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하면 차별, 훈육하면 학대…멍드는 교사들[무너진 교권①]

기사등록 2023/07/23 07:00:00 최종수정 2023/07/24 15:24:01

학생인권조례·아동학대처벌법 악용

교권 침해·교사 아동학대 고발 급증

교육현장 특수성 고려한 법 적용必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지난 20일 오후 교사가 교내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를 찾은 추모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2023.07.20. hwang@newsis.com

[서울=뉴시스]전재훈 홍연우 김래현 박광온 기자 = "수업 중 학생을 칭찬하는 것도 차별이라고 문제 삼을 수 있어요. 한 학생에게 잘했다고 하면, 다른 학생에겐 차별이라는 거죠."(서울의 한 초등학교장 출신 A씨)

최근 발생한 양천구 초등학생의 교사 폭행사건 등은 현장 교사들이 학생이나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이나 폭력에 무분별하게 노출돼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란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과거부터 학생 인권 향상을 위한 조치들은 지속적으로 보완·발전돼 현장에 어느 정도 자리 잡았지만, 그에 반해 교사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조치는 사실상 전무하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과잉보호 근거로 오용되는 아동 보호책…교권 침해 건수 급증

학생인권조례나 아동학대처벌법 등 규정들은 모두 학교나 가정에서 아동·청소년의 존엄과 가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보호책으로 마련됐다. 문제는 이처럼 좋은 취지에서 마련된 제도를 일방·기계적으로 해석해 일선 교사들의 손발을 묶고, 송사까지 시달리게 하는 사례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23일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아동학대처벌법이 시행된 지난 2014년 63건이던 학부모 등에 의한 교권 침해 건수는 2015년 112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후 2016년 93건, 2017년 119건, 2018년 210건, 2019년 227건을 기록하며 꾸준히 증가했다.

일선 교사 등 교육계에선 아동학대처벌법이 교육 현장에서 취지에 어긋나 오용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한다. 학교폭력 가해 학생,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 등에 대한 교사의 일반적인 지도까지 정서학대로 몰아 고소하면, 교사는 교육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되는 교원도 2020년 230건, 2021년 398건, 지난해 468건으로 점점 늘고 있다. 고소 건 중에는 학생들을 체벌하거나 성적인 접촉을 발생시키는 등 부적절한 학대도 있었지만, 훈육·지도 등을 문제 삼는 정서학대 사례가 다수 포함됐다.

구체적으로 ▲학생을 수업에 참여시키지 않음 ▲공개적인 장소에서 벌점 부과 ▲큰 소리로 혼내 학생이 상처받음 ▲학부모에게 학생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해 학생과 부모의 신뢰가 무너지게 함 ▲교무실에서 무단 조퇴에 대해 지도함 등이다.

문제는 전후 상황이나 맥락상 '교사의 역할'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지도까지 손쉽게 형사사법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경우다. 수도권의 한 중학교 담임교사를 맡고 있는 박모씨는 "수업 준비를 안 해온 학생에게 '이것도 안 해왔니'라고 물으면, 자존감을 떨어지게 만들었다면서 정서학대로 고소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기 어려울 정도로 다 문제 삼는 상황이다. 정상적인 교육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일선 교사들이 훈육을 포기한다. 포기하거나 침묵한다. 열정을 갖고 방법을 찾는 교사도 있지만, 현실이 이러니 너무 힘 빼지 말라는 자조 섞인 조언도 나온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한국교총에서 열린 교육부-교총 교권 확립을 위한 현장 교원 간담회에서 교사들이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3.07.21. bluesoda@newsis.com

◆방치된 교권…맞고 멍드는 교사들

지난달 30일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 담임교사 B씨가 교실에서 정서행동장애 판정을 받은 학생에게 폭행당해 전치 3주 진단을 받은 사건은 이 같은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당시 해당 학생은 상담 수업을 빼고 체육활동에 참여하겠다며 '이미 정해진 상담시간을 빼기에는 곤란하다'는 B씨와 실랑이를 벌이다 폭행을 저질렀다.

B씨는 해당 폭행으로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다. 해당 초등학교는 교권보호위원회를 통해 해당 학생에 대해 강제전학 조치를 처분했다.

B씨는 지난 4월부터 폭행에 시달려 왔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교사의 정당한 지도행위를 보호하기 위해 '교원의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등 관련 법률이 마련돼 있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교사가 저항하다 아이와 물리적 접촉을 하거나, 고성을 질러도 쟁송에 휘말릴 수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한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는 아이들 간의 몸싸움을 말리다가 아이를 치게 됐고, 부모의 고소로 재판까지 가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내에서 극단선택으로 숨진 1학년 담임교사 사건은 여전히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경찰은 온라인상에서 제기된 학부모 갑질 여부 등에 대해 조사 중이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은 해당 교사가 한 학부모의 악성민원에 시달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교사가 교내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를 찾은 추모객들이 지난 20일 오후 조문하고 있다. 2023.07.20. hwang@newsis.com

현행법의 사각지대를 오용해 교권을 침해하는 현실은 결국 다른 학생들의 교육활동을 방해해 공교육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학생인권을 두텁게 보호하되, 구체적인 면책 지침 등을 마련해 교육현장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보영 교육부 교원정책과장은 "아동학대처벌법은 가정이라는 은밀한 곳에서 생길 수 있는 학대를 방지하고자 만들어졌다. 이를 훈육, 지도 등 교육활동이 이뤄지는 학교에서 그대로 적용하니 문제가 발생한다. 교육을 위해 어떤 학생은 훈육하고 어떤 학생은 격려해야 하는데, 학부모 입장에선 우리 아이를 학대한다고 해석하고 고소하면, 선생님은 직위해제를 당하기도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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