공개 해야하나" 갑론을박도

"무량판 구조 본질 아냐…설계·시공 원칙 지켜야"

[오산=뉴시스] 김명년 기자 = 1일 오후 경기 오산시 청학동 오산세교2 A6블록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잭서포트(하중분산 지지대)가 설치돼 있다. 국토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 91개 단지 중 철근이 누락된 아파트 15곳을 공개했다. 이 단지는 보강 철근 필요 기둥 90개 중 75개에서 철근이 누락됐다. 2023.08.01. kmn@newsis.com

[서울=뉴시스] 고가혜 기자 = "우리 아파트는 무량판 구조 시공은 아니죠?" "무량판 구조인지 보가 있는 라멘 구조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최근 전국 곳곳의 아파트 단지 입주민 단체 카카오톡방에는 거주 중인 아파트 단지의 설계가 '무량판 구조'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입주민들의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지하주차장 철근 누락' 아파트들에 적용된 '무량판 구조'가 일부 민간 아파트에선 사람들이 거주하는 '주거동'에도 적용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공공주택 뿐만 아니라 민간아파트까지 부실시공에 대한 조사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이제는 민간아파트 입주민들 사이에서도 일종의 '무량판 포비아'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3일 정부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LH 발주 아파트 91개 단지 중 15개 단지에서 철근 누락 등 부실시공이 발견됐다고 발표하고, 같은 방식으로 지어진 민간아파트 역시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재까지 정부가 전국 지자체를 통해 파악한 민간 부문 무량판 구조 적용 아파트 단지는 총 293곳이다.

이 중에서 현재 시공이 진행 중인 현장은 105곳이며, 무량판 구조 사용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2017년 이후 준공이 완료된 아파트 단지는 전국 188곳이다. 다만 2017년 이전에 준공된 무량판 구조 적용 단지가 추가로 파악된다면 이 숫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들 현장에 대해서는 주민들이 추천하는 안전진단전문기관을 통해서 안전점검을 할 것"이라며 "안전점검 결과 LH처럼 안전에 이상이 있을 경우에는 즉시 안전전문진단을 통해서 보수·보강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 발표에도 민간 아파트 입주민들 사이에서는 불안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입주민들은 거주 중인 아파트의 설계가 무량판 구조인지 여부를 입주자 대표 및 시공사 측에 문의하고, 자체적으로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아파트 단지를 찾아내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일각에서는 "평면도 중간중간에 차콜색 사각형이 들어간 집은 무량판 구조라고 하더라"며 아파트 평면도별 차이를 공유하는 이들과 "이런 평면도만 봐서는 무량판인지 복합식인지 알수 없다. 건축도면도 아니고 단순 분양용 평면도로는 판단할 수 없다"는 이들이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오산=뉴시스] 김명년 기자 = 1일 오후 경기 오산시 청학동 오산세교2 A6블록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잭서포트(하중분산 지지대)가 설치돼 있다. 국토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 91개 단지 중 철근이 누락된 아파트 15곳을 공개했다. 이 단지는 보강 철근 필요 기둥 90개 중 75개에서 철근이 누락됐다. 2023.08.01. kmn@newsis.com
국토부가 9월 말까지 조사를 마친 뒤 10월 께 민간아파트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로 하면서, 부동산 커뮤니티와 입주민 카페 등에서는 아파트 명단 공개를 과연 하는 것이 맞느냐는 논쟁도 펼쳐지고 있다.

한 누리꾼은 "해당 단지를 공개해서 좋아지는 것이 무엇인가. 어차피 보강공사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그 아파트에 입주해 있는 또는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시공사와 소통해서 해결할 일인데 굳이 공개를 왜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물론 시공사별로 철근 누락을 얼마나 했는지 종합적인 결과는 발표할 수 있겠지만, 시공사가 잘못 시공한 것으로 인해 그 단지를 소유한 소유자들, 그리고 입주해 있는 입주자들까지 왜 피해를 봐야 하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그러나 또 다른 누리꾼은 "지금 아파트 값이 문제가 아니다.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아파트에 대한 안전을 검증하려면 전수 조사가 우선돼야 한다"며 "물론 부실이 없으면 천만 다행이지만 하지만 아파트 1억원 올랐다고 좋아하기 전에 안전진단을 추진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우선인 것 같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것으로 파악된 민간 아파트 293곳 중 절반 이상은 서울 등 수도권에 위치한 고가의 대규모 단지인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실제 이들 중에서도 철근 누락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 파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부실시공 단지가 공개되면서 집값 하락 등 입주민들의 손해가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책임공방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점쳐진다.

다만 전문가들은 입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무량판 구조' 공법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면서 무량판 구조 여부는 이번 부실시공 논란의 본질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무량판 구조 등에 대한 논의는 본질이 아니다"라며 "무량판 구조는 위험하고 못쓸 방식이 아니다. 적절한 설계와 시공이 이루어지면 문제가 없다"고 짚었다.

다만 "이번 부실공사 논란도 제도가 없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적절한 (구조)설계와 그에 충실한 시공, 결국 원칙을 준수하는 실행역량이 필요하다"며 "단순히 규정·제도를 강화하는 것은 실무기관의 업무량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되면 사람들은 편법을 찾게 된다.  따라서 원칙준수에 수반되는 비용의 증가가 있다면 이를 공사비에 적절히 반영할 필요가 있고, 동시에 원칙을 준수하지 않았을 때에 적절한 패널티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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