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피란민이 만든 '천호동'…한양의 주요 관문 '광진'

기사등록 2023/07/11 11:15:00

서울역사박물관, '천호동, 동남부 교통 관문' 보고서 발간

[서울=뉴시스]서울역사박물관이 강동구 천호동의 과거와 현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본 '천호동, 동남부 교통의 관문'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11일 밝혔다. 사진은 1970년대 천호 구사거리 모습. (사진=서울시 제공). 2023.07.1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조현아 기자 = 서울역사박물관이 강동구 천호동의 과거와 현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본 '천호동, 동남부 교통의 관문'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11일 밝혔다.

조선시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천호동의 공간과 지역의 위상 변화와 서울 동남부 교통의 관문으로서 천호동이 지닌 정체성을 바탕으로 지역의 발전 상황 등이 보고서에 담겼다.

박물관은 지난 2007년부터 진행한 서울생활문화자료 조사 결과를 엮어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뉴타운 사업 대상지였던 보광동을 시작으로 이번 천호동까지 총 39개 지역 조사를 완료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천호동 인근 광진은 조선시대 때 임금의 능행길에서 한강을 건너기 위해 필요한 나루로 동쪽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는 주요 관문의 역할을 했다.

1936년 서울에서 한강대교에 이어 두 번째 인도교로 광진교가 완공됐고, 1976년 천호대교가 준공됐다. 천호대교와 함께 건설된 천호대로는 동부간선도로와 교차하고 상일 나들목에서 중부고속도로와 연결돼 동남부 교통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일제강점기 천호동 일대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로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곡교리'로 불렸다. 곡교리는 마을 앞에 굽은 다리가 있다고 해 붙은 명칭이다. 지하철 5호선 굽은다리역은 과거 명칭의 흔적이 담긴 것이다.
[서울=뉴시스]1937년 광진교 아래 소풍 나온 학생들. (사진=서울시 제공). 2023.07.11. photo@newsis.com

6·25 전쟁 이후 서울의 동북 지역에서 온 피란민과 지방 상경민들은 한강을 경계에 두고 대거 천호동에 터를 잡았다. 이들은 토박이들이 살던 기존 마을에 흡수되지 못하고 천호 구사거리 일대에 터전을 이뤘는데, 이것이 현재의 천호동이 됐다는 설명이다.

해방 이후 서울 시역 확장으로 천호동은 1963년 성동구로 편입됐고, 1975년 강남 지역이 강남구로 분구되면서 강남구가 됐다가 1979년 강동구의 승격으로 강동구에 속하게 됐다.

경기 하남시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오랜 길목이던 구천면로의 교차첨에 형성된 천호 구사거리는 6·25 전쟁 때 형성됐다. 수천명의 피란민이 천호동에 유입되면서 임시 수용소가 들어섰고, 구천면 사무소와 지서 등 관공서가 이곳으로 이전해 중심지로 기능했다.

1960~70년대에는 천호동 일대에 경기도와 강원도를 잇는 시외버스터미널과 '천호동 텍사스'로 불리는 집창촌이 형성됐다. 이후 시외버스터미널은 1988년, 천호동 텍사스는 뉴타운 사업으로 2022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천호 구사거리에는 1968년 천호시장을 시작으로 1980년대까지 총 8개의 시장이 형성될 만큼 번성했다. 천호시장을 오가는 유동 인구를 대상으로 시장 주변부에 먹자골목이 생겨나기도 했다. 과거 족발, 냉면, 감자탕 골목 등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이북 출신의 피란민들이 정착한 판자촌에서 1965년 '춘천집'이 문을 연 것이 시초다.

지하철 개통과 함께 구사거리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1995년 지하철 5호선과 1997년 8호선이 개통되면서 상권은 천호 구사거리에서 신사거리 쪽으로 이동했다.

보고서는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열람할 수 있다. 구입은 서울책방과 서울역사박물관 기념품점에서 가능하다. 가격은 2만5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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